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매혹 당한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게 들어맞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카렌(메릴 스트립)의 집을 방문한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와 버클리(마이클 키친)가 우연찮게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데니스:
"모든 문학 중에 발에 관한 시는 없다는 것 아세요? 입, 눈, 손, 얼굴, 머리, 가슴, 다리, 팔 무릎 얘기까지 있는데 가엾은 발은 한 구절도 없어요. 왜 그렇다고 생각해요?"
카렌:
"우선권이겠죠. 직접 한번 만들어보지 그랬어요?"
데니스:
"운이 맞는 게 없어요."
카렌:
"Put ..(놓다)"
데니스:
"운 맞추기 어려울 거요"
카렌:
"괜찮아요. Doesn't matter.
그가 와서 말을 묶어놓고 농장에 들어와 발을 올려놓았다.
"Along he came and he did put...upon my farm his clumsy foot."
아마 그때부터 일 겁니다. 데니스와 버클리가 카렌에게 매혹 당하던 시점이.
최고의 스토리텔러 카렌은 조카들에게 그들이 던지는 첫 구절로 항상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듣는 이나 말하는 이나 모두 능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겠지요.
데니스가 첫 구절을 던집니다.
"중국인 챙 환은...빈민가에서 살았고...셜리라는 여자가 있었다"
카렌이 이야기를 이어나가지요.
"그녀는 중국 말을 잘했는데 선교사인 부모에게 배웠다. 챙 환은 포코사가의 파란 가로등 위층 방에서 혼자 살았다. 그는 창가에 앉아서 그의 가엾은 심장에는 고향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메아리가 울렸다.
천일야화처럼 이야기는 식탁 위의 초가 다 타들어가고, 벽난로 앞으로 자리를 옮긴 늦은 밤까지 이어집니다. 데니스와 버클리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카렌의 지성에 점점 매혹 당합니다. 남의 마음을 사로잡아 호린다는 매혹. 단어를 읊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렙니다.
카렌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데니스는 카렌에게 만년필을 선물합니다. 너무 값져서 선물을 사양하는 카렌에게 데니스는 말하지요. "글을 한 번 써봐요."
아마도 카렌이 데니스에게 매혹 당하는 시점은 바로 이 순간부터 아닐까 싶어요. 자신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봐 주는 사람. 그리고 그 재능을 지지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누군가에게 삶의 충전소 같은 존재일 거예요. 내 영혼이 너덜너덜 방전됐을 때 그의 앞에 서면 따뜻한 밥상처럼 날 채워주는 사람. 충전이 덜 돼도 괜찮다며 토닥여주는 사람. 카렌에게 데니스는 그런 존재였을 겁니다.
매혹 된다는 단어를 떠올리다, 어쩌면 매혹 된다에는 꺼져가는 열정에 불 쏘시개를 당기는 행위가 담겨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올 봄에는 무조건 매혹 되고 싶습니다. 그 말은 덕질을 좀더 충실히 해야겠다는 뜻이지요.
#아웃오브아프리카, #메릴스트립, #로버트레드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