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 템플스테이-두번째 이야기

강원도 인제 캠핑.

by Choi


11시까지 시간 늦지 말고 오세요.

몇 번의 당부 전화를 받았다. 문자 메시지도 받았다. 강원도가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는 아닌 만큼 늦는 분들이 종종 계셨던 모양이다.


우리 가족은 텐트를 꽁꽁 밀봉 하듯이 닫아 놓고 혹시나 비바람이 들이칠까 큰 돌로 가장자리를 성처럼 쌓아 두고 캠핑장을 떠났다. 10시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서 안내하시는 분이 깜짝 놀라셨다. 그 당시만 해도 코로나로 단체나 실내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없었다. 안내하시는 분은 우리 가족을 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혀 놓고 준비한 코로나 자가 키트를 들고 오셨다. 윽 큰일이다...


몇 달 전 우리 집 제일 작은 사람 아이가 학교에서 훈장을 달듯 코로나를 집으로 모셔왔고

연이어 내가 바톤 터치를 했고

또 연이어 남편이 마무리를 시원하게 한지 막 4주가 차 지난 터였다.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이제 4주 정도 지났다고 말씀을 드리니 상관없이,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온다면 템플스테이를 할 수 없다고 하셨다. 집에서 자가 테스트를 할 때 우리 가족은 전체 다 음성. 별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자가 테스트는 사실 믿을 만 한 게 못 되었다. 우리 집 작은 사람 아이가 확진되었을 때도 자가 테스트는 여전히 음성이었고 6번 만에 양성이 나왔었다.


제일 마지막에 코로나를 회복한 남편이 먼저 했다. 제일 위험했으니 말이다.

드드드드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휴~

다행히 음성. 괜찮았다. 그리고 나, 우리 집 작은 사람 다 괜찮았다.

안내하시는 분도 함께 긴장 하셨는지 막 웃으셨다.

옷을 가지고 오셨다. 세 벌. 연한 민트색이었다. 무슨 절복이 이리 이쁜 색이야? 산 위에 있는 절이라 바람이 차가웠다. 날씨에 비해 옷이 얇았다. 바지를 입고 밖에 템플스테이 복을 입었다. 점심시간에 맞물려 도착한 우리는 공양간에 가서 남은 밥을 후다닥 먹었다. 얼마 만에 먹는 절밥이던가. 꿀맛이었다. 김치와 된장 김과 장아찌 반찬이었지만 진짜! 꿀맛이었다. 외부인은 들어 올 수 없었다. 오직 스님과 절에 관계된 분들만 가능했다. 템플스테이 옷의 힘이었다. 하하


배불리 먹고 지도스님을 기다렸다. 드디어 오셨다. 다른 몇몇 분들도 계셨고 또 우리 같은 가족도 있었다. 그 집은 좀 큰 중학생 딸이 있었다. 군대 가기 전 젊은 대학생도 있었다. 딸과 함께한 두 모녀도 있었고 홀로 오신 분들도 제법 계셨다. 기분이 야릇했다. 다들 분명 이곳 템플 스테이를 택한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밀짚모자를 쓰고 스님을 따랐다. 스님은 우리 집 작은 사람을 보더니 옆으로 딱 데려가셨다. 농담도 주고받으며 아이와 함께 친밀해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주셨다. 감사하게도 아이의 긴장은 차차 풀어졌고 얼굴에 미소가 버졌다. 짝짖기 게임을 할때는 치열하게 하더라.

함께 산으로

프로그램은 쉴 틈이 없었다. 백담사 뒤쪽 산속으로 향했다. 산속에서 명상하고 계곡과 숲을 향해 소리도 외쳤다. 눈을 가리고 산길을 따라가기도 하고 한밤 10시에 나와 백담사 다리 위에 대짜로 누워 하늘에 별을 보기도 했다. 찬바람에 코 끝이 시렸다. 가깝고 짖은 어두운 하늘에 보이는 별은 춥다는 느낌, 코가 시리다는 느낌, 손이 시리다는 느낌 그 모든것을 망각하게 했다. 살포시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다 뺀채 누워있으면 스님이 돌아 다니며 다리위에 누워 있는 우리 한명 한명 어깨와 다리를 털어 주셨다.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알기에 스님의 노고에 무척 감사했다. 그분의 마음이 전해졌다. 아 이래서 템플 스테이를 하는구나. 따뜻한 스님의 마음은 머릿속 모든 생각을 멈추게 해주었다.


연꽃 초를 들고 절을 한 바퀴 돌기도 했고 스님과 차를 마시며 초코파이 놀이도 했다. 초코파이 놀이는 초코파이 위에 스님이 숫자와 여러 단어를 적어 놓으셨고 우리는 마음에 드는 초코파이를 고르는 게임이었다. 거기에 따른 스님의 해석이 더욱 재미있었다. 마지막, 책에 한 구절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고 절하는 법을 배웠다. 남편과 아이가 즐거워했다. 고맙고 여기까지 함께해준 가족에게 감사했다.


다음날은 절에 큰 행사가 있는 관계로 율력을 했다. 마지막이라 아쉬웠다. 새벽 4시 30에 일어나 조용히 홀로 나한전에 가서 앉았다. 108배를 올렸다. 이른 새벽 어둑어둑한 하늘 아래 이처럼 고요한 절은 처음이다. 절경이다. 사진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가슴속에 깊숙이 그때 그 순간을 새겨 넣었다.


형광나무와 대웅전


테이블 세팅, 의자 나르기, 줄 맞추기, 도시락 배치하기 등 백담사 모든 스님과 우리는 아침 8시부터 일을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우리 집 작은 남자아이가 무척 좋아했다. 율력을 이렇게 좋아할지 몰랐다. 스님 칭찬을 받더니 테이블과 의자를 힘센 고릴라처럼 마구마구 옮겼다. 웃음밖에 나질 않았다. 부엌에서 방울 토마토 나누어 담기도 로봇처럼 잘 해냈다. 이런 단순 노동을 매우 즐겨 하는듯 했다.


일을 마무리 한 뒤 점심을 먹고 내려왔다. 비록 1박 2일이었지만 많은 행사과 율력까지 함께 해서인지 한 3일은 머문 것 같았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돌아갈 텐트가 있다는 안도감과 행복, 10분 거리에 우리 보금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니 기운이 났다. 텐트 앞에는 계곡이 있고 산이 있고 나무가 있다. 그 사실이 더욱 나를 설레게 했다.


텐트는 무사히 잘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낮잠을 잤다. 저녁에는 장작불을 피우고 남은 마시멜로와 숏다리를 뜯어먹었다. 우리 가족은 템플스테이 이야기로 바빴다. 다들 얼굴은 초취 했다. 피곤하긴 했나 보다. 아이는 여전히 흥분 상태이다. 학교 가서 친구들에게 빨리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한다. 친구 중 한 명도 템플스테이를 한 친구가 있다며 그 친구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특히 율력 한 부분. 칭찬받아서 좋았고 목장갑 끼고 일하면서 의자를 한 번에 두 개씩 옮겼다며 스스로 만족해했다. ( 진짜 단순하다. 내가 저렇게 순진무구한 아이를 키웠나 보다.)



다음날 서둘러 짐을 패킹하고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거지꼴로 서울로 향했다. 중간 점심은 5일 만에 맛보는 문명이 깃든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 요즘 우리 가족은 이날의 기억때문인지, 항상 캠핑의 마무리는 짜장면과 함께하고 있다. 우리 가족만의 가족 행사랄까? 작은 동네, 시골 마을 읍의 짜장면 맛은 시골 맛이었다. 특히 탕수육!! 양이 너무 푸짐하다~


'엄마, 우리 담에 또다시 꼭 오자!'

'그래~~!!'


아이는 뒷좌석에서 코까지 골며 숙면을 취했고 옆자석 남편은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았다. 난 졸개껌을 딱딱 씹으며 네비와 함께 대화하며 집중해서 열심히 운전했다.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던 순간 이 운전을 내가 언제 까지 할수 있겠냐는 생각이 지나갔다. 아무래도 몸과 뼈과 더 튼튼한 남편도 연수받고 운전해야 할 듯 하다. 같이 번갈아 한다면 더 먼 곳도 갈 수 있겠지?


좀 한번 배워보자. 운전. 남편아!!!




<대문사진 출처: 경북매일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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