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너무 진지해, 스몰토크를 못하는 나...
나는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늘 어려웠다.
내 주관이 없었고, 참 우유부단한 아이였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모든 게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조금 불편하면 되지.'
'내가 조금 손해 보면 되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건 정말 괜찮아서 괜찮은 게 아니었다.
'어차피 말해봤자 서로 불편해질 텐데,
내 의견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잖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분명
내가 원하는 것이 있었다. 다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항상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며 눈치를 봤고, 위축되었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는 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앞에 나가 당당하게 말하고 싶은 내가 있었고,
소의 꼬리보다 닭의 머리가 되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
나는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는 데 익숙하지 않다.
스몰토크는 어딘가 모르게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고,
왜 그런 말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쉬는 일을 잘 못한다.
TV를 보거나, 영상을 보며 쉬는 시간에도
마음 한편이 늘 불편하다.
어쩌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쌓기 위해
스몰토크가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늘 진지한 이야기만 하려는 나.
그러니 관계가 쉽게 깊어지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
나는 사람에게 마음을 잘 주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도 늘 겉도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먼저 벽을 치니,
상대도 쉽게 다가오지 못할 수밖에.
그런데 또 한 번 마음을 열면
정이 너무 깊이 들어 버린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흔들린다.
나의 이런 성향은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된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소통은 늘 어렵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겠지.'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불만을 삼킨 채 살아왔다.
-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한다는 걸.
내 마음을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고, 조용히 옆에만 있어도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
그런 관계 속에서라야 나도 치유받고,
나 역시 누군가를 따뜻하게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내 마음 한가운데에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던 이유는,
내 마음과 감정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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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사랑을 주고
항상 옆에서 든든한 편이 되어주는
엄마와 가족에게 오히려 내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실망시킬까 봐.
괜찮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였을 때
가족이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걱정할게 뻔하니까.
가장 솔직한 속 마음의 말을 못 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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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말을 못 해서가 아니라,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를 숨기며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걸.
그럼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