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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Aug 26. 2022

집사의 미련한 행동

집사! 정신 똑바로 차려!

미련하다. 미련해. '인간의 사고는 곧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이 그 사람이다'라는 구절을 어디선가 읽었다. 사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몸소 느끼기도 한다. 그 사고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이 생각한 그 사고는 그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 우지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그 한 생각이 다 무너져 버렸다. 난 참 미련하다.


집사야. 좀 똑똑해줘봐.


코코가 외출도 한다. 산책은 이제 함께 걷기 시작했고 외부 환경에 크게 거부감이 없다. 바닷가도 다녀왔다. 처음엔 상상 밖으로 힘이 들었지만, 이젠 더우면 계곡에 들어가 앉아 있기도 한다. 무서운 녀석. 대범한 녀석.


남편이 다시 출장을 갔고, 긴 10흘 동안 아이와 함께 집에 있기 싫었다. 4시간 거리, 울산으로 향했다. 코코도 함께다녀왔다. 앞좌석, 내가 보이는 곳에 두면 울지 않았고 나름 괜찮았다. 휴게소마다 들러 바람을 씌어 주었고 한없이 빠지는 털도 밖에서 덕분에 쉽게 털어 낼 수 있었다. 비행기 이후 장거리는 처음이었다. 가까운 한두 시간 거리는 잘 있지만 4~5시간 이동 거리는 코코도 좀 힘들었나 보다. 나의 무리한 욕심 때문이었다.


친정이 좀 멀다 보니 한국 와서 자주 방문하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날 때는 방문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동안 자주 만나지도 들여다보지도 못한 나만의 이기적인 미안함을 풀어보자는, 결국 나의 만족감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분들 역시 좋아했다. 물론 그 좋아하시는 얼굴을 보며 마음에 안정을 찾는 사람 또한 결국은 나이지만  나이 들어가는 그 두 분을, 시간 앞에 그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늙음을 마주하고 계시는 두 분이 아주 그립기도 해서이다. 곧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먼 길이었고 코코와 함께라서 더욱 신경이 곤두섰던 것 같다.


다녀와서 나도 아프고 코코도 아프다.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다리 무릎 뒤쪽 슬와근 근육에 염증이 생겼고 연골이 많이 달았다고 한다. 퇴행성이라는데... 거참~~~ 한동안 걷지도, 앉지도, 일어서지도 못했다. 이 와중에 코코 다리털이 콩알만큼 쓩 빠져 있었다. 아 어쩌지. 친정엄마 집 침대 밑에서 놀다 나오는 코코를 목격했고 그곳은 먼지 구덩이였다. 순간 먼지 곰팡이 피부염인가?

고양이 피부 증상을 미친 듯이 검색했다. 그러다 자가 치료 방법을 알게 되었고 우선 몸이 불편하니 급한 대로 나도 한번 해보기로 했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근처 약국에 가서 '라미실'을 구매했다. 코코 다리털을 밀고 소독하고 약욕 목욕을 하고 라미실을 발랐다. 이틀 만에 꾸덕꾸덕해지더니 효과가 있었다. 다행이다 싶었고 집안 전체를 소독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6일 차부터 게을러졌다. 다리도 계속 불편해서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털이 다시 올라오는 코코 다리를 보고 괜찮아 지나 보다 했다.


'어라~ 라미실 효과 있네?'

그런데 7일째, 다시 코코가 다리를 구르밍 하기 시작한다. 옆에 벌건 살이 보였다.

에초에, 처음부터 난 택시를 타고서라도 코코를 병원에 데려갔어야 했다.


이전 중성화 수술한 병원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로운 병원을 검색했다. '분명히 있을 거야. 괜찮은 동물병원은 존재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카페와 블로그를 뒤졌다. 아 정말 광고성 글과  아르바이트 글은 좀... 너무하더라. 그래서 다들 인터넷 후기는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말을 하나보다.. 그리고 한곳을 찾았다.


서울대 나온 여자 선생님이 홀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예약을 하지 않았고 길치인 나는 병원 시작 40분 전, 아침 8시 20분에 집을 나섰다. 집에서 9분 거리였지만, 40분 동안, 아파트 일방통행 도로 위에서 주차장을 찾아 헤맸다. 2번 아파트 단지를 헛돌고 2번 유턴을 한 뒤 엉뚱한 상가에 주차했다. 그래도 제대로 찾아간 것에 만족하고 병원문을 열었다.


'처음이세요? 무슨 일이세요? 예약하셨어요? 오후에 다시 오시면 안 되나요?' 쌍거풀 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의 눈은 컸고 어색했다.

참으로.... 거시기한 간호사 선생님 질문이었다. 난 단호하게

'아니요, 예약 안 했고요, 오후는 시간이 안 되고요, 여기 병원 찾느라고 30분 헤매다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오전 진료 대기해서 의사 선생님 진료 보고 가겠습니다.' 마음이 급했고 난 물러날 수 없었다. 그 기세를 알아챈 간호사가 진료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나오더니 오전 첫 진료를 기다리고 계시던 분을 바로 불렀다.


그리고 바로 이어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가냘픈 의사 선생님이었다. 꼼꼼했고 곰팡이균 검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굳이 할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도 했다. 코코는 단순 습진이라고, 곰팡이 진균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오히려 라미실 약을 바르면서 주변 털 있는 곳에서 연고와 털이 뭉쳐서 더 발진을 발전시킨 것 같다고. 아... 순간 미련한 내가 참 미웠다. 물론 나도 몸이 불편했고 상황이 그랬다곤 하지만 건방진 나의 판단이 코코를 더 힘들게 한 것 같아 기분이 꾸리꾸리 하다.


의사 선생님은 코코를 신기해했다. 한국에서 '라가 머핀' 고양이는 처음 본다며 참 이쁘다고 칭찬도 해주었다. 코코는 겁도 없다. 병원 안을 다 돌아다닐 기세였다. 누가 보면 개인 줄 안다. 덩치도 사실 강아지보다 크다. 하얀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것처럼 많은 털을 공중에 뿜어내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코코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종종 생각이 무너지고 현실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이 모든 상황과 현실은 무엇인가라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홀로 한참을 생각하다 코코를 보았다.


'가자 집에. 동결건조 닭가슴살 줄게'


목칼라를 하고 있는 코코는 지금 매우 심기가 불편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축 널어져 잠을 자고 있다. 다시 다리 부분을 씻고, 약을 먹고, 간식도 먹고, 유산균도 먹었다.



코코야.

미안..

집사! 또 뭐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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