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습관.
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이른 아침 공기는 마치 초 겨울처럼 차갑다.
항상 잠이 모자란 아이와 '내일도 회사 또 가야 해?'라고 매번 묻는 남자어른 아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집을 나섰다. 그 둘은 매일매일 피곤하다.
나름 야채와 단백질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하고 물도 현미, 보리, 생수 등 돌아가면서 냉장고에 채워 놓지만, 아이 컨디션이 영 별로다.
영양제는 비타민C와 유산균만 챙겨 먹는데...
'요즘 수험생들을 위한 영양제가 따로 나오던데 혹시 그런 걸 먹여야 하나?'라는 생각도 스쳐 지나가면서 마음이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또 끙끙 앓기 시작한 것이다.
한숨이 나오면서 내가 해줄 것은 또 없는지 고민하며 엄한 냉장고 문만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한다. 냉동실을 뒤져 보아도 딱히 해줄 건 없다. 전복죽을 끓여 줄까 고민하다 열이 난 후 항상 즐겨 먹는 흰 죽과 간장이 생각났다. 참기름을 동동 띄워 간장에 흰 쌀 죽을 적셔서 먹는 걸 좋아했다. 그래. 그냥 흰 죽을 만들자.
주말에 고열을 한번 찍어 집 근처 연중휴무 이비인후과를 다녀왔다. 혹시 몰라서 독감 검사까지 진행했지만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아유.. 무슨 병원비만 하루아침에 5만 원이 나왔다. 한숨과 동시에 '돈 없는 사람은 아프지도 못하겠어'라는 허접잖은 말이 툭 튀어나왔다. 독감검사 키트는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고, 약값이 제법 나왔다.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
학교 캠프 이후 항생제를 열흘 먹었고 한주 만에 다시 또 아픈 거라 나도 정신이 없었다. 기관지가 어릴 때부터 좋지 않은 아이다. 집에 나름 장비까지 갖추고 있다. (한번 아프면 무조건 40도 고열, 기침 한번 시작하면 토할 때까지, 한밤에 기본 30분에서 1시간 연달아 기침을 한다. 커서 많이 좋아졌다.) 그래서 유명한 '오르몬 네블라이져' 기계가 집에 3세대나 있다. 휴대용 2대, 집에서 사용하는 큰 장비 1대. 지금 거의 한 달 동안 김침과 가래를 달고 산다.
문제는 이제 좀 컸다고 애미 말을 귓똥으로 듣는다. 네블라이져로 연기를 쐬고 있자니 답답한 것이다. 기침이 조금 줄었다 생각하면
'엄마, 이거 꼭 해야 해?'
'이게 무슨 효과가 있어?'
'이거 전혀 효과 없어. 알아?'
말이 너~~ 무 많다. 정말 많다!!! (어릴때는 하루에 5번도 쐬고, 자다가도 쐬었는데, 이 자식.... 컸다.)
사춘기가 온 것 같기도 한 아들과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기 싫었다.
'그래, 그럼 하지 마.' 이렇게 쿨하게 이야기하면 아이는 다시 꾸역꾸역 연기를 쐬고 있다.
무언가를 '하지마'라고 할 때 이 '하지마'가 가지는 의미는 아이에게 역으로 '무조건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인식되는 것 같다. 좀 더 부드럽게 '그럼~ 하지 말어. 안 해도 괜찮아~'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정말 안 해버린다.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걸 시키고 싶을 땐 종종 이 방법을 쓴다. 하지만 이번에 '하지마'란 의미는 정말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는데~
아마 아이는 엄마가 삐졌거나 화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난 정말 진심으로 한 이야기인데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도라지 물 먹어'.
'배 먹어'.
'꿀 먹어'.
를 연신 내뱉고 일단 후퇴한다.
아이는 오만상을 다시 찌푸린다.
종일 온 정신이 아이한테 가있었다. 코로나 이후 이번에 꽤 아팠다. 일 년 만이다. 이전 호치민에서 기억이 올라왔다. 정말 저 아이 때문에 호치민에서 '짝퉁 약사'라는 별명까지 얻어 가며 기관지 쪽으로는 모르는 약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심하게 자주 아팠던 아이였다 보니 한번 고열이 나면 난 다시금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한다.
보글보글 올라오는 마음. 불안 초조. 빨리 저 아이가 낫기를 바라는 마음. 빨리 기침이 멈추었으면 하는 바램. 이 모든 바램은 모든 엄마들이 바라는 바램이겠지만 난 좀 유별나게 더 급한 것 같다. 병원에 입원을 하기 싫은 마음까지 합쳐져서 아이가 연이어 기침을 시작하면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처방받은 기관지 확장 스티커를 붙여도 기침 소리는 여전히 커렁 커렁하다.
온갖 먹을 것, 약, 기구, 집안 온도까지 체크하면서 아이 기침을 잡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노력을 쏟아 붓는다.
그러다...
.
.
.
아이를 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 이젠 아이가 너무 컸다.
키도 나와 비슷한 아이. 발은 아빠 발보다 더 큰 아이.
이젠 기다려야 할 때이다.
우선 병원도 다녀왔고, 주사도 맞았고, 약처방도 받았다. 이곳은 한국. 대한민국.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하루라도 빨리 낫기를 바라는 조급함도 내려놓기로 한다. 실컷 아프다 보면 면역도 생기겠지'라고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 항생제를 너무 오랫동안 먹었다. 어쩔 수 없다. '그것 또한 괜찮아지겠지'라고 마음을 먹는다.
조급함과, 불안함은 항상 '완전했으면'하는 나의 바람에서 나온 것이다. 건강한 아이들이 부러웠고, 감기가 걸려도 미열과 김침을 어느 정도껏 하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너무 부러워 나 자신을 탓했던 때도 있었다.
그래.. 아마 '노산'이라서...
아니면 '입덧' 때문에 못 먹어서..
그것도 아니면 '어지럼증'으로 임신기간 운동을 못해서...
그럼 '조산'?
'내가 남들 보다 약해서?'
이런 것들을 나열하면서 아이가 아픈데 나 자신을 원망했었다.
이젠 아이가 컸다. 괜찮다고. 크게 걱정할 것도 아니고,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 걸 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아프고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 진다는 것도 안다. 매번 40도만 찍던 고열이 그나마 빨리 내려서 다행이라 위안을 삼았다. 이틀 만에 내려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온갖 긍정의 확언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기껏 감기 하나에 이렇게 까지 수많은 생각을 하고 스스로 긍정의 확언을 머릿속에 새기는 이유는 유달리 아이가 아플 때마다 올라왔던 불안한 '마음의 습관' 때문이다.
호치민에서 밥 먹듯 입원을 하고, 무조건 고열만 찍었던 아이를 키우면서 생긴 '마음의 습관'.
병원 시설과 믿지 못하는 의술 때문에, 자주 아픈 아이 때문에 스스로 약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의 기억이 고스란히 아직도 가끔 툭 하고 올라온다. 몸도 마음도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많이 야물어졌고 단단해진 마음은 몇 번의 '알아차림'과 긍정의 사고 전환으로 빠른 인정을 하고 불안함을 떨군다.
이전에 나라면 '집에서 쉬어, 학교 가지 말고 엄마랑 놀자'라고 말을 했을 테지만 더 이상 어린아이를 대하 듯한 엄마의 모습은 보여 주지 않는다. 그깟 감기 하나에 무너질 아이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앞으로 홀로 삶을 꾸려 나가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감당할 수 있는 아이로 커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픈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니 하루종일 마음이 무겁다. 보글보글 끓어올라오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엄마인 내가 나의 자리를 용감하게 지켜내야지만 아이가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는 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오늘도 난 마음을 들여다 보고 나를 들여다본다.
삶은 고난, 고통, 어려움 이 모든 것이 동반될 때 아름다운 것임을 이젠 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by On Pen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