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청소, 버림이 대신 놓고 간 다른 삶
몸이 피곤할 만큼 정리와 치우기 그리고 버림에 열중했다. 좁은 집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나도 함께 편안히 숨을 쉬었다. 살아 있는 기분이랄까. 창고 역시 비우기 시작했다. 곰팡이가 이쁘게 여행용 트렁크 안에 자기 집을 짓고 있었다. 가뿐히 내다 버렸다. 한국에 처음 입국했을 당시 텅 빈 집에 캠핑 의자와 테이블로 2달 동안 생활했다. 부피가 좀 크면서 저렴한 걸로 장만했던 터라 창고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것도 내다 버렸다. 당근에 팔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사진 찍어 올려야 하고, 채팅 오면 대화해야 하고, 예민하신 분 만나면 이리저리 트집까지 잡히는 터라 그곳에 낭비할 나의 에너지는 없었다. 그냥 돈 주고 버리자.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했더니 깎아도 주더라. 사소한 친절에 기분이 좋더라.
아직도 정리할 것은 많이 남아 있지만, 시간을 두고 더 차근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날이 하루에 한 가지 이상은 지금도 버리는 중인데, 오늘은 아이방 책상 의자를 버렸다. 그리고 옷장 안에 20년 넘은 겨울 바지를 보았다. 미쳤나 보다. 결혼 전 입었던 골덴 겨울 바지를 바라보면서 왜 난 이 바지를 아직 까지 가지고 있을까. 아랫부분이 큰 나팔 모양에 위로 갈수록 타이트하게 좁아지는 그런 멋스러운 바지다. 통굽과 함께 신어야 빛을 보는 그런 바지다. 혹시나 해서 한쪽 다리를 쭉 넣어 보았다. 역시나, 허벅지까지만 간신히 들어간다. 웃음이 나왔다. 결혼 전 난 사실 깡 마른 사람이었다. 어쩌다 지금 이렇게 체형이 바뀌었지만 한때는 가냘픈 여자였는데. 그 멋진 바지도 허허 웃으며 버렸다. 버리면 버릴수록 집이 정리되는 건 당연하지만 나의 삶까지 정리가 되는 기분을 가진다.
정리와 버리기에 이어 먹는 음식과 청소 방법이 변하고 있었다. 싱크대에 물때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베트남에서 패킹도 못한 채로 한국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컨테이너 짐이 오기까지 두 달 정도 여유가 있었다. 너무 오래된 집이라서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문짝등 골고루 조금씩 손을 보고 들어온 집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아무리 퐁퐁으로 닦아도 싱크대가 반짝거리지 않았다. 그냥 원래 그런 줄 알았다. 베트남에선 나의 집이 아니었으니 그냥 항상 대충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신혼살림을 장만해 본 적도 없는 난 물건과 가구 가전에 대한 애착 자체가 전혀 없었다. 진심으로 베트남에서 짐이 도착했을 때 도대체 무엇을 한국까지 다시 싣고 왔는지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알게 되었다.
20년 전 대학원 다닐 때 생활하면서 입고 쓰고 사용했던 짐을 베트남에 들고 가서 대충 처박아 놓고 대충 사용하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물건을 다시 한국으로 싣고 온 것이다. 어쩐지 컨테이너 짐이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생활은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이런 것은 누가 가르쳐 줘야 아는 것일까? 아님 이것조차도 사람 성향일까? 난 그토록 삶에 흥미가 없었을까? 뭐 여하튼 결론은 먹는 식습관까지 변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싱크대 청소를 유투*와 네이* 등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대부분 베이킹 소다 3스푼, 퐁퐁 3번 정도 짜서 꾸덕한 요플레처럼 만든 후 문질 문질 하던데 난 치약을 사용해 보았다. 끓는 물을 부어 물때를 불린 후 천 원짜리 페리* 치약을 꾹 짜서 문질 문질 했다. 힘든 줄도 모르고 정말 열심히 닦았다. 다시 따뜻한 물로 주르륵 흘러내려준 뒤 두 번 정도 문질렀더니 번쩍번쩍 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분이구나. 이 기분에 중독되어 주부들이 가정을 위해 주방을 열심히 닦는구나. 요즘은 그릇도 사고 싶다. 그릇을 사본적이 없다. 정말 없다. 그러고 보니 나란 사람 참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난 어디서 고장이 난 걸까. 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째서 난 이제야 살림을 알게 되었을까.
정리, 청소, 버림은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끔 한다. 누구 탓으로, 누구 때문이야 라고 내뱉는 비겁한 자책은 하지 않는다. 다시 또 한 번 '한국에 와서 정말 다행이야'라고 속으로 되뇐다. 대부분 흰색으로 색을 맞춘 집은 나의 마음처럼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부엌이 정리가 되니 요리가 즐거워진다. 한국에 오니 야채와 나물이 참 많다. 4계절에 맞추어 나오는 야채와 채소를 보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지만 방법도 맛도 모른다.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보고 이것저것 시도도 해본다.
과일도 풍족하다.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자두, 복숭아, 포도다. 수박은 줘도 안 먹는다. 베트남에서 너무 많이 먹어 정말 쳐다도 안 본다. 올해도 여전히 난 열심히 복숭아와 포도를 사다 나른다. 요즘 난 샐러드와 단호박에 맛을 들였다. 샐러드와 리코타 치즈, 올리브 오일은 환상의 궁합이다.
저녁으로 팽이버섯, 부추, 당근, 양파, 참치를 섞어 내 마음대로 만든 야채 참치 전을 해 먹었다. 맛있다는 아이에게 감사하다. 내일 학교에서 시험도 보고 클럽 활동도 있어 집에 6시나 되어 오는 아이가 간식으로 복숭아를 부탁한다.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단지 버렸을 뿐인데, 삶 전체가 변하고 있다. 아무래도 나의 과거 삶도 함께 버려지고 있나 보다. 물론 좋은 추억도 있지만, 나에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버리고 싶은 과거가 참 많다. 난 딸을 낳는 것이 두려울 만큼 내 삶이 싫었다. 나 같은 삶을 살까 봐 딸을 죽어도 낳기 싫었다. 그래서 어쩌면 둘째도 낳지 않았다. 딸이 나올까 두려웠다. 이참에 다 떠나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아마 이렇게 글로 적을 만큼 덤덤해졌다면, 어쩌면 난 이미 자유를 찾은 게 아닐까?
집안일이 웃긴 게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것, 즉 자유를 맛볼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유일하게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는데, 이 집안일이 내 맘대로, 내가 마음먹은 데로 된다는 것이다. 가구 배치도, 물건도, 정리도, 수납도 모든 걸 내 마음대로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자유를 집안일에서 맛보고 있다. 이렇게 내 맘대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집안일이 주는 만족감은 나의 불안함을 달래 준다. 가족을 위해 나도 할 일이 있다는 만족감. 남편을 위해 아이를 위해 나도 쓸모가 있다는 만족감. 내가 이 집안을 어떻게 정리하고 청소하고 깔끔하게 유지하냐에 따라 아이와 남편이 집에서 느끼는 안락함. 난 고작 집안일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책 '월든'을 읽다 보면 그는 집안일이 즐거운 일이라고 한다. 그는 사소하고 귀찮은 집안일을 자기만의 명상으로 여긴다. 윌든책을 천천히 읽는 중이다. 줄도 긋고 메모도 하면서 읽는데 이 구절을 보는 순간 감동했다. 이런 철학책은 읽을 때마다 설렌다. 아끼면서 읽는다. 최근 도서관에서 빌린 '월든'은 반납하고 알라딘에서 다시 중고로 구입했다. 월든도 그랬다고 하니 마음이 더욱 안정감이 든다. 문득 난 잘못한 게 없었구나도 알게 되었다.
한 생각 차이였다. 이런 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방식과 틀은 없었다.
정리를 할 때 자유 자재로 사용하기 편한 곳에 자리를 정해 두고 수납을 하면 된다. 그만큼 여유 공간이 많이 생긴 탓이기도 하다. 다이소에 거의 백만 원 가까이 지출한 것 같다. 별로 산 것도 없는데 갈 때마다 수납장, 수납함등 필요한 것을 샀다. 그러다 돈이 너무 아까워 재활용 방법을 알아보았다. 우유통과 우유팩은 활용도가 참 많았다. 휴지심은 전선 정리에 탁월한 선택이었다.
소로가 나를 씩 한번 웃게 해 준 구절이 있는데 바로 이 구절이다.
" 현재 우리의 집들은 쓸모없는 가구들로 잔뜩 어지럽혀지고 더럽혀져 있어, 현명한 주부라면 그 대부분을 쓰레기통에 쳐 넣음으로써 아침 일을 마칠 것이다. "
정말 그렇다. 집이 점점 간소화되면서, 집안일을 마치는 속도가 빨라지고, 딱히 뭐가 없으니 먼지를 닦거나 청소기를 돌려도 후딱이다.
소로 말대로 현명한 주부가 되기까지 지치지 않을 만큼 조금씩 나를 돌아보며 정리해 나가자라고 나에게 오늘도 한마디 말을 건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