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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하는 마음
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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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Dec 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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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창 K의 부고가 전해졌다.
초등학교 때 남자 1번이었던 친구.
여자 1번이라 주번을 할 때 짝꿍이었지만
K와 추억의 교집합은
일 역할 분담을 위해
나눴던 대화가 전부다.
그 친구는 내게 '아홉 살 인생'에서
우림 같은 존재였고,
나는 여민 같은 아이였다.
2.
초등학교 때 K의 집은
동네에서 보기 드문 이층 집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와 공부를 잘했고,
같은 학교 다녔던 형제들도 모두
그 학년의 탑이었다.
약국을 하는 엄마와 교수였던 아버지까지
그 친구를 둘러싼 환경은 견고했다.
친구의 형은 Y대를 갔고,
여동생은 S대를 갔으며,
K는
메이퀸 같던 동창과 결혼을 했고,
약국을 했던 엄마는 K가 결혼을 한
몇 해 뒤 암으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까지.
K의 소식에선 늘 가족의 안부도
함께 따라왔다.
3.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동창들 사이에서 K의 근황이 전해졌다.
이혼을 했고, 건강이 좋지 않고,
하는 일도 정리했고,
최근에 본 모습이 편해 보이지 않았다 했다.
그리고 친구의 부고가 전해졌다.
암으로 2년여 투병 생활을 했다는 친구.
4.
모바일 부고장 추모관에
K의 생전 모습이 담겼다.
보면서 마음이 오래도록 침잠됐다.
유년기 흑백 사진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친구와 젊은 엄마.
초등학생 때 조부모님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
청년이 돼서 양복을 입고 찍은 가족사진.
현재의 시간에서 타임 슬립해
과거 사진 속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미래를 알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운명이 바뀔 수 있을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현재의 기억을 모두 갖고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 송중기가 하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그리고 일어날 일은 기어이 일어나고 만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어차피 우리 삶이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라면 살아 숨 쉬는 지금
죽은 것처럼 살지 말아야겠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의 한 구절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 시처럼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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