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리 Feb 07. 2019

90년대생에게는 추천하지 않는 책

<90년생이 온다>

1.

일본에 <소년 점프>가 있다면 한국에는 <wink>가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비교는 절대 못 됩니다만, 뭐 어쨌든 저한텐 점프보단 윙크가 더 애정이 가는 만화잡지입니다. 그 중 중학생이던 저에게 대학생의 로망을 무럭무럭 키워준 만화 <캠퍼스>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심리테스트를 하고, 그 결과를 보며 "오오 맞아, 내가 딱 이런 사람이지!"하고 감탄하는 주인공들. 이 상황을 지켜본 친구는 생각합니다. '이미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 심리테스트는 뭐하러 하는 걸까?'


2.

이 책은 90년대생의 출현 배경(1부), 직원으로서의 90년대생(2부), 소비자로서의 90년대생(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무리를 해주는 챕터가 하나 정도 더 있어주면 더 좋았겠지만, 분명하고 깔끔한 구성이라는 독후감을 주기엔 충분했습니다. 구성만큼 내용도 나쁘지 않아서, 인터뷰도 사례도 적지 않았고 트렌드에 뒤처진 이야기들도 없었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제가 든 생각은, '이 책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아 성찰과 자기 분석은 더 나은 나를 위해(ㅎㅎ) 필요한 단계인 것은 맞지만, 그것은 나라는 개인에 집중했을 때의 얘기이지, 나라는 개인이 속한 세대를 바라볼 때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챕터의 제목만 다시 한 번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90년대생 독자를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90년대생과 '관련된' 기업을 위해 쓰인 책입니다.


4.

그렇다고 이 책을 재미없게 읽은 것은 아닙니다. 심리테스트도 그렇잖아요. 이미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니까, 내가 생각했던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신기해서, 그게 재밌어서 하는 게 심리테스트 아니겠어요. 이 책에서 찾은 재미는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던 내 특성을 활자로 마주하는 재미'였습니다.


5.

핸드폰을 제 2의 신체마냥 하루 죙일 붙들고 사는 습관은 "항상 누군가와 연락이 가능한 상태가 되면서, 항상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게 되"었기 때문이고(p90), 유튜브의 6초짜리 광고조차 길게 느껴지는 지루함은 "성장 환경에 기인한 조급성" 때문이고(p219), 맥도날드 키오스크에 두려움을 갖는 박막례 할머니를 보며 어쩐지 짠한 마음이 든 이유는 "기술의 발전 방향이 소비자의 편리보다 점포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더군요.(p289) 막연히 둥실둥실 떠다니던 제 특성을 이렇게 텍스트로 보니 후련해지고 분명해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6.

뭐 하지만 90년대생인 저에게는 단지 그 뿐.  언젠가 제가 지금보다 조금 더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00년생이 온다> 혹은 <10년생이 온다> 시리즈가 나온다면, <90년생이 온다>보다는 좀 더 흥미진진하게, 한 손으론 팝콘 먹고 한 손으론 노트 필기하면서, 보다 새롭고 낯선 느낌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책을 고르는 기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