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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리 Jan 06. 2019

헤이 미국인 두 유 노우 우금치 전투?

헤이 미국인 두 유 노우 우금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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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혹한 것이 사실입니다. 타인의 영향력? 타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는 책인가? 그럼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나오지 않을까? 어? 그럼그럼 타인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을까???

결론은 그런 거 없었다... 라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조금 진부할 정도로 당연한 얘기들을 합니다. 너무 당연해서 '그런 거 안 알려주는군'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연한 것들. 예를 들어 '사회적 분위기로 자살 테러를 정당화시킬 수 있다', '장기간 혼자 있게 하면 외롭게 만들 수 있다'... 쓰고 보니 부끄러울 정도로 더 당연하게 느껴지는 메시지들이라 더 허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도 분명히 장점은 있었습니다. 무지하게 풍부한 사례와 인터뷰이들이 그것입니다. 5달 동안 북극에서 혼자 살아야 했던 탐험가 코톨드씨라든지, 팔레스타인 자살테러범의 유가족들이라든지 등등은 생소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꽤 기억에 남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여기서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점은 적어도 저에게는 별로 어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례들이라는 것이 모두 소위 '서양문화권' 으로 불리는 지역의 이야기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유럽과 미국 본토에 관련된 것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거죠. 버닝턴 전투에서 이선 앨런이라는 영웅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약 5장에 걸쳐서 나오는데, 버닝턴? 버닝턴이 어디야. 그 전투가 일어나야 했던 역사적 당위성은? 싸운 사람이 이선 앨런? 내가 아는 앨런은 우디 앨런 뿐인데... 미국인 독자에게 우금치 전투를 사례로 든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습니다. do you know u-gm-chi? no not kimchi, u-gm-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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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테 삐진 내용이 좀 길어지긴 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떠오른 의문이 있었습니다.
"영웅적 행동은 정말 영웅적인가?"
책이 소개하는 여러 '타인의 영향력' 중, '영웅적 타인'에 대한 이야기는 '충동적'이라는 속성을 강조합니다. 갑자기 날아든 수류탄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으로 막아내 아군을 보호한 사례 등등이 나옵니다. 여기서 저자가 주목한 점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였습니다. 범인일지라도, 심지어 범인에도 미치지 않은 더욱 소심한 사람일지라도 어떤 특정한 상황이 주어진다면 '충동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타인의 목숨을 구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라면, '무조건 반사'와 뭐가 다를까라는 의문이 든 것입니다. 앉아있는 사람 무릎을 치면 다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것처럼, 위험한 상황이라는 '자극'에 대해 생리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라면, 어...이건 생리현상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물론 그 현상에 대해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후적인 이야기이고, 매우 공리적인 행동임에 분명하지만, 어떤 영웅적 행위는 사실 자극에 따른 신체적 메커니즘의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이렇게 돌려돌려 돌림판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말해야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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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엄청나게 에둘러 말하는 저의 의견을 아주 고풍스러운 한 문장으로 정리한 분이 계셔서 그 문장으로 이 책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아 그래서 이 책에 대한 결론은 우금치 전투가 아니라요, <미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분이라면 더욱 풍부하게 읽을 수 있는 인간 심리 사례 모음집> 정도가 되겠습니다.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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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언제나 실수로 영웅이 된다."
움베르토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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