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자 요가 선생님은 처음이라서.
한국 와서 일 년 동안 정신줄을 놓고 적응하느라 바빴고 마음도 건강하지 못한 터라 우선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감정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병원도 다니고, 상담도 다니고, 정신을 잃은 여자처럼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나를 치유하는데 힘을 쏟았다. 운동할 여력은 없었다. 2년이 지난 지금 낯설었던 한국은 아름다워졌고 아팠던 몸과 마음은 현재도 치유 중이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라. 자연이 그대로 있더라...
슬슬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 운동을 찾아 나섰다. 와우!! 집 근처 몇 군데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낯설었다. 베트남에서는 집아래, 집 앞에, 집 위에 바로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수영장과 헬스장이 항상 함께 있었는데 한국은 그게 아니었다. 그때서야 대학원 다닐 때 요가운동을 차 타고 다녔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고등학교 때도 홍콩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파트 안에 항상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었다. 그리고 잠깐 대학동안 머물렀던 한국 생활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새로 생긴 좋은 아파트들은 요즘 헬스장도 있고 수영장도 있다던데, 난 구옥 아파트에서 심지어 소방검침 아저씨가 '이 아파트는 불이 나면 그냥 바로 죽습니다'라고 말하는 정도의 낡은 아파트에 거주 중이다. 이 집이라도 있는 게 참 다행이다. 운동하는 곳은 많았지만 낯설었다.
집 근처 필라테스를 3개월 다니다 무릎부터 온몸이 심하게 아파 그만두었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 집 근처 필라테스는 아주 전투적인 필라테스였다. 거의 개인 PT를 받는 강도였다. 호치민에서 그 깍쟁이 같은 오스카가한테 처음부터 배우던 쭉쭉 늘어나고 시원한 그런 필라테스가 아니었다. 다시 방황하듯 두세 군데를 더 다녀 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필라테스는 무슨 미국에서 치료로 활용하는 필라테스라며 값을 두 배나 더 지불해야 했다. 난 단지 베트남에서 배웠던 그런 필라테스를 원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냥 단념하고, 차를 타고 집에서 가까운 종합운동장을 가보았다. 우선 줌바는 없고 에어로빅과 요가가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무척 놀랐다. 바로 가입을 했다. 앱도 깔아야 했다. 등록도 복잡했지만 에어로빅은 2번 참석한 뒤 더 이상 하지 않았다. 현란한 손놀림과 발동작, 그리고 한국 걸그룹 음악은 날 패닉에 빠뜨렸고 더 이상 수업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러다 라인댄스로 바꾸어 보았는데 바로 첫날 30분 수업도중 그냥 나왔다. 모든 생활패턴이 호치민에 맞춰져 있는 나에게 한국에 사소한 모든 생활까지 적응하는데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이제 남은 건 요가 하나! 5개월 동안 시간대 별로 다른 선생님들의 요가를 수강해 가며 나와 맞는 분을 찾아 헤매었다. '엄마 찾아 삼만리'가 아니라 '요가선생님 찾아 삼만리'였다. 요가 역시 선생님에 따라 수업이 매우 달랐다. 강도도 달랐고 하는 방법 등 다 달랐다. 하지만 한국 필라테스 보단 괜찮았다.
그러던 중 아이는 긴 두 달 여름 방학을 했고 종합 운동장은 차로 15분 거리지만 오고가며 거의 2시간이 걸렸다. 집 근처로 다시 옮겨야 했다. 집에서 5분 거리, 이곳에도 스포츠 센터가 여러 개 있었지만, 이번엔 올림픽스포츠 센터로 향해 보았다. 아이 수영강습 때문에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 역시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다. 가격도 저렴하고 강도도 적당했다.
아이는 수영수업을, 그리고 난 찾고 찾던 줌바수업을 이곳에서 시작했다. 이번에 새로 신설한 줌바 수업이라 회원이 많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줌바보다 에어로빅이 더 대세인가 보다. 줌바를 좋아하는 이유는 쉽고, 음악이 좋다. 그리고 유산소 운동으로 달리기를 한 만큼 땀이 흠뻑 난다. 그만큼 하고 나면 종종 난 기력을 잃어 몸살을 앓기도 하지만 요즘은 너무 힘들면 그냥 한 주 쉬기도 한다.
길고 긴 2달의 방학이 끝이 나고 아이는 학교로 돌아갔다. 시간적 여유도 생겼고 여전히 나에겐 필라테스와 같은 운동이 필요했다. 강습시간표를 보고 다시 줌바수업 이외에 요가 수업을 추가로 신청하기로 결심했다. 이곳은 크지 않은 곳이라 요가 선생님도 시간도 한정적이었다. 나에게 맞는 시간대를 신청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드디어 첫 수업. 그런데…….
어머.....
이거 뭐지?
요가 선생님이 '남자 중년 아저씨'였다. 화들짝 놀라 주변을 돌아보며 '요가수업'이 맞는지 제차 확인을 했고 옆에 흰 단발머리 아주머니가 '남자 선생님' 맞아요라고 하며 웃었다.
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선 자리를 잡고 무작정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야... 이런 요가는 처음이다. 여자 선생님들과 하는 비비 꼬는 요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쭉쭉 막 일자 벌리기, 코브라, 나무중심 잡기 등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 중년 남자 아저씨 요가선생님과 요가를 하고 나면 이전에 오스카와 필라테스를 했던 것처럼 온몸이 시원하다. 체형이 교정되는 느낌. 아팠던 골판의 통증도 완화되기 시작했다. 뭐지? 이 아저씨 뭐지?
2주 후 사무실에 가서 강사 프로필을 읽어보았다. 오호라~~ 이분 카이오 프라틱, 체형교정, 요가 등 이런 종류 자격증을 가지신 분이었다. 미소가 나올 만큼 기분이 꽤 좋았다. 중년 남자 아저씨가 요가 선생님이라서 회원이 별로 없다. 나 역시 첫 수업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말투와 목소리 그리고 아저씨도 아닌 그보단 나이 들어 보이는 중년 아저씨에 가까운 분이 요가 선생님이라니. 좀 많이 충격을 받았었다. 고정관념이 참 무섭다는 것을 순간 알아차렸다. 그러다 보니 젊은 여성 분들은 좀 꺼려 하나보다. 나야 뭐 상관없다. 그래서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과 나 정도 중년 여자분들이 수업에 많이 참여한다.
오늘은 척추, 등뼈, 목 교정 자세를 잡아주는 요가인지 아닌지 모를 수업을 했다. 폼플러 위에 누워 온갖 구르기, 비비기, 문지르기를 하고 위에서 두 다리 두 팔을 들어 균형 잡는 자제를 지도해 주셨는데, 그 어느 누구도 균형을 잡지 못했다. 계속해서 폼플러 위에서 툭툭 떨어지는 소리와, 아~~, 아아아아~~라는 신음소리와 남자요가 선생님은 돌아다니며 '올라가란 말이에요~'라는 그의 특유의 말투로 계속해서 소리 질렀다. 약간의 올라감과 내려감이 있는 강약조절의 톤이 담긴 말투에 끝단어를 길게 내빼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 선생님은 너무 답답한 나머지 일어서서 돌아다니며 아줌마들 몸을 직접적으로 잡아주지 못하니 바로 위에서 얼굴을 쳐다보며 '손을 떼, 떼란 말이에요~~~,그만큼 몸에 근육, 균형, 척추다 다 틀어져 있다는 말이에요~~~, 뒤꿈치를 붙여요~~~~‘,라며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동작을 요구했다. 사실 우리 아줌마들이 집에서 출산 후 살림을 살면서 체형도 틀어지고 자세도 틀어지면서 근육에 힘을 사용할 수 없어 불가능한 동작이 되어 버린 것이다.
수업 중에 그 누구도 선생님이 원하는 동작을 소화 해 내지 못했다.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갑자기 혼자서 큰소리로 "알겠어요, 알겠어요, 아이고, 알았다고요~~~~“라며 체념하는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을 했고 요가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마치 우리와 무슨 대화를 이어 가다 우리에게 설득을 당해서 결국 선생님이 수긍하는 그런 상황처럼 "알겠어요~ 알겠다고요"라고 연차 말씀하셨다. 그야말로 선생님이 전패당했다는 그런 유향 스였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단지 품플러 위에서 계속 떨어졌을 뿐이고 종종 ‘아~ 아악’ 소리를 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다시 좀 더 쉬운 자세로 바꾸어 다른 동작을 했지만, 그 동작 역시 한 명 빼고 아무도 되지 않았다. 한동안 웃음바다가 되었고 선생님은 멋쩍은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집으로 걸어오는데 등이 쫙 펴진 느낌이다. 상쾌하다. 오는 길에 도토리 몇 개를 주워왔다. 코코랑 놀아 주려고. 이 녀석 토토리 이리저리 굴리며 잘 논다.
건조기안에 빨래가 또 머물고 있다. 후다닥 정리하고 청소하고 공기필터 무조건 청소해야지!
하늘이 파랗고,
햇빛은 눈부실만큼 아름다웠어요.
초록잎은 더 푸르르고,
크록스를 신고 운동복을 입고 걸어오는 난
오늘도
자유를 조금 느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