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했다 그동안..
작년 겨울 툭 던진 전화 한 통과 이력서 한 통으로 덜커덕 1달 정도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땜빵을 뛰었다. 집에 있으면 하기 싫은 집안일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다며 온갖 진상을 부리고 철부지 없는 엄살을 피우며 남편한테 징징 거렸다. 근데 웬 떡인가. 경력단절에다가 이력서를 내는 족족 떨어지고 있는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이라 여겼다. 원래 좋아하지도 않았던 선생님 일을 다시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난 원래 이일을 무척 기다렸고 가르치는 일이 천직이라도 되는 사람처럼 기뻐 날뛰며 땜방 시간강사 자리를 기꺼이 맡았다.
몇 년 만이지? 너무 아득해서, 너무 까마득해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잠깐 들렀다. 교무부장, 교감 나이는 나보다 겨우 몇 살 많아 보였고 선생님들은 정말 어리다 못해 대학생으로 보였다. 현실 속에 뛰쳐 들어가 그 속에 있는 나 자신은 눈만 멀뚱멀뚱거릴 뿐, 베트남에 있는 동안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다는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래. 베트남은 시간이 멈춘 곳이 맞아!!! 내 머릿속의 한국은 내가 떠난 20년 전의 한국이 그대로 변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이곳은 그대로인데, 나는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어 있었다. 아이러니했다. 단지 다른 것은 20-30대의 내가 아니라 50을 향하는 내가 그 자리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보이지 않는 시공간 속에서 그 간격을 홀로 극복하고 메꿔야 했다. 휴~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이건 뭐 혼자 과거, 현재, 미래를 정신 나간 여자처럼 왔다 갔다 하느라 외계인이 된 뭐 그런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이전 학력, 경력, 이력, 모든 것은 흔한 말로 딱 '물거품'이었다. 더도 말도 아닌'물거품'. 처음엔 오색 빛을 반사하며 보글보글 떠오르다 한순간 푹 껴저버려 오도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는 그런 물거품. 아니 먼지에 불과했다. 그게 나였다.
나도 '경력 단절'이란 게 이런 건지 처음 경험해 보는 거라 당황스러웠지만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어차피 엄마라는 직업도, 가정주부라는 직업도, 며느리, 딸, 아내라는 모든 것도 처음 해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곧 익숙해졌다. 인생을 산다는 것도, 내 삶을 산다는 것도 처음이니까 당황해하면서 미친 여자처럼 방황해 가면서 살아도 다 살아지더라는 것을 쪼금 배운 나는 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떻게 얻은 일자리인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곧... 나를 느꼈다. 그리고 보았다.
난 아직도 증명하고 싶은 나를 보았다. (누구한테? )
사회에서 이전 과거 나처럼 인정받고 싶은 나를 보았다. (무엇 때문에?)
왜 그랬을까?
난 무엇이 필요했을까?
왜? 왜? 왜?
배가 고팠을까?
난 독립을 하고 싶었다.
자립을 하고 싶었다.
홀로 서고 싶었다.
멋지게 본래의 나로, 다시 한국에서 삶을 살고 싶었다.
그 포부와 꿈을 다시 꾸고 싶었다.
비즈니스 우먼~ 뭐 이런 성공한 여자의 포부.
교육계 최고 여자 누구누구~ 뭐 이런 거.
(깔깔깔 웃음만 나온다.)
될 줄 알았다.
어느날, 문득 6개월이 지난 지금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거나 해도 된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하지만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역량 아래에서
내 마음이 허락하고 편안한 선까지만 해야 한다는 것을...
또, 과거 속 나의 모습에 연연할 필요 없다는 것을
배웠다.
어떻게 보면 자기 합리화라 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 잘은 모르겠다.
솔직히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몸에 기운이 툭 떨어졌다.
그리고 편안해졌다.
나를 그대로 있는 지금의 나로 받아들이는 순간이었을까?
그래서인지
청소하는 하루도
좋다...
꽤 괜찮다. 요즘 나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