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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구경 언제 가세요?

by 고은유

#1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와도 '아유 다시 겨울이 왔나봐요~' 하고 가벼운 인사말로 삼을 뿐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미 봄이 우리 곁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마주치는 꽃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개나리, 매화, 산수유, 목련, 벚꽃.


개중엔 초록색 머리 꽁다리(?)만 땅 위로 솟아난 아이도 있다. 머리만 삐죽 나온 이 아이의 이름은 뭘까? 양파같이 생긴게... 히아신스인가...?


정답은 수선화였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머리가(?) 혹은 키가(?) 자란다. 나도 모르게 이 아이의 성장을 기다리고 있다. 매일 출근길이 궁금해지는, 기다려지는 신비로운 계절이 지금이다.


#2

아파트 입구에서 튤립을 발견했다. 지난주까지는 없었는데 새로 심은 모양이다. 사진을 찍을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나처럼 튤립 근처를 서성이던 아주머니가 내게말을 건넸다.


"예쁘죠?"


서로 인사를 나눈 것도 아니고, 심지어 눈은 튤립을 향하느라 서로를 쳐다볼 새도 없었지만 그 질문의 주인은 나임에 틀림 없었다.


"네. 너무 예뻐요."


우연히 마주친 이 튤립들을 마음에만 담고 가기에는 무척 아쉬우셨을 거다. 주고 받은건 외마디 뿐이었지만 아주머니의 발길은 한결 가벼워졌고, 내 기분은 산뜻해졌다.


결국 나는 튤립을 사진으로 남기기로 했다.


이 봄에는 기분 좋아질 일들이 가득하다.



#3

이 따스한 봄날에 사무실에만 있는건 고역이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갈 때면 저 답답한 실내가 정말 내가 돌아갈 곳이 맞는지 마음이 계속해서 물어본다.


월요일은 그런대로 지나가고 화요일 점심시간, 누군가 다시금 머리를 내밀었다.


"나는 지금 당장 봄을 만끽하고 싶어!"


(마음1/참기 담당) 너… 너무 마음가는대로 하는 거 아냐? 휴가는 소중한데 좀 아껴야하는 거 아닌가?

(마음2/저지르기 담당) 야!! 이렇게 뭔가 강하게 하고싶은 날이 얼마나 돼?


(마음1/참기 담당) 몇번 안되지

(마음2/저지르기 담당) 그럼 하고싶은 걸 해야 돼? 말아야 돼?


(마음1/참기 담당) 해야지. 그래 하자!

(마음2/저지르기 담당) 역시 나의 친구. 잘생각했어.


길게 고민하지 않고 오후 반차를 냈다.


수요일.

봄은 짧다. 지금이 그 짧은 봄의 소중한 조각이라고 생각하니 화요일보다 더 빨리 떠날 수 있었다.


휴가를 내고 고양이들과 여유롭게 점심시간을 보낸 뒤 평일에 일찍 닫아 가지 못했던, 좋아하는 카페에 들렀다.


평소에는 카페 안쪽의 넓은 책상에 앉았는데, 예전부터 앉아보고 싶었던, 창가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는 테이블이 낮아 책을 읽기에는 불편함이 있는 편인데 날이 날이니만큼 햇살을 즐겨보자 싶어 처음으로 앉아봤다.


그리고 평소에 그 공간의 인테리어에 대해 몹시 궁금했었는데 사장님께 여쭤보기도 했다. 사장님과 꽤 긴 대화를 나누느라 내가 계획했던 것들은 거의 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4

고대하던 금요일.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주변에서 주말 계획을 물어본다.

"은유 과장님은 이번 주말에도 좋은 데 가세요?"


"이번주는 어디 멀리 갈 것 같진 않고 이제 생각해 봐야죠. ㅎㅎ"


"오잉? 벚꽃 구경 가셔야죠."


"아 그렇죠, 벚꽃 보러 갈거에요."


주말에 벚꽃을 보러 갈 계획이다.


오늘은 일을 하다보니 일찍 퇴근하지는 못했다. 오늘도 가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어딜 가기에는 늦었다는 생각과 함께 집에 있는 고양이 생각도 나고 그냥 평소와 같은 금요일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그런데 밖에 피어있는 하얀 벚꽃들과 그 길을 거니는 내 모습이 떠오르며 마음이 바뀌었다.


오늘의 벚꽃이 보고 싶었다.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 먼저 퇴근합니다. 벚꽃 보러 가요.^^"


최근 헌책방에서 재미삼아 산, "30대에 인생을 바꾸는 좋은 습관 100가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판단은 이성적으로 꼼꼼히 하고, 결단은 감정적으로 단번에 하라고.


결단을 빠르게 하려면 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한다.

나를 믿기. 그리고 하고싶은 일은 바로 하기. 그렇게 즐기기.


"벚꽃 구경 언제 가세요?"


"지금 당장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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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