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로 읽는 세상>
책을 고르는 기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제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신문, 칼럼, sns 등 매체에 소개된 책의 내용이 흥미로워 보일 때
2. 제목이 재밌어 보일 때
3. 책을 몇 장 넘겼는데 단박에 흥미로운 내용이 나올 때
이 중 2번과 3번 기준은 도서관, 서점 등 저의 육체가 오프라인 환경에 있을 때 참고하는 기준입니다. 2번 기준은, 글쎄요,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라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제목이 재밌어 보이면 괜히 눈이 가잖아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 중 90% 정도는 제목에 있다고 봅니다. 5% 정도는 예쁜 색감의 표지에...
이번 책인 <단위로 읽는 세상>은 3번 기준으로 도서관에서 고른 책이었습니다. 몇 장 훌훌 넘겼는데, 단박에 나온 소제목이 '여의도의 100배' 였습니다. 밑에 나온 내용을 슬쩍 보니, 왜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면적을 비교할 때 여의도의 몇 배, 라고 설명하는가? 에 대한 서술이 나오는 거예요. 아 이거 재밌어보이잖아요. '단위'를 제재로 사회 기저에 깔린 의미와 상식과 정보를 주는 책인가보네! 책도 그렇게 두껍지 않고! 좋아 빌리자!
다 읽은 후 결론을 말하자면, 예상에서 벗어나는 책은 아니었지만, 3번 기준으로 책을 고를 때 피할 수 없는 문제점을 다시 발견했다는 겁니다. 바로바로 '책 고를 때 흥미롭게 읽었던 그 부분만 흥미로웠다'라는 문제점.
이 책은 꽤 다양한 단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미터, 그램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익숙하게 쓰는 단위는 물론이고, 캐럿(carat), 또 캐럿(karat) 같은 특정 물질(다이아몬드, 금)에 관련된 단위에, 시간과 속도에 관련된 단위도 있어요. 어떨 땐 어원을 알려주고, 어떨 땐 왜 이 단위를 쓰는지 설명하고, 어떨 땐 왜 이 나라는 이 단위를 안 쓰는가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왜 지 혼자서 미터랑 킬로그램 안 쓰고 마일과 파운드를 쓰는지 같은 이야기요. 제일 웃겼던 단위 얘기는 분(minute)과 초(second)의 영어 어원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시(hour)보다 상세한 단위를 알려주니까 분은 minute! 두 번째로 상세한 단위를 알려주니까 초는 second! 이렇게 하자고 정한 사람이 한국인이었다면 분명 첫째는 하나 둘째는 두리라고 지었을 것이에요.
뭐 이렇게 재밌는 에피소드는 하하호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데, 와트나 마력같은 부분은 정말이지 재미없었어요. 제가 원래 그쪽 분야에 관심이 없어서 재미없었나봐요~라고 말하기에는, 제가 평소에 분과 초의 열렬한 팬도 아니었거든요. 이 책은 8개의 대 챕터 안에 5~8개의 소 챕터가 들어가있는 구조입니다. 단위에 대해 말하는 책이라 그런지 단위가 매우 촘촘하게 구성되어요. 이번 챕터의 내용을 읽으려면 이전 챕터의 내용을 다 알고 와야하는 구조가 아니니까, 편하게 내가 읽고 싶은 부분만 읽고 싶다면 무리 없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완독'에 대한 강박이 좀 있는 사람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는 것...그래서 재미없는 부분도 울며 단위 먹기...아니 울며 겨자 먹기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으로 여성은 과학과 관련된 내용에 관심을 덜 보이는 것 같아. 하지만 이번 내용은 여자들이 특히 관심을 가질 거야! 왜냐하면 보석에 관련된 내용이거든' 이라는 소리를 써놓은 챕터도 읽을 수밖에 없어서 슬펐습니다.
여러 가지 단위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나 어원, 에피소드를 알 수 있어서 재밌는 책이었지만, 재밌는 부분이 고르게 밀도있지 않아서 아쉬웠던 책. PC하지 못한 조그마한 단락이 저한테 특히 많이 거슬리는 언PC여서 슬펐던 책. <단위로 읽는 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