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상이 소중합니다.
결혼 후, 엄마가 된 후, 아내가 된 후, 처음으로 가져보는 10월 4일 수요일, 오늘 하루다. 그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추석동안 곰곰이 생각도 해보고, 상상을 해보다 바빠서 깜빡한 그 오늘이 '오늘 하루'다. 이 오늘하루를 온전히 지켜내고 싶어 친정과 시아버님 산소를 다녀온 후 부지런히 장도 보았다. 마트를 다니며 에너지를 길에 뿌리고 싶지 않았다. 과일과 야채를 미리사다 냉장고에 먹을 만큼 채워 두었다. 적당히 채워놓고 먹고 싶은 달달한 커피와 비스킷도 하나 꼼 쳐두었다.
그 '오늘 하루'를 알게 된 시 이모님은 "처음 가져보는 온전한 하루구나~ 친구들 불러 맘껏 놀아~".
친정 엄마는 "아유~좀 쉬어. 좋겠다."
남편은 "뭐 할 거야? 좀 쉬어."
다들 각자 한 마디씩 그들의 생각을 나에게 쏟아부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버렸다. 그들의 생각과 인사치레로 내뱉는 말, 영혼이 없는 그런 말 듣는걸 난 좋아하지 않는다. 어쩜 그래서 나 또한 필요 이상의 많은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새벽 4시 30에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남편을 데려다주었다. 집으로 오자 마자 김밥을 준비했다. 캠프를 2박 3일 동안 가는 아이 점심을 준비해 달라는 학교 부탁이었다. 김밥을 하고 남은 밥은 고기를 볶아 주먹밥을 만들었다. 아침밥은 주먹밥을 해서 먹였다. 학교 버스 타는 곳까지 여행가방을 함께 끌어 주었다. 그렇게 나의 오늘하루아침은 두 남자를 배웅해 준 뒤 오전 7시 20분, 난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는 강원도 쪽으로 캠프를 가는 아이 가방짐을 두 번이나 함께 쌌다가 풀었다. 아직 한국 날씨에 익숙치 못한 아이는 6도까지 내려가는 날씨에 반팔과 반바지를 입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나와 남편은 경량패딩을 챙겨 가야 한다고 열심히 아이를 설득했다. 아침에 쌀쌀해진 날씨 덕분에 아이는 스스로 경량패딩을 겹쳐 입고 떠났다.
추석연휴 바로다음날 한 남자는 해외출장, 한 남자아이는 학교 캠프를 같은날 동시에 떠났다. 그렇게 난 처음으로, 아내가 된 뒤, 엄마가 된 뒤 홀로 집에 남게 되었다. 추석뒤라 더욱 정신이 없었다. 너무 바쁜 순간 홀로 '난 왜 이렇게 항상 바쁜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난 항상 바쁜데, 누굴 위해 바쁜지 생각을 해보았다. 명색은 그들을 위한 뒷바라지라고 하지만, 결국은 나의 만족감이란 걸 알게 되었다.
평상시와 동일한 아침이었지만 왠지 다른 집으로 보였다. 기분 탓일까. 인간이란 생물은 생각, 사고의 힘으로 인생을 사는 게 맞는 듯하다. 상상을 해보았다. 이 집이 지금 현재 내가 홀로 거주하는 집이라면..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고 여전히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 독신이라면...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그저 멍할 뿐이었다.
서둘러 부엌을 정리했다. 김밥 꽁다리와 따뜻한 레몬차를 먹으며 식기세척기안에 그릇을 정리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틈틈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그 오늘 하루가 오늘인데 오직 하고 싶었던 일은 '머리를 식히는 일'이었다. 거실에 향을 하나 피웠다. 조용히 앉았다. 코코가 다가왔다. 엉덩이를 내민다. 모른 척했더니 앞에 벌러덩 하고 더러 누웠다. 개인지 착각을 종종한다. 코코는 고양이다. 여전히 난 두 눈을 감고 차분한 음악 하나를 골랐다.
항상 친정을 다녀오면 난 많이 아프거나 힘이 들었다. 이번엔 달랐다. 난 당당했고 덤덤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내가 단단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찌보면 내면에 너무 치우치는듯 보이기도 하지만 우선은 이상태로 나를 내버려둘 생각이다. 뿌듯했다. 그 생각도 잠시 스쳐 지나갔다. 홀로 제주도, 강원도, 바다 보러 다녀올까 생각도 했지만 또 무언가를 하려 하는 나를 보았고, '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택했다.
그래서 그 오늘 하루를 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를 선택했다. 아침 8시 30분, 무거운 몸을 일으켜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을 다녀왔다. 따뜻한 욕조에 몸도 담갔다.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어김없이 브라를 착용했다. 아이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시트부터 이불 요까지 교체하기 시작했다. 아침빨래는 건조기로 이동시키고 이불빨래를 시작했다. 안방 역시 약간 두꺼운 이불과, 침대시트로 교체했다. 세탁기만 3번 돌린듯하다. 건조기는 아직도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청소기를 들고 구석구석 밀었다. 코코가 지내는 베란다 모래판도 탁탁 털고 스크래치 보드도 갈았다. 코코 옷도 정리했다. 분무기에 식초와 베이킹 소다를 섞어 집안을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닦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청소를 하며 그 어떤 생각도 사색도 하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1시. 점심은 바나나, 견과류, 두유, 감, 포도, 계란, 그리고 아이가 남긴 주먹밥을 서서 일하며 먹었다.
코코와 전기장판에 불을 넣고 둘이 거실에서 대짜로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건조기안 빨래를 꺼내 정리를 했다. 배가 고팠다. 요즘 소셜미디어에 한창 요리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가족이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한 끼식사를 준비했다. 처음이다. 나를 위해 정성스러운 식사를 준비해 본 적이 정말 처음이다. 이런 마음 가짐으로 오롯이 나를 위한 식사준비는 처음이라서 경이로웠다. 라면, 인스턴트 햄버거, 만두 구워 먹기, 떡볶이, 비빔면등으로 대충 후다닥 해치웠던 이전과는 다른 나의 모습에 내가 어색했다. 무엇인지, 그 어떤 힘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난 편안해 보였다.
함박스테이크 패티를 만들어 야채와 곁들여 먹었다. 남편과 아이를 위해 냉동실에도 6조각 얼려두었다. 땡초를 고추장에 함께 찍어 먹었다. 함박스테이크와 땡초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조합인지 오늘 처음 알았다. 부엌도 반짝반짝할 만큼 정리를 한 뒤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오늘 그 하루의 마무리는 결국 브런치에 글쓰기로 마무리가 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로 마무리를 지은 듯하다. 나의 삶은 버리는 것부터 시작이 되어 정리, 청소, 음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삶의 변화는 결국 버리고 포기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말이 몸소 느껴지는 오늘이다.
그 오늘 하루는 특별하지도, 소중하지도, 귀중하지도 않은 평범한 하루 일상이었다. 그 일상이 오히려 나에겐 무척 특별하고, 소중하고, 귀중한 하루가 되었다. 오늘하루 청소와 집안일은 나에게 안정감, 만족감, 평온함을 안겨 주었고 그렇게에 더욱 특별한 날이 되어 버렸다. 난 이 하루하루를 바복하며 앞으로도 비우기 위해 마음을 돌볼 생각이다.
시간은 내가 낚시질하는 강을 흐르는 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 강물을 마신다. 그러나 물을 마실 때 모래 바닥을 보고 이 강이 얼마나 얕은가를 깨닫는다. 시간의 얕은 물은 흘러가 버리지만 영원은 남는다. 나는 더 깊은 물을 들이켜고 싶다. 별들이 조약돌처럼 깔린 하늘의 강에서 낚시를 하고 싶다. 나는 셈을 전혀 할 줄 모른다. 알파벳의 첫 글자도 모른다. 나는 태어나던 그날처럼 현명하지 못함을 항상 아쉬워한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