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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Sep 12. 2023

‘브라’는 나의 하루를 깨운다.

뜻밖에 알게된 브라의 또다른 기능

보름동안 출장을 다녀온 동거자가 큰 트렁크 하나를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 마자 아프기 시작했다. 정리와 버림 그리고 글씨기에 한참 신비한 힘을 느끼고 있을 때 즈음 형편없는 몰골로 마구잡이로 쳐들어온 동거자 때문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브런치스토리 대문에 우연히 실린 나의 글 하나에 다시금 콩닥 거리고, 설레면서 뻥 터지는 조회수를 보며 잠깐동안 또 멍한 채로 사색에 잠겼다. 베트남이라는 글 주제 때문에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 사실 난 믿고 있었다. 그럼 뭐 어때서. 어차피 어렵게 들어온 곳 놀고 싶을 때 놀다 가야지 라는 생각. 하지만 감정 쓰레기통처럼 사용은 하고 싶지 않았고, 혹여나 내 글을 읽는 분들께 최소 미간을 찌푸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면 난 우울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웃음도 많고 유머를 좋아하는 개구진 아줌마니까.


그렇다면, 나 베트남 이야기 말고 내가 적고 싶은 나의 성찰, 깨달음, 사색, 생각, 인생 이런 거 여기 적어도 되는구나. 진솔하게 나의 이야기를 적은 글을 보고 나처럼 한때는 절망적으로 우울했던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템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 며칠 주말 동안 쬐매 설레었다. 모든 것을 놓아 버렸지만, 이 브런치스토리 마쳐 놓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다. 보잘것없는 나에게 이 공간이 주는 특별함은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길 한가운데 큰 보템이 되고 있다.


병원을 다녀오고서야 근육통이 풀리기 시작한 동거자는 기절한 듯 잠을 잤다. 출장이 길기도 했지만 많이 힘들었나 보다. 조용조용 청소를 하고 사부작사부작 걸레질로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습관 중 달라진 습관을 한 가지 발견했다.


집안일을 기분 좋게 시작하기 위해 난 속옷 '브라'를 꼭 착용한다는 점이다. 옷은 반바지, 치마, 롱치마등 마음대로 그날 기분에 따라 입기도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브라를 꼭 착용한다는 것이다.


사실 어느 시점인지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지만 나 스스로 자각한 적이 몇 번 있다. 답답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보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집에서 머물 때는 브라속옷을 잘 착용하지 않았다. 정말 해삼처럼 푹 퍼져있었다. 그런데 집을 정리하고, 버리고, 먹는 음식을 변화시키기 시작하면서 이른 아침 제일 처음 하는 일이 씻는 것도 아니고, 앞치마를 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난 브라를 착용했다. 이마*에서 인견으로 된 시원한 것을 장만했고 사이즈도 젋었을 때처럼 딱 맞는 것이 아닌 좀 넉넉한 사이즈를 구매했다. 단단한 캡이나 두툽 한 커버 혹은 뽕이 들어간 뭐 그런 거와는 거리가 멀다. 그냥 편안하고 시원한 것 하지만 체형은 좀 잡아주는 뭐 그런 걸로 구입했다.


그러나 그런 편안한 속옷을 구입했기 때문에 굳이 집에 머물면서 나 스스로 브라를 착용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뒤 돌아본 결과 난 '브라를 착용함과 동시에 그날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있는 몸의 단정함'을 스스로 느끼는 것 같다. 나의 몸과 소통을 한다고 해야 할까. 해삼이나 멍게처럼 퍼져 있지 않고 어느 정도 긴장감도 주면서 말이다. 소위 요즘 유행하는 말로 '선순환'이 이런 것인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늙음, 죽음,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해답은 없었고 고작 혼자 결정한 삶에 대한 철학이 '잘 죽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너무 막막했다. 잘 죽는 게 뭐지? 그럼 우선 잘 살아야 한다는 뜻인데. 잘 산다는 건 또 뭐지? 쳇바퀴 돌듯 스스로 항상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멍하게 사색하다, 그러다 하다 하다 안되면 책을 찾아 뒤지는 정도였다. 지금도 여전히 고민 중이고 방황 중이고 무섭기도 하지만 정리를 시작하면서 인생에 대한 허망함이 마치 정리가 되는 듯 느꼈고 안정감을 찾았다.


그다음으로 버리는 일. 정리가 되려면 버려야 했고 삶에 의욕이 없었던 나의 삶 빈 공간에 생기가 따라 들어왔다. 비우니 채워졌다. 몸소 체험한 비움은 언제나 옳다는 생각이다. 그 활력은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청소기를 가지고 방을 정리하고 최소 침대 이불 정리 정도는 하고 집을 나선다.


냉장고를 비우면서 음식과 한국에서 마트 장 보는 습관도 차차 변하고 있다. 자연히 그 영향은 먹는 식습관에도 미쳤다. 레몬과 인삼을 건조했다. 야채를 구입하고 음식자체가 가진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 노력 중이다. 덕분에 요리시간이 짧아지고 그릇수가 많이 필요 없게 되었다.


정리하고 버리고 요리하고 장을 보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위해 난 '브라'를 제일 먼저 착용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긴장감과 몸에 불편함을 주기 위해서다. 내 몸에 알리는 신호 같았다. '나 오늘 움직일 거야, 그러니 슬슬 준비해'라는 시그널과 같았다. 이른 시간 남편(6시 40분 출근)과 아이(7시 등교)를 각자의 자리로 내 보내고, 그대로 침대로 직행하지 못하도록 막는 무의식적으로 행한 행동이었다. 그 행동을 최근에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러다 조금씩 변하고 있는 나의 습관과 생활을 보며 이것이 '선순환'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출장 다녀온 남편 빨래가 건조기 안에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전화가 왔다. 부동산 아줌마다. 이제 좀 있으면 한국 온 지 2년도 다 되어 가고 자가집 거주도 2년 정도 채웠으니 조금 넓은 평수로 이사해 볼 생각이 있냐는 것이다. 해외 있는 동안 항상 집 관리를 해주시면서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주신 분이다. 그리고 내 생에 처음으로 부동산 거래를 이 아주머니와 했으니 사실 깊은 인연을 맺었기도 하다.


급매가 나왔다는데 우리 옆동이라고 한다. 즉 급매인 이유는 그 집주인이 전세로 4년을 더 살고 싶다는 조건이라 급매였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아주머니 맘이 고맙기도 하고 바로 옆동이라 한번 보기로 했다. 쓰러져 잠을 자던 남편도 후다닥 일어나 함께 다녀왔다.


거주하시는 분은 할머니 한분인데 방문당시 요양원사가 있었다. 백발에 할머니는 이전에 학교 선생님이 셨는데 남편분은 돌아가셨고 이제 치매가 시작되어 4년의 기간을 잡았지만 어쩌면 그 이전에 요양원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전세를 4년 끼고 급매로 나왔다고 한다.


해가 눈부실 만큼 잘 들어왔고 나무랄 때 없을 만큼 그만한 가격에 좋은 집이었지만 나의 눈에는 그 할머니 한분만 보였다. 빨강 꽃무늬 드레스에 가냘픈 백발의 할머니 모습. 야위었고 창백한 얼굴이었다. 집을 보러 가서 집을 본 게 아니라 그 할머니의 삶을 보고 왔다. 덩그러니 넓은 거실에 큰 티브이와 갈색 소파. 깔끔한 옷장과 침대. 베란다에 놓여 있는 푸른 화분. 방안 책장에 진열되어 있는 남편, 아들자식들 대학졸업 사진. 오래된 냉장고. 홀로 계셔서 그런지 더 욱 넓어 보이는 집과 빈방들.


부동산 아주머니는 샤시니, 확장이니, 화장실이 어쩌고 저쩌고 분주하게 말씀하시는데 외계인 말처럼 웅성 웅성 하게 들렸다. 내 귀에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발걸음이 무겁다. 부동산 아주머니께 다음에 연락을 드린다고, 그리고 감사하다고 했다. 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마음 한켠이 너무 아파 눈물이 앞을 고였다. 나의 부모님 모습일 수도 있고 나의 먼 미래 모습이기도 한 모습. 그분이 불쌍하거나 가여워서 저며 오는 통증은 전혀 아니었다. 연민도 아니었다. 난 자주 나이 드신 어르신을 보면 그게 곧 나의 미래모습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산다는 삶. 인생이라는 삶. 그 삶의 끝을 눈으로 확인하는 듯한 기분. 현실이 쓰라렸다. 시간이 잔인함. 허망함이 다시 내 마음을 흔들었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은 매섭게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정신을 잃을 만큼 세게 툭 치고 지나간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만큼 편안하게 인생을 살자고. 버리며 살자고.


"여보야."

"우리 저 꼬맹이 어여 키운 다음에 자연과 함께 살 수 있는 곳에 가서 살자. 재개발, 부동산 투자도 좋은데 말이야 나 진짜 정말 자연 속에서 살다 마무리하고 싶어. 자연으로 나 돌아가고 시프다. 제주도에서도 살아 보고 싶은데  연건이 안되니 무리하지 말고 자연 가까운 곳에서 꼭 한번 살자."


남편

"그게 우리도 나이 들었다는 증거야. 그래야지. 그럴 수 있다면...."




헨리 데이빗 소로 <월든>에서 내가 동의하고 공감하고 사랑하는 대목이다.

나의 경험에 의할 것 같으면, 가장 감미롭고 다정한 교재, 가장 순수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교재는 자연물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가련하게도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나 극도의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된다. 자연가운데 살면서 자신의 감각기능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암담한 우울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건강하고 순수한 사람의 귀에는 어떤 폭풍우도 '바람의 신'의 음악으로 들릴 뿐이다. 소박하고 용기 있는 사람을 속된 슬픔으로 몰아넣을 권리를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사계절을 벗 삼아 그 우정을 즐기는 동안에는 그 어떤 것도 삶을 짐스러운 것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소로의 말이 진실이었으면 좋겠다. 소로의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그 말을 믿는 난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이른 아침마다 '브라'를 차고 의미 있는 하루 하루를 살아 볼 테다.


나도 곧 자연과 함께 마주 하면 살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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