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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리 Feb 28. 2019

지방시가 대리운전기사를 한다면

대리사회

1.

<매일 갑니다, 편의점>은 편의점 점주가 쓴 편의점 에세이입니다.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는 관리소장이 쓴 주민 관찰 에세이죠.  둘 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맛이 있었습니다. 아 정말 편의점 얘기구나. 아 정말 아파트 얘기구나. 뭐 이 정도의 간편한 독후감이 있었다는 거였죠.


2.

<대리사회>를 읽으면서 제가 저 책들에서 왜 아쉽고도 간편한 독후감을 느꼈는지 알았습니다. 그 직업을 가진 생활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혹은 그 직업을 가진 생활을 다른 관점으로 풀어쓴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단편적이었다는 얘기입니다.


3.

<대리사회>는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사람이 대리운전기사를 하면서 느낀 바를 서술한 책입니다.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먹물과 대리. 제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두 단어 사이에는 꽤 큰 괴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이 저자의 대리운전 손님들은 이야기를 몇 번 나누고 단박에 '기사님 배운 분이셨네'를 간파하고 놀라워하기도 합니다.


4.

바로 이 괴리가 이 책을 단순한 직업 서술기에 그치지 않게 해줍니다. 다행히도 저자가 화공생명공학과라든지 건축토목학과를 전공하지 않은 덕분에, 이 책의 성찰은 인문학적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왜 다행이냐면 그 동네는 제가 모르는 얘기니까요. 호호호.) 그런데 이 분이 펼치는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게 참 대단합니다. '대리'라는 호칭에서만 우리 사회의 갑-을 문화를 끌어내면서 수 페이지를 후루룩 써내려갑니다. 대리를 '불렀다', 대리님이 '오셨다' 라는 동사의 차이를 포착해서 손님이 가지는 태도의 품격을 말합니다. 대리기사는 차에서 손님의 방구 냄새가 나도 창문을 내릴 수 없고, 귀를 울리는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도 볼륨을 줄일 수 없다는 암묵적으로 합의된 규칙에서는 '대리된 공간에서 나의 신체는 제한된다'라는 명제를 도출합니다.


5.

'대리'라는 단어를 대리기사에만 국한지어 쓰지도 않습니다. 생계를 유지하느라 부모로서의 역할을 아내에게 '대리'했다고 말합니다. 부부 모두 생활전선에 나가게 되어 아이의 육아를 친어머니에게 부탁하는 상황에서도 부모의 역할은 '대리'된다고 합니다. 알고 보면, 우리 사회가 모두의 대리 덕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콜을 잡기 위해 무단횡단을 감수해가며 헐레벌떡 뛰어나가고, 손님을 내려주고 난 낯선 동네에서 집까지 몇 시간을 걸어오는 육체적 노동 속에서 이 정도의 사유를 해내다니. 비꼬는 의미 없이 순수하게 감탄했습니다. 물론 살짝 sarcasm을 섞자면 이렇게까지 생각할 일인가, 라는 소감이 언뜻 든 것도 사실입니다만.


6.

직업 이야기를 엿보는 일은 언제나 재밌습니다. 제가 체험해보지 않았던 업계의 이면을 보는 것도 즐겁고, 다양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훔쳐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내가 가진 직업이 무엇에 기여하는가? 왜 수요가 발생하는가?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 성찰한다면, 그 순간 단순한 직업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형태의 텍스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르포르타주가 될 수도 있고, 인문학 서적이 될 수도 있고, 논문이 될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형태가 아니라, 그런 텍스트가 정말 재미있다는 거니까요, 여러분 다들 본인의 직업에 대해 글을 쓰고 기획해서 출판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읽고 싶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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