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청소년 기획 다큐멘터리 '위기의 아이들'이란 방송을 봤다. '무중력 아이들- 학교 부적응'이란 부제를 달은 이 프로그램에는 학교와 사회, 그 어느 곳에도 발 붙이지 못하는 '무중력'청소년들이 등장한다. 모범적이지도 않고 불량하지도 않으면서 주위에 관심 없이 홀로 지내는 아이를 일컫는 '무중력 아이'. 함께 살아가지만 그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고 관계 맺지 않는 것을 오히려 더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 그런데 중력처럼 끌어당기는 인간관계를 거부하는 '무중력 인간'이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 그래비티의 주인공 닥터 스톤(산드라 블록)은 전형적인 '무중력 인간'이다. 사고로 어린 딸을 잃은 뒤 그녀는 일하고 운전하고 자고 이런 일상만을 오가며 은둔형 외톨이로 살고 있다. 허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는 스톤에게 우주 비행사 코왈스키(조지 클루니)가 "우주에 오니 뭐가 좋냐?"라 질문을 던진다. "우주에서 일하니 조용해서 좋다"라 대답하는 스톤에게 우주는 자아성취의 꿈을 이루는 공간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고립시킬 수 있는 평화로운 공간일 뿐이다.
하지만 우주 왕복선이 인공위성의 잔해와 충돌하면서 스톤의 인생관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된다. 소음으로만 느껴지던 타인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나를 배려하고, 아물지 않을 것 같던 상처 또한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치유받고 있음을 알게 됐을 때 그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중력을 그리워하게 된다.
이런 절실함은 구사일생으로 탑승한 소유즈 우주선에서 극에 달한다. 지구와의 모든 연결이 단절된 공간, 평소의 그녀라면 익숙하고 편안했을 단절임에도 그녀는 응답 없는 교신기를 향해 "Anyone? Anybody? Can you hear them? Can you see them? Please call me?" 라며 누군가 자신을 불려주길 간절히 기다린다. 이때의 절박함은 살아서 지구로 귀환해야겠다는 삶에 대한 집착이 아닌, 그저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그 순간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극단의 외로움에서 나왔을 것이다.
사람이 겪는 절망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이 외로움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외로움을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서 느낀다면 어떨까? 물리적으론 그 누구보다 가까이 있지만, 심리적으론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는 관계. 자녀는 부모와의 대화가 간섭처럼 여겨져 꼭 필요한 OX 식 답변만 하고, 부부는 서로가 아닌 타인에게서 더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다면 이젠 중력의 방향을 바꿔보자! 내 마음이 가족에게서 너무 멀리 오랫동안 떠나와 있었다면, 귀환하는 방법을 잊어버리 전에 돌아가 보자.
바깥에서의 시간이 서럽고 힘든 날, 다 그만두고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생각이 드는 날, 집이 있어서 그곳의 따뜻함이 있어서 많은 것들을 견딘 날. 지친 발걸음을 집으로 이끌게 했던 중력은 따뜻한 밥을 지어놓고 기다리던 어머니 같은 가족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까이 있어 편하다는 이유로 가장 배려해주지 못했던 대상이 가족일 수도 있다. 이제는 내 안의 시선을 타인이 아닌 가족으로 돌려보자.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떨 때 가장 행복해하는지, 요즘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지, 이렇게 서로를 향한 관심의 중력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꿈꾸는 달콤한 가족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