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있는 나와 맞서기
<대문사진 : pinterest>
호출버튼이 어디 있지?. 바람은 매섭게 불고 손은 덜덜 떨린다. 봄 맞아? 아 추어~.
이럴 땐 호흡을 해야지. 그렇지? 크고 깊게 호흡을 하고 다시 화면을 찬찬히 둘러본다.
찾았다. 호출버튼. 그럼 그렇지. 여기 당연히 있지.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수도 있어. 그러니 당황하지 말고 차근차근 말씀드리자.
'아.. 제발... 금방 해결되겠지?'
"띠리 리리. 띠리 리리"
"네, 경비실입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 아... 아저씨.. 죄송해요. 주차쿠폰 넣는 곳에 제가... 신용카드를 넣었는데요... 기계가 신용카들를 꿀꺽했어요."
"아이고, 잠만 기다리세요. 금방 갈게요."
"네~~"
씩 웃으며 차량 비상등을 켜놓고 밖으로 나와 있었다. 걱정했던 것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니구나를 인지하는 순간 다시 기분이 가벼워졌다.
주차쿠폰 투입구에 신용카드를 넣었다는 현실을 마주한 순간 머릿속은 캄캄했다. 카드사에 분실 신고를 해야 하나? 아 남편이 또 잔소리하겠지? 이건 쿠폰이 아니면 다시 카드를 뱉어내야지 왜 꿀꺽한 거야?
사실 호출버튼도 못 찾아 헤매었다. 심지어 기계 뒷면까지 둘러보며 한 바퀴 돌았다. 왜 그랬을까?. 화면이 핸드폰처럼 터치 화면이었다. 일반 오래된 주차기계들은 버튼이 외부에 나와 있지만 새로운 터치화면 주차 기계는 터치화면 안을 잘 들여다보면 맨 아래 호출버튼이 있다.
춥고 아저씨는 언제쯤 오나 기웃기웃. 다들 무슨 사고라도 난지 알겠지? 차라리 그게 나아. 주차쿠폰 입구에 신용카드를 넣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지도 몰라라고 혼자 생각을 다시 정정했다.
오래간만에 마음먹고 차까지 끌고 나온 목욕탕이 휴일이라니... 주차비는 700원. 30분 무료회차 기능도 없나 보다. 윽.. 꾹꾹 올라오는 짜증을 눌러 담고 집으로 갈지 한참을 고민한다.
다행히 15분 만에 나의 문제는 해결된다. 카드는 다시 찾았다. 비상등을 켜고 도로 주변에 주차를 한 다음 바나나 하나를 꺼내서 열심히 먹었다. 새벽 배송으로 급하게 주문한 바나나. 그래서 그런지 성글성글 덜 익은 바나나. 껍질도 잘 까지지 않는다. 입으로 바나나 끝 꽁지를 깨물어 뜯은 후 겨우 껍질을 벗겼다. 풋내 나는 바나나를 썰컹 썰컹 씹어 먹었다. 운동직후라 허출했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어쩌자고 이런 실수를 마치 밥 먹는 횟수보다 더 자주 하는 걸까? 허둥버둥, 설레 벌떡, 허걱허걱, 어리바리. 바나나를 다 먹고 요플레하나를 들이켰다.
차분해진 마음을 들여다보니 난 불안해하고 있었다. 화가 올라온 게 아니라 슬픔이 올라온 거였다.
습관처럼 다니던 절을 요즘 습관처럼 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절에 가지 않아서 그렇다고 세뇌된 뇌와 나 자신은 맞서고 있는 중이다. 강해지기 위해. 굽신거리지 않기 위해. 당당해지기 위해. 그렇게 하루하루를 여전히 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절에는 내 마음이 진정한 법문에 귀의하고자 할 때,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 그때 간다. 난 나 자신과 맞서서 오늘도 열심히 싸우는 중이었다.
우선 핸들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주차장에 10분 정도 앉아 있었다.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오늘 이 하루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나의 기분도 내가 결정할 수 있다. 기분에 좌지우지되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 버리면 하루를 망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동네 근처 다른 목욕탕을 검색했다. 한 곳은 전화를 하니 남자탕만 있는 곳이고 다른 곳은 영업 중이었다. 10분 거리였다.
원래 허둥지둥 잘하니 오늘 같은 일은 자주 일어났다. 2년 전 한국 대형마트가 주말에 쉬는 날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두 번 정도 허탕을 쳤다. 그러고 나서도 1년 동안 아주 여러 번 일요일 마트를 다녔고 그중 3번,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목욕탕에도 휴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목욕탕 휴일을 미리 확인하지 못한 나의 실수다. 다음부터 미리미리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면 된다. 절에 가지 않아서 생긴 일이 결코 아니다.
또 미리 확인하지 못해도 괜찮다. 어차피 틀에 갇혀있는 걸 싫어하고 계획된 생활을 싫어하니 이렇게 다른 곳을 찾아가면 된다. 이 동네 온 지 2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길치. 목욕탕도 매번 다니던 곳만 다녔다. 다니면서 시설이 너무 낙후되었다며 혼자 궁시렁 궁시렁 했었는데 이참에 새로운 곳을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니 오히려 설레어야 한다.
난 나의 기분 설렘을 선택했고 여탕이 있는 그곳을 찾아갔다. 유리관 안에 갇혀있는 그 세뇌된 자아에 맞서 기어코 찾아온 이 목욕탕은 신설 목욕탕이었다. 내가 갖힌 유리관을 오늘도 난 깨어 부셨다. 차근 차근 잘하고 있다고 칭찬까지 했다. 목욕탕이 깨끗하고 넓고 탕도 많다. 나의 선택에 흡족함이 밀려온다. 집에 안가길 잘했어!!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나머지 챙겨 온 에너지바를 맛나게 앉아서 먹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이야... 이런 곳이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고? 남편한테 저녁에 꼭 알려 주고 싶었다. 남편은 목욕을 싫어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보다 더 목욕 애호가가 되었다. 알 수 없는 사람이지만, 분명 좋아할 것이다.
난 목욕탕을 좋아한다.
설렘을 선택한 하루는 만족감으로 다가왔고 다시 나를 차분히 내려놓았다.
오늘도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선물 같은 오늘 하루.
비록 신용카드를 주차쿠폰란에 투입하긴 했지만,
허허하고 웃을 수 있는 날이,
곧 나에게도 올 거라 믿는다.
나를 믿고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게
겸손하게
오늘을 마무리한다.
괜찮아... 완벽한 하루는 있을 수 없어.
호찌민 때밀이가 그리운 어느 날.
by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