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용기와 엉뚱한 내가 튀어나온다.
갑자기 어느 순간, 문득문득 내가 보일 때가 있다. 이런 현상이 자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폰메모장에 순간 갇혀있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기록한다. 왜냐면 제일 먼저 알게 된 것이 '난 내 안에 갇혀 있구나'였기 때문이다. '갇힘, 두려움, 공포, 불안, 홀로 한 그 생각이 마치 우주 전체인 듯 빠져 있는 나' 이렇게 메모가 되어 있다.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사람이 많은 곳, 말이 많은 곳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내가 그들을 다 수용해야 한다는 나만의 착각, 그들을 다 이해하려는 욕심, 상대편에게 모든 것을 맞추어 주기 위해 애를 쓰는 나, 남의 시선까지 나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 자신을 그들 시선에 맞추어 다른 나로 가공하고 조립해서 보이고 싶어 하는 피곤함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 있어서라는 생각이 번뜩 지나갔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왜 난 굳이 저리 인생을 피곤하게 살려했을까.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라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안심을 한다.
상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다. 이해할 필요도, 수용할 필요도, 굳이 인정할 필요조차도 없는데 말이다. 용기가 없었고 겁쟁이였다. 그들은 그들 데로, 나는 나 데로 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단어의 한계가 아쉬울 뿐이다. 단어와 말 그대로 그냥 '그들 자체'를 보면 되는 것뿐이다. 나의 생각과 나의 행동과 나의 관점은 나의 것이다. 생각 할 필요가 없었다. 평가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뭐라고. 이것 또한 '나'라는 자존감, 자존심의 부작용인 듯하다. 너무 과한 자존감, 자존심. 다른 이의 행동과 사고를 나의 기준에 맞추어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불편해하고 그 순간이 힘들었던 것이다.
이 깨달음이 머릿속에 새겨져 오랫동안 기억이 되고 더욱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사고의 근육이 길러졌으면 좋겠다.
그 순간 나의 눈은 커지면서 힘이 들어갔다. 눈동자가 아래, 위, 뒤 초점 없이 움직이다가 초록색으로 깜박이고 있는 신호등에 시선이 멈추었다. 건널목을 건너지 않았다. 미간에 주름이 깊어지고 머리가 멍해지는 순간이었다. 길 가던 발이 저절로 멈추어졌다. 순간 아찔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나의 문제' '나의 욕구'가 나를 그 안에 가두어 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자유'였다. 나로부터 해방되는 '자유'.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나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은 아주 홀가분하다. 훌훌 털어 버리고 마치 다른 인간으로 태어 나는 느낌과 착각을 일으킨다.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이 지구상에 있는데 말이다. 삶이라는 것에 너무 큰 무게를 둘 필요는 없었다. 인생이 허망한 것은 사실이니까...
순간 두려움이 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두려움과 공포 역시 나의 식대로 나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씨앗이 되어 자라난 감정이다. 나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함께 동반되어 밀려오는 불안이 공포를 낳고 그 공포는 걱정과 근심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울을 낳는다. 우울의 씨앗은 결국 분노였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사, 사람사. 그것들이 똘똘 뭉쳐 불화(火)의 씨앗으로 쌓였고 그것이 자라면서 분노로 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 막살라는 말로 착각하면 안 된다. 되면 되는 데로, 안되면 안 되는 데로, 너무 가볍게도 말고 너무 무겁게도 말고 순간을 책임지면서 나에게 온전히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제일 먼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꼭 거쳐야만 한다. 이 과정이 빠지만 이상속의 '나'를 진짜 '나'로 착각해 현실속에 '나'의 모습과 큰 거리차 때문에 큰 우울감이 겹칠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앞을 보며 미친 듯이 달려가도 되고, 열정에 똘똘 쌓여 진취적인 삶을 살아도 된다. 정답은 없다. 어차피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아야 된다. 이 모든 것이 자기의 몫이고 선택이라는 것이다. 너무 무거워 보이지만 그것 또한 나의 사고와 생각 그리고 마음가짐을 내가 주인이 되어 결정하면 된다는 말인데 그게 종종 어렵다.
하!! 책으로 심리학을 읽고, 인터넷 미술심리, 심리평가등 강의를 들으면서도 그저 말로써, 학문으로써, 지식으로 알고 있던 것이 어느 순간 이렇게 갑자기 훅 하고 나에게 들어온다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그 순간의 힘과 파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왔다. 감사하고 감사했다. 슬픔도 함께 왔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연민이랄까..
그 거대한 에너지로 난 사고를 쳤다. 인스타 그램, 틱톡, 쓰레드를 저번주에 동시에 모조리 시작을 했다. 무려 인스타는 계정을 2개나 만들어 보았다. (이것이 뭐 대단한 거야! 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요, 저한테 무지 큰 발전이랍니다.)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친거다. 감히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이다. 나 자신이 나 스스로가 묘해서 더욱 나를 관찰해 봐야 알 것 같다. 우선 이 용기는 '뭐, 하다 귀찮거나, 별로면 그냥 안 하면 되지'라는 단순한 생각과 '누가 뭐라고 하면 좀 어때서'라는 똥 배짱이 낳은 결과다. 사실 신중함 보다 가벼움으로 대했다. 안 해도 되는 거잖아?
베트남에서 어설픈 용기로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했다. 브런치 합격은 잠깐의 기쁨이었다.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선 글쓰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오랫동안 난 글을 쓸 수 없었다. 심한 우울증을 베트남에서 홀로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상태로 기분이 좋은 유쾌한 글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한국 와서 2년의 시간이 흐른 뒤 현재 다시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을 했고 글을 통해 나를 치유하는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정리, 정돈, 버림, 글쓰기로 단단함 마음을 만들어 가는 도중 훅 하고 들어온 '나와 내가 만나는 자각의 순간'은 더욱 큰 다른 세상으로 나를 데려가고 있다. 그곳에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중년인 내가 기웃거리고 있는 모습이 좀 웃기지만 밖으로 나온 느낌이랄까.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을 내가 저질렀다. 핸드폰 하나로 무작정 시작을 했다. 그게 다다. 그런데 그게 내 삶에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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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아무렇지도 않다. 괜찮다. 살아있다. 숨도 쉰다.
누가 날 볼까 두렵지도, 그렇다고 과하게 당당하지도 않다.
우선은 그렇게 난 시작을 했고
아빠와 아이 눈이 휘둥그레 졌다.
음식 사진을 찍고 요리하는 동영상을 촬영하며 부엌에서 홀로 끙끙 앓고 있는 나를 그 두 남자가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본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는다.
난 항상 자유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