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조용 다림질 / 당근

by 김키친

조용조용 다림질)

좋아하는 이들과 봄 같은 가을을 마음 가득 신체 곳곳에 차곡차곡 포대어 온 기분이 든다. 흐들한 날씨에 여기 네덜란드는 그저 조용한 하루들이지만 한국서 담아 온 여기저기가 다부지고 건강하다. 나를 다려준다.

먹어보니 맛있다고 챙겨주고, 써보니 좋았다고 보내주고, 그냥 하나 사주고 싶었다고 사다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녹아내리는 몸을 이끌어 천혜향은 저리 가라라는 당꼬마를 기어코 두 박스나 날려주는 제주의 마음까지 고이고이 데려왔다, 이곳 이국으로. 그 하나들의 결들로 일상의 표면에 맺힐 네덜란드의 물기가 나는 벌써 맑음이다.


당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람은 그런가 보다. 싫어하는 것은 당근이라는 마알간 소리나 해대던 프랑스 시골 어느 어학원에서의 나는 십수 년이 지나 색색의 당근이란 당근은 다 먹어대는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7년이면 한 인간의 모든 세포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그런 와중에 같은 존재임을 인식하는 유일함은 기억이라고도 한다. 바로 그 기억 때문에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같지 않은 그때의 나와 오늘의 지금이 있다. 한 짐 가득 여러 도시에서 시험을 치르며 기죽지 않았던 혹은 그러지 않으려 부단하던 어느 날의 나를 기억한다. 소박하고 간결히 살아가고자 하는 오늘과 그 어린 날의 나는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같을까.

그럼에도-의 나는 언제나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다. 미련이 남고 후회가 스치는 순간들 마저도 항상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선의 결정을 쥐여주었으리라. 나는 그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충분하고 그래서 아쉽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까 오늘은 달큰한 당근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쥐여줘야지. 당근으로 웃는 오늘도 오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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