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워가는 정리.
대대 적인 정리를 시작했고 그 끝이 보여 간다. 마지막으로 화장대를 정리하는 날이다.
하루하루 조금씩 정리를 하면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만족감과 성취감에 얼떨떨했다. '이게 뭔가?'라는 생각으로 그 느낌과 감정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이 기분은 어디서 오는 거지? 무엇 때문에 내가 이토록 안정감을 느끼는 걸까? 정리를 하고 수납을 하고 버릴 것을 버렸을 뿐인데, 어째서 난 이 똑같은 행위를 질려하지도, 지쳐하지도 않고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수납 배치와 구조를 생각하면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걸까?
집안일을 생각하면 마음부터 무거워지고 패닉 상태였던 나인데, 이젠 무어라 설명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담담하다. 그냥 별생각 없이 할 일을 할 뿐이다. 사실 음악도 듣고 따라도 부르며 흥이 나면 몸도 움직인다. 즐겁게 한다. "빨리 집안일을 끝내고 무엇을 해야지" 하는 그딴 다짐은 하지 않는다. 일을 마친 후 달달한 커피 한잔과 쿠키 정도면 충분하다. 물건 정리를 하고 나면 그 여백과 빈 공간은 나 자신으로 채워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여하튼 좋다. 이런 기분으로 미니멀리스트와 '정리의 달인', 뭐 '수납의 달인', '비우며 삽시다, ' 그런 슬로건이 생긴 게 아닐까 라는 어설픈 짐작도 해본다.
담담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믿음과 신념에서 왔다. 무언가 굳이 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나 하나가 이 세상에서 그토록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라는 사실은 나를 무척 행복하게 한다. 마음에 부담도, 무게감도 없다. 더 이상 사회가 요구하는, 부모가 바라는 기대에 맞추어 피에로 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준다.
정리를 하다 짜증이나 성냄 없이 밥을 차리고, 청소를 하다 대충 한쪽으로 밀어 놓고선 아이와 도서관도 후다닥 다녀올 수 있다. 자유롭다. 어찌 보면 염세적이고 사회에 대해 냉정한 시각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만 이 세상에 인생을,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된다라는 답을 가진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자기 삶을 책임 지고 그 무게를 감당하면 되는 것인데, 그렇게 살기 위해선 자신만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난 삶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좀 말하기 부끄럽지만
"사람은 죽기 위해 산다"
는 결론을 얻었고, 그 결과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한다"
가 나의 삶의 정의다.
어디서 카피한 것도 아니고, 책에서 읽은 것도 아니다. 정리도중 문득 든 생각이었다. 잘 죽기 위해선 건강하고 깔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의 노후가 어떻게 될지는 지금 나의 행동과 사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습관이 되고 바로 나의 삶과 연결된다는 생각이 짖게 깔려 들어왔다. 무섭기도 두렵기도 했다. 나이 듦, 늙음이 모든 인간이 가진 공평한 조건이라는 사실이 뼛 속까지 아리면서 전달되어 왔다.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래서 "잘살아야 한다." 깔끔하게 잘살기 위해 정리를 해야 했다. 될 수 있으면 최소한으로 가볍게 간단하게 생활하고 싶다.
대망의 화장대를 열어 보았다. 화장품도 딱히 없는데 서랍 속은 야단법석이다. 7년전 구입한,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향수까지 있다. 좋아하는 향수를 분명 설레는 마음으로 구입했을 텐데, 어째서 난 단 한 번도 뜯어보지도 열어 보지도 않았을까? 그만큼 무기력했을까? 약간 슬프고 아팠던 베트남에서 나의 모습에 마음이 안쓰럽다.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나의 모습.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아픔을 안고서 16년을 살았던 그곳이 스쳐 지나간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참 다행이다.
향수를 과감히 뜯었다. 알코올과 섞어 화장실 디퓨져로 사용 중이다. 나름 나쁘지 않다.
다이소에서 속옷 정리함을 구입했다. 칸막이가 여러 개 되어 있어 자질구레한 화장품 수납과 정리에 안성맞춤이다. 쏙쏙 칸에 맞게 넣어 주고 빈 화장품 샘플과 작은 공병은 모조리 처분했다. 다 됐다.
저 안쪽에 한 가지 물건이 눈에 보인다. 비녀... 긴 머리를 좋아했던 난 엄마 비녀를 꽂기 위해 가져왔을텐데 30년 이 넘도록 서랍장 한쪽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비녀. 만 가지 생각이 올라왔다 천만 가지 기억과 추억이 지나가는 그 비녀를 난 다시 살포시 내려 두었다. 먹구름과 같은 추억이 밀려온다. 아프다.
어른들이 그랬다. 너도 시집가보면 엄마맘 다 알게 된다고. 그런데 그 말에 난 결코 동의할 수가 없다. 난 시집을 왔고 결혼 생활을 하면서 더욱더 그분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만이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이 나와는 다른 것 같다.
근래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한동안 아기씨댁에 가지도 않았다. 전화를 걸어 하소연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아가씨(자신딸)에게 우울이 전염될까 봐, 자신딸 마음이 무거울까 봐, 자신딸 이 아파할까 봐. 부러웠다. 우리 시어머니 같은 엄마를 가진 아가씨가 부러웠다. 자기 우울증과 의처증으로 나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하소연하며 아빠에게 무엇을 이야기해달라며 나를 미치도록 죽도록 힘들게 했던 그녀(나의 엄마)와는 다른 시어머니를 보며 '저게 자식 사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었다. 집 정리를 위해 많은 것을 버리고 있다는 말에 '너는 나중에 이 엄마도 갖다 버리겠다'라는 말을 비앙냥 거리며 하는 그 사람(엄마)와는 참 많이 다른 시어머니다.
비녀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난 서랍을 닫았다. 언젠가는 저 비녀를 버릴 수 있겠지. 무덤덤하게 아무렇지 않게.
오늘도 난 정리를 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우연히 아픈 기억을 마주 하기도 했지만 그 순간이 있었기에 더욱 나 자신을 성찰할 기회가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울 엄마 역시 우울로 뭉쳐진 사람이라 그 당시에 그녀도 무척이나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난 당당히 떨리지만 그녀에게 할 말은 하고 맞설 것은 맞선다. 내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 불효녀가 되어도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고 오히려 그 선택 이후 부모와 사이가 한결 더 편해 졌다.
정리를 하면서 나의 삶도 하나하나 정리되어 가는 이 맛이 짜릿하다. 후련하고 말끔한 집으로 점차 변하고 있는 나의 공간이 좋다.
오늘 정리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