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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Feb 13. 2024

매혹 당하는 결정적 순간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왼쪽부터 버클리, 카렌, 데니스


카렌의 집에 놀러 온 버클리와 데니스가 저녁식사까지 초대받는다.


케냐에 도착한 카렌이 우연히 데니스의 방에 들어왔다가  버클리를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  책 리스트만 봐도 데니스는 지성인




매혹 당한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게 들어맞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카렌(메릴 스트립)의 집을 방문한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와 버클리(마이클 키친)가 우연찮게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데니스:

"모든 문학 중에 발에 관한 시는 없다는 것 아세요?  입, 눈, 손, 얼굴, 머리, 가슴, 다리, 팔 무릎 얘기까지 있는데 가엾은 발은 한 구절도 없어요.  왜 그렇다고 생각해요?"


카렌:

"우선권이겠죠. 직접 한번 만들어보지 그랬어요?"


데니스:

"운이 맞는 게 없어요."


카렌:

"Put  ..(놓다)"


데니스:

"운 맞추기 어려울 거요"


카렌:

"괜찮아요.  Doesn't matter. 

그가 와서 말을 묶어놓고 농장에 들어와 발을 올려놓았다.

"Along he came and he did put...upon my farm his clumsy foot."






아마 그때부터 일 겁니다.  데니스와 버클리가 카렌에게 매혹 당하던 시점이.

최고의 스토리텔러 카렌은 조카들에게 그들이 던지는 첫 구절로 항상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듣는 이나 말하는 이나 모두 능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겠지요. 



데니스가 첫 구절을 던집니다. 

"중국인 챙 환은...빈민가에서 살았고...셜리라는 여자가 있었다"



카렌이 이야기를 이어나가지요.  

"그녀는 중국 말을 잘했는데 선교사인 부모에게 배웠다. 챙 환은 포코사가의 파란 가로등 위층 방에서 혼자 살았다. 그는 창가에 앉아서 그의 가엾은 심장에는 고향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메아리가 울렸다. 



천일야화처럼 이야기는 식탁 위의 초가 다 타들어가고,  벽난로 앞으로 자리를 옮긴 늦은 밤까지 이어집니다.  데니스와 버클리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카렌의 지성에 점점 매혹 당합니다.   남의 마음을 사로잡아 호린다는 매혹.  단어를 읊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렙니다. 





카렌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데니스는 카렌에게 만년필을 선물합니다.  너무 값져서 선물을 사양하는 카렌에게 데니스는 말하지요.  "글을 한 번 써봐요."



아마도 카렌이 데니스에게 매혹 당하는 시점은  바로 이 순간부터 아닐까 싶어요.  자신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봐 주는 사람.  그리고 그 재능을 지지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누군가에게 삶의 충전소 같은 존재일 거예요.  내 영혼이 너덜너덜 방전됐을 때 그의 앞에 서면 따뜻한 밥상처럼 날 채워주는 사람.  충전이 덜 돼도 괜찮다며 토닥여주는 사람.   카렌에게 데니스는 그런 존재였을 겁니다.  



매혹 된다는 단어를 떠올리다, 어쩌면 매혹 된다에는 꺼져가는 열정에 불 쏘시개를 당기는 행위가 담겨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올 봄에는 무조건 매혹 되고 싶습니다.  그 말은 덕질을 좀더 충실히 해야겠다는 뜻이지요. 




#아웃오브아프리카, #메릴스트립, #로버트레드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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