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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리 Jan 14. 2019

좋아해서 더 알고싶은 당신

솔직한 식품

며칠 전에 엘레베이터를 탔을 때의 일입니다. 같은 학원에서 나온 듯한 성인 남녀 한 쌍이 엘레베이터에 탔습니다. 여자가 남자한테 먼저 묻습니다.

"선생님은 어디서 출퇴근 하세요?" "전 xx동이요." "어머 멀다. 차 타고 다니세요?" "네 차 타고 다녀요." "아침에 출근하기 힘드시겠다. 혼자 사시는 거예요?" "아뇨,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요." 이어지는 질문들 그리고 답변들... 10층을 내려오는 짧은 시간동안 듣게 된 대화였지만, 질문자가 피질문자(?)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니 세상에 남의 얘기로 서론을 이렇게 길게 쓰다니.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좋아하면 알고 싶어진다"는 거였는데요.


먹는 걸 좋아합니다. 남들이 맛있다는 것도 먹어보고 싶고, 왠지 이 장르는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고, 아침에는 이걸 먹었으니 저녁에는 뭘 먹을까 고민도 하고...뽈레는 이런 류의 '알고 싶은" 정보들을 알려줘서 이보다 더 감사하게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먹는 걸 계속해서 좋아하다보니, 이런 삼시세끼적(?)이고 위장 카타르시스적(?)인 궁금한 걸 넘어서, 식품 자체에 대한 것들이 궁금해졌습니다. 김치는 수제비랑 먹으면 찰떡콩떡이다 라는 정보도 좋지만, 김치가 나트륨이 세상마상이라던데 먹어도 되는 걸까, 에 대한 정보같은 것들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제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 "솔직한 음식"이 아니라 "솔직한 식품"이라는 워딩이, '음용가능한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겠다는 이 책의 입장을 그야말로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으로도 보여 더 믿을 만 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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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눠서 식품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1부는 식품에 대한 흔한 오해들을 풀어주고, 2부는 그런 오해들이 왜 생겼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렇게 1부 2부를 나눌 필요가 있었나 싶었습니다. 1부에 나오는 대표적인 오해에 대한 예시가 2부에서도 나오고, 오해들이 생긴 배경이 1부에서도 전혀 언급이 되지 않는 게 아니었거든요. 읽는 내내 아이고 작가님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만큼 무궁무진한 사례들이 튀어나옵니다. 막걸리, 사카린, DDT, 커피믹스, MSG, 장르와 시대와 나라를 가리지 않고 나오는 사례들의 풍부함에 한 번 놀라고 이를 조목조목 분석하는 책의 침착함에 두 번 놀랍니다.


 제가 특히 놀란 이야기들을 소개해보자면 이런 것들입니다.


1 감비우스의 띠

감자탕은 고기가 메인인데 왜 감자탕이냐? -> 감자탕에 들어가는 돼지 등뼈를 감자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 그 뼈를 왜 감자라고 부르느냐? -> 감자탕에 들어가는 뼈이기 때문이다. -> ???


2 돈까스 삼단논법

a. 돼지고기에 알레르기가 없다  b. 튀김에 알레르기가 없다. c. 하지만 돼지고기를 튀긴 돈까스에는 알레르기가 있다  d. ???


정말이지 놀라운 식품의 세계... 1번 얘기 같은 경우엔 사실 과학적 입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가설에 그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메타분석과 글루코사민 분자 원자 기타 등등 문송한 저에게 눈알 핑핑 돌아가는 책의 내용들 사이사이에 감칠맛을 넣어주어서, 아주 감사하며 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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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메시지를, 저는 이 책의 어느 부분에 나오는 문장으로 이해했습니다. '마이크로한 과학과 매크로한 역학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캡사이신은 지방 분해 효과가 있어 다이어트에 효과적일 수 있지만(마이크로), 매운 맛은 과식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매크로). 어떤 식품이 반드시 어떤 기능 혹은 부작용을 갖고 있을 것이다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요인과 상황과 변수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식품에 대해 취해야 하는 자세는, 경계하되 경계 자체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는 것, 그리고 맛있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냠냠하는 것이 아닐까(제일 중요)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전반에 걸쳐 어떤 확정적인 문장을 지양하던 책이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확신에 차서 남긴 이 문장을 본다면, 이 책에 대한 제 이해가 크게 틀린 것 같지는 않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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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 한가지는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먹는 식품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하지 않다. 좋고 나쁘고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는 편하고 즐겁게 즐기는 것이 좋다."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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