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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삼킨 마음

경단녀 과도한 시도로 완패하다.

경단녀로 살아남기 2.

by Choi

차가운 공기, 싸늘한 공기가 아닌 ‘살아있는 공기’가 이른 아침 나의 콧구녕을 타고 들어 온다. 평범한 일상 속, 매일 아침 주방에서 부시시한 외모로, 누룽지를 끓이고, 계란 프라이를 뒤집으면서, 오늘이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 내일이 모레인지 알 수 없는 반복적인 하루를 맞이하면 들이키는 공기와는 다른 공기다. 혼자 과도한 낭만과 사색에 사로 잡혀 바쁜 출근길 낯선이 들 사이에서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꼼지락꼼지락 매만져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컴퓨터 프로그램학과 주임 선생님이 인사를 건넨다.


주임: ‘이번주가 마지막 주지요? 아이들 어땠나요?’


나: ‘아,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고등학생 같지 않아요. 너무 순수하고 착합니다. 이전에 제가 가르쳤던 고등학교 학생들과 살짝 비교될 정도로 아이들이 잘 따라 주었어요. 그동안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주임: ‘아하~ 다행이군요. 이곳 아이들이 일반고 아이들보단 개성은 강하지만 순수한 면이 더 많기도 합니다. 하하하’


짧게 건네준 말 한마디가 툭 하고 마음을 건드린다. 그리고 감사했다. 시간강사라서 딱히 신경 쓰는 분들도 없었고 학교는 수능시험 결과 발표와 대학 수시 발표로 한창 정신이 없을 때였다. 난 그렇게 조용히 나의 임무를 마무리했다. 행정실에 내려가 월급을 정산하고 서류를 마무리한 뒤 조용히 교문을 나섰다. 그리고 2주 뒤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얼마 만에 일해서 벌어 보는 돈이지? 이 돈으로 뭐 하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통장에 찍힌 그 단돈 몇십만 원을 스크린샷 후 남편한테만 자랑했다. 난 그렇게라도 인정을 받고 싶었다. '아직도 나 이 정도는 쓸만한 인간이긴 한가 봐'라고 카톡을 보냈다.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높은 빌딩에서 아래로 곤두 박질 치는 느낌을 떨치고 싶었다. 쓰레기가 되어 버린 학력과 경력이 그래도 아직은 몇 십만 원의 가치는 있는 걸까? 나의 젊음이 송두리째 사라진 그 순간, 막막했던 그 순간, 그때 마침 겨우 하나 구한 시간 강사 자리. 거의 10여 년 만이다. 고작 시간강사 였지만 눈물나게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이것이 원동력이 되어 난 다시 과도한 도전을 시도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완패’를 당했다. 새해가 되면서 올 한 해 동안 계약할 기간제 교사를 뽑는 학교가 많았다. 초등학교 경우 ‘회화 전문 강사’를 뽑는 곳이 많았다. 20여 년 전 졸업장과 자격증도 부끄러운데 토익, 토플, 오픽 등 공립, 사립학교에서 요구하는 시험결과는 최근 6개월 것을 요구했다. 그로 인해 난 자격미달이었다. 20여 년 전 시험결과는 있지만, 최근 6개월 공인 인증 시험결과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면접 당일 시험을 보는 학교도 있었다. 이런저런 모집요강을 따져보며 내가 가진 자격증으로 제출할 곳이 많지는 않았다. 물러설 내가 아니지 않은가? 무식함! 나의 무기!! 다시 일어 서야 한다는 의지. 다시 홀로서기를 하고 싶은 의지. 사실 어떤 무슨 일을 꼭 해서 돈을 버는 길만이 홀로서기는 아니지만 지금 난 일을 하고 싶고 그 일로서 나의 값어치를 느끼고 싶었다. 자원봉사도 해보았지만 아직 미성숙한 내면의 세계가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난 돈을 택했다.


내가 현재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학력과 경력이다. 이 두 가지로 승부수를 내기로 했다. 열심히 하루에 최소 3~4군데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러니 토탈 한 20군데 한 것 같다. 이렇게 많은 곳에 나의 이력서를 무슨 전단지처럼 뿌린 적이 머리 털나고 처음인지라 그 민망함은 주체할 수 없었다. 동시에 간절함도 있었다. 학교에 제출할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나름 넘쳐나는 경력과 학력을 칸까지 추가로 삽입하는 공을 들여 작성했다. 오랜만에 만져 보는 한글파일에 표 수정, 여백수정, 자격증란에 그림삽입, 싸인 넣기 작업등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 와중에 아이 밥은 대충 챙겨 주며 날라리 엄마 역할도 했다. 맞벌이를 하면 이렇게 바쁠까?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고작 이력서 적으면서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나의 감정을 뒤로 한 채 열심히 공고 사이트를 보고 학교 하나하나 채용 요강을 숙지한 뒤 정신없이 제출했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설마 한 곳에서는 연락이 오겠지. 설마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이 안 오겠어? 에이 ~ 설마… 오만한 착각이었다. 이전 잘 나가던 그때를, 그 순간을 난 떠올리고 있었다. 너무 잘 나가서 내 맛대로 학교든 학원이던 골라서 다니던 그때. 그 시설. 난,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충격 그 자체였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설마… 나의 가치는 ‘시간강사’ 혹은 '땜빵강사'에서 그치는 건가? 나의 학력과 경력은 세월이 흐르면서 빛바랜 유물과도 같은 취급을 당했다. 옆에서 보다 못한 남편이 한마디를 했다.


그는 분명 제정신이었을까?

"이야~~~ 너 정말 용기와 배짱이 두둑하구나. 하하하하 요즘 젊은애들도 취업 못해서 날 리인데, 감히 도전한 너의 정신세계에 존경을 표한다 야~, 너 나이에는 좀 과한 거 아니야?"라고 놀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는 설거지를 나 대신 해야했다. 나의 분노, 좌절, 슬픔, 억울함, 원통함을 달래기 위해 눈치를 보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덤으로 재활용품쓰레기까지 버려야 했다. 책장 앞에 줄 세워진 홍시중 잘 익은 홍시도 하나 까서 입에 넣어 주며 나를 위로했다.


나의 미련은 그곳에서 그치지 않았다. 알고 싶었다. 정말 뭐가 문제인지. 나에겐 네이버가 있잖아? 네이버에게 열심히 물어보았다. 우리나라 현실 기간제 교사 세계에 대해 적나라게 알려 주었다. 기간제 교사 안에는 ‘내정자’ 그리고 내 뒤를 봐주는 ‘빽’ 이라는 것이 있었다. 새로 신입을 뽑기 위해 우선순위로 먼저 교대학생들 위주로 이력서를 걸러 낸다고 알려 주었고, 젊은 이들을 선호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학벌과 경력 또한 어마어마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 나의 자기소개서가 뜬 구름 잡는 아줌마 스타일로 주절 주절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숨만 내쉬어졌다. 네이버 지식인과 기간제 카페에서 찾은 정보들은 나를 차분히 잠재웠다. 뭔가 몸이 툭 하고 아래로 다시 떨어지는 느낌이 다시 들었다. 기간제는 감히 내가 욕심을 내어서는 안 되는 자리였다.


교감선생님 말이 떠올랐다. "어머 왜 이렇게 오래 쉬셨어요? 한국에서 기간제 자리 구하려면 어려울 수도 있겠어요. 나이도 그렇고." 한 달 전 근무한 그 고등학교에서 첫날 들은 말이다.


나의 시도는 과했다. 나의 이력과 학력 경력은 시간이 너무 지났고 생명력을 발휘하기엔 힘이 딸렸다. 경력단절이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인생의 칼날 같다는 사실을 다시 쓰라리게 와닿았다. 어김없이 2023 새해는 다가왔다. 사실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도 딱히 좋아하지 않았는데라고 위로는 해보지만 아프다. 툭툭 털고 일어나고 싶은데 잘 안된다. 학원 쪽이 더욱 재미있기는 하지만, 아이 방학을 맞추어야 하고 이른 퇴근 시간이 맞는 곳이 사실 학교다. 아마 잠깐은 쉬겠지만 분명 난 다시 오전 근무 학원쪽으로 알아볼 생각이다.


대학원까지 두 곳을 다닌 덕분에 공부만 죽도록 했는데, 논문까지 쓴다고 죽을힘을 다해 학력을 쌓았는데 젊은 날 나의 판단 실수로 경력이 단절되어버렸다. 호치민에서 첫아이 유산으로 국제학교 근무도 계속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럴 때, 지금 이 순간, 뒤를, 지나버린 과거를 돌아보아선 안된다고 나를 보담아 본다. 아이가 있고 엄마로 살았던 10여 년의 세월도 있으니 신세한탄은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에게, 나의 결혼 생활이 원망의 대상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일도 이렇게 성찰하면서 성숙한 인간이 되기위해 뚜벅 뚜벅 발걸음을 옮긴다. 느리지만 천천히 나를 찾아가는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 될듯하다.


이 와중에 브런치에 이렇게 글을 적을수 있는 기쁨은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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