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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삼킨 마음

그냥, 어느날.

한국생활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어느 날 하루.

by Choi

정확히 일 년이 되었다. 두 번의 겨울을 맞이했고 두 번의 눈을 보았다. 봄과 여름 가을과는 아직 한 번밖에 만남을 가지지 못했지만 그 찐한 울림은 가슴에 콕 박혔다.


처음 알았다.

도토리가 그토록 차도와 인도 주변에 많이 떨어지고 그것을 줍기 위해 많은 분들이 보자기와 주머니를 둘러매고 거리로 나온다는 것을. 또 그 광경을 보고 사사건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 아이들 교육상에 좋지 않다는 의견, 나이 드신 분들은 그깟 도토리 좀 주웠다고 날리냐고 반박하는 의견, 반면에 한 자루나 주웠다고 큰 목소리로 자랑하며 얼굴에 함박꽃이 피어 나는 할머니들.


난 자연보호, 다람쥐 보호, 아이들 교육 뭐 그런 생각 보단 청정하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할머니 할아버지들 한 시절, '그들의 낙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른 아침 지팡이를 짚고서 인도와 차도를 왔다 갔다 하는, 조금은 위험한, 무모한 그들의 행동을 보며 '자식들 다 멀리 보내고 많이 적적 하신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 튼실하고 통통한 도토리 한 톨이 그들에게는 주는 기쁨은 배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도토리 한 자루를 주웠다는 할머니 얼굴에 환한 웃음과 자신감이 꽉 차 있지 않았을까? 그 나이에 스스로, 무언가 생산성이 있는, 어떤 결과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무언가를 했다는 뭐 그런 거? 또 뜬구름 잡는 나만의 생각인가?


아무것도 모른 채 버스 정류장에 서있다 톡톡, 툭툭 떨어지는 도토리 소리와 '탁' 하고 튕기며 도르르 거리를 타고 굴러 내려가는 도토리를 보고 마냥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는 우리 가족과는 사뭇 다른 가을을 만끽하는 그들을 보았다. 은행나무 냄새에 기겁하는 우리 집 아이도 웃겼고, 도토리를 주머니에 한가득 넣고 집으로 달려와 '코코' 장난감으로 바닥에 도토리를 힘껏 굴려 주는 아이에게 도토리나무는 가을 그 자체였다. 도토리나무, 밤나무, 그리고 감나무는 우리가 드디어 한국에서 정착하기 시작했다는 시그널을 을 보내고 있었다. 봄을 지내고 여름을 지내고 가을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 나 역시 도토리가 너무 귀여워 가끔 한주먹정도 주워 손에 꼭 쥐고 집에 들고 오기도 했다. 단풍도 물론 이뻤지만 공원에 도토리나무와, 밤나무, 오리, 거북이, 물고기가 더 신기했던 한해였다. 오리, 거북이, 물고리를 처음 보거나 못 봐서가 아니라, 이토록 평화로운 호수에 자유롭게 다니는 야생동물이 주는 안락함이 좋았다. 호치민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여유와 편안함이었을까? 낙옆이 우수수 떨어졌다. 우와... 정말 발목까지 낙옆이 쌓였다. 이것또한 우리아이에겐 신기한 광경이었다.


또다시 12월!! 다시 눈이 내린다.

눈으로 인한 번거로움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새 하얀 함박눈은 설렌다. 덩달아 동기들과 다시 2번째의 망년회를 가졌고 네이버 지도와 대중교통수단에 능수 능란해진 나를 다들 무척이나 기특하게 생각해 주었다. 이 아이들은 참 고마운 아이들이다.


우린 따뜻한 사케를 마시다 맥주집으로 옮겨 마른 먹태 안주와 팝콘 리필을 외치며

'이제 으로 나이를 계산해서 우리 완전 젊어졌어'라고 기쁜지 슬픈지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하며

내년을 기약했다.


나이 먹어 감.

나이 들어감.

우리에게도 노년이 온다는 그 순간을

이젠,

우리도 알게 모르게 마음 한켠에 새기고 있다는 뜻일까? 아님 준비를 한다는 뜻일까?


최근 일본 작가 '소노 아야코' 책을 몰아서 읽었다. 나와 무척 비슷한 사고를 가진 그녀에게 놀랐다. 가끔 노년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나 스스로가 참 이기적이지 않나 라는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 책에서 위안을 얻었다. 이기적이지 않았구나.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그래서 도서관에서 모땅다 빌려 며칠을 읽었다. 그리고 난 나의 유년시절 앨범을 깔끔히 정리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우리집 남자도 그 먼 옛날 군바리 사진과 그의 유년시절 앨범을 가지고 와선 나에게 부탁을 하고 출근을 했다. 아이 앨범은 남겨 두었다. 그건 그 아이의 몫이다.


개운했고

담담했다.


그녀 책 문구 중

'주위의 평가는 아무래도 좋다. 멋지게 생활전선에서 철수하여 그 후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할 용 하는 것, 누구에게도 의지 하지 않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며, 스스로 만족하며 조용히 살아가는 것, 이러한 것을 잘 해낸 사람이 결국 뛰어난 인물이다.' 이 문구를 메모해 두었다.


그리고 소노 아야코씨가 그랬다. 80살 이후 부터는 모든것이 달라 진다고...


순간 '인생이 무엇인가?'라는 나만의 답을 얻은듯 했다.

잘 죽기 위해 사는 삶...

그러니 잘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또 다른 인생이 아닐까?




스스로 힘이 필요하다..

나에겐...


그렇지?

집사!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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