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지 모를 이 느낌을 꼭 기억하고 싶어서...
문을 살며시 조용히 열고 문 쪽 모퉁이에 잠깐 서서 넋 나간 사람처럼 3대 불상을 본다. 웅장하고 거대하다. 조계사의 모습은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조금은 정신이 없다. 사람도 많고 현대식 건물과 전통사찰 건물이 마구 섞여 있는 그런 구조다. 새롭지만 친숙하지는 않다. 나 같은 관광객도 많다. 한번씩 둘러본다.
사천대왕이 철강으로 만들어졌다. 처음 본다. 너무 신기하다. 대웅전으로 발길을 옮긴다. 조용하고 경건하다. 3배를 한다. 갑자기 저기 맨 뒤쪽에 할머니 한분이 나를 보고 마구마구 큰 동작으로 팔을 마구 휘두른다. 난 그냥 지나친다. 그리고 또다시 눈이 마주친다. 다시 팔을 쭉 뻗으시고 자기에게 오라는 손짓을 멈추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본다. 다들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응답을 하지 않는다. 분명 나를 보고 자기 쪽으로 오라는 것 같은데...
난 눈을 왕눈만큼 커다랗게 뜬다. 마스크 안으로 보이지도 않는 입모양으로
'저요???'
손가락으로 나 스스로가 나를 가리키며 다시 한번
'저요??'
할머니 드디어 고개를 크게 끄덕이신다.
크게 여러 번 끄덕이신다.
난 복잡한 사람들 사이를 삐집고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할머니가 내 가방을 잡아채고 날 끌어당긴다.
나의 귀에다 대고
" 저기 뒤쪽 기둥 쪽으로 가면 방석이 많이 쌓여 있응께, 그거 이쪽 뒤로 가서 가져와서 깔고 앉아. 무릎 나가. 젊다고 그리 막 굴리믄 안되는겨. 내가 가방 가지고 있을테잉께 가서 방석 가져와."
그제야 난 안도의 한숨이 턱 하니 쉬어진다. 너무 긴장한 탓에 숨을 들이킨 다음 제대로 내쉬시도 못했다. 할머니의 어이없는 '방석' 이야기를 듣고서야 호흡이 가능하다. 멈칫 멈칫 뒷걸음질 치며 가방은 함께 들고 뒷걸음 질로 빠져나온다.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경을 읽으신다. 목탁 소리가 들리고 스님들 예불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 말대로 저~기 기둥 뒤쪽으로 가서 방석 3개를 가져와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앉았다.
자꾸 미소가 지어진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나의 미래 모습도 떠오른다. 나도 할머니가 될 텐데.
어깨가 아파서 홀로 시내 나갈 때는 최대한 가방을 비운뒤 딱 필요한 것만 챙기는데, 오늘따라 후회가 된다. 계속해서 가방 속을 뒤진다. 마구 뒤진다. 앗! 맨솔 사탕 Fishermen 레몬맛이 있다.
법문 중 나는 계속 '이 사탕을 드려도 될까? 안될까? 그냥 집에 가기 싫은데.. 길 건너 4개 천원하는 붕어빵을사다 드릴까?' 고민을 하다가 다시 법문에 집중한다. 30분 정도 앉아 있다가 일어난다.
방석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할머니에게 다시 다가간다. 아무 말 없이 레몬맛 멘솔사탕 하나를 꺼내어 할머니 책 위에 살포시 올린다.
할머니가 아이처럼 웃는다.
나도 조용히 해맑게 웃는다.
신발을 신으러 나가는 나를 할머니가 쳐다본다. 그리고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손을 흔든다. 나도 엉겁결에 손을 흔든다.
신을 신고 버스정류장까지 한참을 걸어갔다.
이거 뭐지?
무엇인지 모를 이 기분
무엇인지 모를 이 따뜻함
무엇인지 모를 이 푸근함
그리고
이 차분함..
나의 글 실력으로는 제대로 그 상황을 그려낼 수 없는 아쉬움
허나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의 그 느낌.
우선 서술하듯 작성했지만
언젠간
다시 풀어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2023. 1월 11일. 수요일. 조계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