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너를 벗으로 삶아서.
새벽 기상도 명상도 요즘 노칠 때가 종종 있다.
눈은 떴으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두통이 밀려온다.
그나마 겨우 몸을 일으키는 시간이 5시다. 주말에는 6시.
아 침 해 뜨는 모습도 놓친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손마디는 퇴행성 관절인지 멍이 든 듯 얼룩이 져 있고 손목과 무릎이 계속 말썽이다.
어디 한 곳이 고장 난 게 아니라 마치 오래되어 닳고 닳은 낡은 의자에서 나사 하나가 삐져나온 것처럼.
앉을 때마다 좌 우로 흔들리는 불안한 의자처럼.
흔들릴 때마다 신경을 건드리는 삐그덕 소리 때문에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것처럼.
나의 몸에서 그런 신호를 보내온다. 준비하라고.
필라테스 운동 중 영국 아줌마를 만났다. 그녀는 57세다. 그녀는 자그마 하니 통통하다. 목소리가 적당히 안정적이면서 가볍고 사뿐사뿐 한 기운이 배어 있다. 그녀 목소리는 상대를 무장 해제시킨다. 말투 또한 한없이 예의 바르며 어딘가 모르게 따뜻함이 배어 있다. 시간이 지나 알고 보니 전직 상담 사였으며 심리 치료사였다고 한다. 매주 목요일 같은 시간에 운동을 하다 무릎 관절 이야기로 시작해서 여성 갱년기 증상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역시 우린 아줌마다. 나이를 초월하는 아줌마의 좋은 점 중 하나가 이 '뻔뻔함'이다. 언제 봤다고 갱년기에 생리 이야기 까지. 그 이야기 끝에 난 병원을 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아픈 곳을 남들에게 알려라'는 옛날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결론을 내리면 망설임 없이 바로 행동으로 움직이는 나의 주 특기가 발동이 걸렸다. 항상 그렇듯 우선은 하고 본다.
운동 후 땀이 범벅된 상태로 Family Medical로 향했다. (Family medical- 1988년 Dr. Rafi Kot /이스라엘 의사가 베트남 북부에 의료 지원차 방문을 했다가 그것이 계기가 되어 베트남에 병원 클리닉을 설립했다.)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환자가 없어 바로 접수가 가능했다. 산부인과를 신청하고 차분히 기다렸다.
" 미스 고"라고 부르고 의사와 면담이 시작되었다.
"2013년 백혈구 수치가 왜 이렇게 낮나요? 지금은 괜찮은가요?"
순간 그때가 회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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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서 호치민으로 다시 발령이 나고 1년 후 난 자궁 선근증을 앓았다. 그땐 몰랐었다. 소위 여성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걸리는 마법의 날이 나에게는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마법의 날이었다.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요술 지팡이를 짚고서 동화책에 출현하는 마녀가 나의 미모를 질투하여 저주를 내린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고달픈 날이었다. 생리를 한번 시작하면 보름씩 하열을 했다. 외출은 전혀 할 수 없을 정도였고 기저귀 사이즈도 밤에는 부족했다. 심한 하열에 탈모와 저혈압 그리고 백혈구 수치까지 바닥으로 내려갔다. 이곳 병원에서 호르몬 검사, 피검사 등 여러 가지를 해 보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아이가 방학을 하자마자 비행기표를 끊고 바로 한국으로 출국했다.
역시 우리나라의 의료진은 입소문 날 만 했다. 최첨단 장비와 신속하고 빠른 절차로 일주일 만에 자궁 선근증이 원인이라는 통보받았다. 산부인과에서 미레나를 권유받고 6개월 동안 철분제를 복용했다. 이후 나의 몸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호르몬의 변화로 살이 쉽게 쪘다.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운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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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올해에는 한국을 갈 수 없었다. 5년의 기한을 채운 미레나 척출 시술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한참을 걱정하고 고민을 하다 용기 내어 프랑스 의사 선생님이 계신 Han Phuc 산부인과를 갔다. (걱정하고 고민한 이유. 난 여전히 2007년도의 호치민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상태를 보시고 10분 만에 해결을 해 주셨다. 쓸데없는 걱정 탓에 두 다리 힘이 주르륵 풀렸다. 그리고 금방 콧노래를 부르며 개운해진 마음으로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푹 쉬었다. 나름 시술이었고 긴장한 탓에 멍 때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분명 의사 선생님은 다시 생리가 시작될 것이고 빈혈과 이전처럼 증세가 나타나면 3개월 안에 재 방문을 하라고 했다. 한국이 아닌 이곳에서 무사히 시술을 마친 나는 든든한 마음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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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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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 몸에 열이 계속 얼굴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벌써 8개월 정도가 되어간다. 처음엔 가끔씩 그랬지만 미레나 척출 후 본격적으로 열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올라왔다 내려간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 파충류처럼 체온 조절 시스템이 고장 난 사람 같다. 내 몸뚱이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따로 있는 몸처럼.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갑자기 나의 몸에 들어와 심장 박동수를 올리기 위해 일부러 심한 스쿼드를 한 뒤 홍수 같은 땀을 쏟아 내고 얄밉게 쏙 빠져나가는 그런 느낌. 심장 도 나의 심장이 아닌 듯하다. 갑자기 책을 읽다가도 생선 아가미 가 숨을 쉬기 위해 헐떡헐떡 그리듯 나의 심장이 벌렁벌렁 거린다. 그러다 열이 얼굴로 광분한 듯 솟구쳐 오른 뒤 땀이 주르륵 난다. 수도꼭지가 터져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듯 땀이 뚝뚝 떨어져 가슴까지 타고 내려간다. 누군가 나의 몸을 이리저리 마구 휘젓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러고 좀 앉아 있음 발 끝에서 부터 냉기가 스르르 다시 찾아온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웃었다. 기가 막힌 현상이다.
영국 아줌마와 잠깐의 대화 이후 무엇인지 대충 알게 되었고 바로 필라테스 센터와 가까운 동네 병원 Family medica (패밀리 메디컬)로 향했다. 의사가 묻는 질문에 대충 왜 백혈구 수치가 낮았는지 이야기를 하고 호르몬 검사를 위해 피를 뽑기로 했다. 10분 정도 걸렸다.
수납구에 돈을 지불하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우선 뽑은 피를 검사실에 넘기지 못하게 중지를 시키고 의사를 다시 만났다. 다음에 오겠다고 이야기했다. 진료실 문을 꼭 닫고 계단을 뚜벅뚜벅 내려왔다. 땀에 젖은 옷은 어느새 다 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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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팠다. Hue Corner (베트남 로컬 음식점. 후회 음식을 파는 곳)에 운동복 차림으로 가서 Bún bòHuế (후회 국수)와 bánh bèo huế (반 베오 )그리고 짜다(얼음차)를 시켰다.
종업원이 혼자냐고 자꾸만 묻는다. 살짝 미소를 보여 주며 그렇다고 했다.
놀란 눈으로 처다 본다. 혼자서 음식 두 가지를 당당히 주문하는 아줌마를 처음 봤을까.
먹는 동안도 나를 힐끗힐끗 보더라. 혼자 피식 웃었다.
얼큰한 국물에 어묵까지. 단숨에 흡입했다.
운동도 하고 피 까지 뽑은 후라 더욱 시장했나 보다.
난 그 많은 음식을 혼자서 진짜로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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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리 먹고 무사히 집에 도착을 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이 요즘 부쩍 나를 반겨주신다. 차 안에서 한 손을 신나게 흔들어 인사를 했다. 처음엔 경비 아저씨들이 나를 의아해했다. 항상 차 안에서 손을 흔들거나 경례하듯 손을 뻗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야구 모자를 쓰신 한분이 나의 인사를 받아 주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 요 근래 모든 경비 아저씨들이 나를 보면 손을 흔들어 주신다. 경비실 입구에 세명의 아저씨들이 조로록 앉아 계시다 나의 차가 지나 가면 나를 향해 세분 모두가 동시에 손을 흔들어 주시는 대 참사가 일어났다. 그날은 운전을 하다 한없이 웃었다. 아저씨들에게 감사하다. 외출을 하고 돌아올 때 경비 아저씨들과 주고받는 무언의 캐미가 즐겁다. 이게 사람 사는 맛이다.
샤워를 하고 큰 호흡을 한 뒤 Han Phuc 산부인과 병원을 다시 예약했다. Dr. Roche (프랑스 의사)와 날자를 예약했다. 그곳은 호르몬 검사를 위해 피검사를 한다고 해서 500불 이상의 돈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 Family Medcial에서 호르몬 검사 비용으로 나에게 500불 한화 50만 원 이상을 청구했고 난 화가 났다. 아무리 당뇨, 캴숨체크 , 백혈구 수치 등 종목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고 하지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조용히 나와 배고픈 배를 채우고 기분 좋게 집으로 왔다. 사실 베트남 자국민을 Family Medical에서 만난 적은 극히 드물다. 주로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싱가포르 그리고 유럽과 외국인들이 주로 고객이다. 요즘은 한국 교민들도 한국인 병원이 워낙 많이 생기다 보니 거의 가지 않는 듯하다.
씁쓸했다. 타국에서 의료비로 고생하는 교민이 생각났다. 베트남에 있는 외국 병원, 한국 병원 도 마찬 가지다. 한번 가면 100불 이상이다.
베트남에 베트남 로컬 병원, 외국인이 운영하는 병원, 한국인이 운영하는 병원, 한국인이 베트남 의사를 고용해서 운영하는 병원이 있다. 가격이 하늘과 땅 차이다. 의사들의 실력도 하늘과 땅 차이다. 비싼 병원이라 하여 결코 최고의 의사가 진찰을 하고 진단서를 끊어 주는 것은 아니다. 의료 보험이 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 커버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회사에서 보조되는 금액도 항상 진료 혹은 치료가 목적 일 때 보조금이 나온다. 일반 검사를 위해서는 사비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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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검사를 취소해서 빠른 시일 안에 결과를 알 수도 없고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답답 하지만 늙어 가는 과정이고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다. 조금 남들보다 빠른 감이 없진 않지만 그만큼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빨리 찾아왔기에 또래에 비해 좀 더 빨리 어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감수성이 소녀로 돌아 간듯 하여 글쓰기에 좀 더 도움이 될듯 하다. 이 아줌마 지금 제정신 맞다.
자연과 우주의 이치를 따르고 있는 나의 몸에 감사하며 홀로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 체온 변화를 친구로 삼으려 한다. 명상이 도와주리라 믿는다.
항상 모든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오는 그곳 그분께도 종종 의지를 해볼까 한다.
오늘 저녁은 남편이 좋아하는 밀떡으로 떡볶이를 해 먹어야겠다. 아는 동생이 이곳 가게를 접으면서 밀떡을 두 봉지나 주더라.
P.S 혹시 갱년기 증상으로 음식, 운동, 뭐 이런저런 저에서 조언을 해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더운 베트남에서 아줌마가 혼자 이리저리 알아보아도 무엇을 어찌 준비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