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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Feb 05. 2024

사계리가 내 안에 들어왔다


사계리 숙소 창문으로 바라 보이는 풍경




INTJ인 나는 여행 스타일만큼은  완벽한 P다.  날짜와 장소가 정해져도 사전 정보를 구하지 않는다.  나에게 필요한 정보는 여행지에서의 체류 기간 정도다.  옷짐도 설렁설렁 꾸린다.  단, 머무는 시간에 따라 놀 준비물은 꼼꼼히 챙긴다.  3박 4일 정도라면 책 두 권, 간단한 스케치 용품, 노트북과 태블릿, 여분이 넉넉한 공책과 다용도로 사용될 필기구, 차와 텀블러.  가방에 여유가 있다면 아침에 먹을 사과 두 알 정도 추가.  



갑작스러운 여행은 번개팅처럼 일상적이지 않아 설렌다.  작년에 제주 '동네 책방' 순례를 할 때 알게 된 동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오래된 골목을 찾아 달릴 땐 브레이크 밟고 싶은 스팟이 너무 많아 힘들다.  지나는 길이다 보니 다시 오기 힘들 거란 전제 때문일까.  그래서 오래된 골목이 골동품처럼 들어선 마을에서 달리는 속도가 아닌 걷는 속도로 원주민처럼 며칠이라도 머물고 싶다가 희망 사항이었다.  그 소망이 현실이 되어 지금 누리고 있다.  



작년에 사계리 '어떤 바람' 책방을 들렀다가 사계 마을 골목에 마음을 빼앗겼다.  잠시 들른 곳에는 머물 수 있는 제한 시간이 있다.  딱히 정해놓진 않았지만 동행이 있기에  되도록 빨리 많이 눈도장만 꽝꽝 찍느라 발걸음이 바쁘다.  오랫동안 음미하고 사유할 시간은 없다.  



내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는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주에 왔는데 내가 좋아했던 그 골목에 친구 집이 있더라며 초대장을 날렸다.  그렇게 해서 오게 된 번개팅 같은 여행.  도착한 날부터 제주 하늘은 종일 비바람에 젖어있지만 그러면 어떠랴.  여행하면 맑은 날이란 공식은 지루하다.  영화 '토리노의 말'을 꽉 채웠던 황량한 폭풍 소리가 어젯밤부터 새벽까지 사계 마을에서 재현됐다.  문을 열고 나서면 나도 황량한 폭풍 한가운데 서 있던 '마부의 딸'  마음을 체감할 수 있을까.  사계리의 바람도 '토리노의 말'에 필적할 만한 볼륨이었다.



사계리 숙소 창문에서 바라본 풍경



파리에 에펠탑이 있다면 사계리엔 산방산이 있다.  파리 어느 방향에서든 볼 수 있는 에펠탑처럼 사계리 어느 곳에서든 산방산은 눈앞에 있다.  이번 여행에서 사계리를 동서남북 천천히 걸으면서 내 눈으로 발견한 한 가지.  그렇게 사계리가 내 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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