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교육관과 신념이 흔들린 날.
“ 어머니, 요즘 친구들 10시 이전에 자는 학생 없습니다. 수학 숙제 매일 1시간 이상 해야 합니다. 카톡으로 학생과 개별 연락을 취해야 하니 연락수단을 장만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학 레슨 이후 별 다른 스케줄이 없으면 30분 더 공부 방에서 수학 문제를 더 풀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또 시간이 된다면 매일 와서 한 시간씩 숙제나 수학 문제를 다른 방에서 풀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순간 이것이 말로만 듣던 '스카이 캐슬'의 학생 관리 인가. 마치 수학 공부 코디네이터의 느낌.)
“ 죄송합니다. 선생님. 수업 이외에 추가 공부 30분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 난 숨이 막혔다. 그리고 매일 한 시간씩 수학 숙제는 무리다. 20분에서 30분은 가능하다.)
“ 수학 수업 이후 다른 스케줄이 또 있나요?
( 공짜로 아이 숙제를 봐주겠다는데 싫다는 엄마 '이 아줌마 뭐지?'라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 아니요. 없지만 8시 30분이 취침 시간이라서요. 집에 도착해서 읽고 싶은 책도 읽어야 하고 또 가끔 농구나 유도 레슨도 가야 해서요.”
( 이 엄마 지금 수학 대신 예체능에 목숨 걸었나? 체대 보내려고 하나? 선생님의 눈동가 좁혀진 미간 사이로 흔들리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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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수학 선생님은 수학 공부를 시키겠다는 열정과 의욕에 불타 학생이 매일 수학만 공부하기를 바랬다. 하루에 20분에서 30분이 아닌 1시간씩 매일 수학 문제 풀이에 시간을 투자하길 바랬고 현재 그렇게 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고 했다. 그 친구는 3년 앞서는 선행을 했고 학교에서 수학 최고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 다른 친구 이야기 별로 관심 없습니다. 선생님)
‘매일 수학 공부를 1시간씩 한다면 수학을 못하던 친구도 당연히 잘할 수밖에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쩜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나 스스로가 시대에 뒤 떨어지는 엄마이고 그 젊은 수학 선생님 말 대로 지나치게 느긋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엄마라 그럴 수도 있다. 급하지도 않고 수학을 3년 이상 선행시키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수학경시대회에 나가 상을 받고 싶다거나, 경시대회 반 에 선출되어 보겠다는 꿈 자체가 나에게는 사치이고 허황된 꿈이다. 그런 망상을 가져 본 적도 없을뿐더러 수학을 반에서 일등 시키고자 수학 선생님을 알아본 것은 아니었다. (그 젊은 수학 선생님은 초등 고학년 우리 아이가 8시 30분에 취침한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기까지 하셨다.)
초등 고학년이 되었고 또 다가오는 겨울 방학기간 중 코비드 때문에 한국을 다녀올 수 없는 상황이라 수학 선생님을 교육방에서 찾아보고 있었다. 수학 개념에 구멍이 뻥 뻥 뚫려 있어 기초를 다져야 할 것 같았고 늦었다고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연산은 얼추 되어 있고 (완벽하지는 못하다.) 분수 개념을 자꾸 깜박깜박해서 실수가 잦았다. 중학교 가기 전 기본 토대를 좀 더 확실히 다지고 싶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족한 부분을 메워 개념을 단단히 잡고 싶었다.
마치 가랑비가 한번 내린 후 토양이 다져지고 단단해지듯이 중간중간에 수학 과외 선생님을 3개월씩 붙였었다. 주변에 수학 학원을 2군데 이상 다니는 친구들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책 읽기와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충분히 자기만의 시간과 여유를 주고 싶어서 선택한 방법 이기도 했다. 나름 나쁘지 않았고 저학년이다 보니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수학을 곧잘 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집에서 나와 혹은 아빠와 복습을 하고 문제를 풀고 지속적으로 수학에 시간을 투자했다. 나에게 있어 아이의 사교육은 응급 처치 도구이다. 필요한 순간 몰아서 집중 적으로 하고 나머지는 아이 몫이다. (기존 수학 선생님이 호치민 생활에 인내심에 한계를 느껴 홍콩으로 가버렸다. 그래서 최근에 다시 알아보게 되었다.)
호치민 카카오톡 교육 단톡 방에 하루에 300건 이상 넘어가는 과외, 학원 홍보가 올라온다. 지금 호치민에 사교육 열풍이 넘쳐나다 못해 마치 화산 아래 용암이 분출하여 하늘로 치솟기 위해 준비 중인 태세를 갖추듯 학원가가 급 증가하고 있다. 교육 열풍이 유달리 심하게 불고 있다. 특히 겨울 방학이 다가오는 시점이라서 그런지 더 많은 광고와 새로운 교육 광고들이 올라온다. 기존 나의 생각에 마치 반격이라도 하듯이.
솔직히 이곳이 편하다 생각했다. 제정신 아닌 한국 사교육 시장에 아이를 몰아넣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주재 원수가 점점 넘쳐 나고 한국 교민 수가 증가하면서 사교육 시장이 공기가 꽉 차 버린 풍선처럼 금세 부풀어 올랐다. 마치 언젠간 터져버릴 풍선처럼. 반면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마땅한 학원과 선생님이 없어 고되고 어려운 공부를 스스로 해야 했던 고학년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어쩌면 다양한 선생님들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여건과 기회가 찾아온 것일 수도 있다.
사교육 열풍이 불기 이전 호치민 입시생들의 생활은 대략 이러했다.
코비드가 나타나기 이전 고등부 국제학교 학부모들 중 80프로는 여름방학 2달 중 한 달은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고 다시 베트남에 입국했다. 사실 거의 모든 부모들이 그랬다. 열악한 베트남 교육환경 속에서 같은 시간과 같은 비용을 투자해도 한국만큼 교 육 성과를 얻기 힘들었다. 경력과 능력 있는 과외 선생님들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하여 6월부터 방학을 맞은 국제학교 학생들은 방학 당일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한다. 오전에 한국 학생들이 학교를 간 틈을 이용해 (한국은 8월이 방학) 여름 방학 기간 동안 한국에서 특별식 스파르타 과외로 학원가에서 특별 수업을 받는다. 오전 시간에 과외를 받고 단기간에 선행 학습을 학고 온다. 대치동에 머물며 IB 한 과목당 천만 원씩 (3과목 3천만 원) 한 달에 투자하고 돌아오는 고학년 학부모들도 꽤 많았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과외 단톡 방에 고등부 11학년과 12학년을 위한 수업과, 학원, 공부방 설명회가 수시로 올라오고 학생 모집 홍보가 빗발친다. 유학원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2-3년 안에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과외 선생님들 광고가 증가했다. 현실이 그러하듯 지옥 같은 한국의 취업난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 욜로 라이프가 대세인 만큼 물가 저렴한 동남아 중에서도 교민 사회가 번창한 베트남을 선택한 것이다. 젊은 선생님들은 용감하고 당당하다. 그들만의 개성과 그들만의 소신이 있다. 우선 학벌을 공개한다. 소위 우리나라 스카이대 학벌을 내세운다. 과외 방을 차리고 요구하는 가격은 한국 대치동 가격과 흡사하다. 그 친구들의 과외 비는 기존 이곳에 공부방을 하거나 과외를 하던 선생님들의 1.5배 가격이다. 학부모들이 한국식 교육에 목말라 있고 이곳에서 10년 이상 된 공부방 선생님보다는 젊은 선생님과 최근 한국식 교육 방식을 선호한다는 것을 그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다. 젊은 선생님들은 이곳이 베트남인 것을 감안해서 오히려 가격을 더 올려 받는다. 기존에 계시던 과외 선생님들과 차이가 있다면 우선 젊고 최근에 한국에서 왔다는 점이다.
기존에 계시던 몇몇 유명하신 공부방 선생님들 중 학생을 가려서 받는 분들도 계셨다. 그들은 치사하게 아이 학업 시간표를 이용하여 이 학생은 되고 저 학생은 안 되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려서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갑자기 증가한 과외수업과 공부방은 과외 수업을 받기 힘들어 맘고생이 심했던 학부모들에게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또 굳이 얼굴 붉히며 몇 안 되는 기존 오래된 교육 방식을 고집하는 선생님께 사정사정하며 아이를 맡길 필요가 없어졌다.
학부모들은 검증되지 않았으나 스카이 대학을 나왔다는 점, 비록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우선 믿고 시작을 한다. 경험상 반 반이었다. 어떤 선생님은 높은 가격만큼 아주 만족스러웠고 어떤 선생님은 당황스러운 나머지 환불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환불을 요구한 수업은 미술수업이다. 2번의 수업 이후 더 이상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미술수업을 무척 원했다. 미술 학원까지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고 운동과 악기 수업 시간 때문에 단체 미술 수업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 교육 방에서 영국 무슨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고 하길래 방문 미술 수업을 시도해 보았다. 가격 역시 후들 그렸다. 첫 시간 우선 원하는 방향을 말씀드렸고 도형을 통해 빛과 그림자 원리를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입체 도형을 통해 사물의 보는 관점을 아이가 알고 싶어 했다. 높은 빌딩과 차를 그리고 싶어 했다. 그런데 이 선생님 초등 고학년 아이에게 캔버스에 손바닥으로 물감 찍기 수업을 하고 가셨다. 너무 놀라 무슨 수업인지 물어보았더니 ‘사람 인체 연구 수업’이라고 말씀하셨다. 다행히 미술전공은 아니지만 취미가 미술인지라 선생님께 환불을 요구하고 두 번의 개인 미술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이렇듯 현재 호치민에는 사교육을 원하는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다. 부모들은 많은 혼란과 혼돈 속에 우선 급하니 '괜찮더라'는 선생님을 찾게 되면 믿고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학부모들 입소문에 유명세를 얻은 선생님은 학생수를 줄이고 가격을 올려 받거나, 개인수업 (일대일) 가격을 그룹 가격에 적용시켜 갑자기 수업 비용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에 이제 막 한국에서 입성한 분들의 입장은 다르다. 이미 한국에서 그 정도 돈을 사교육에 투자했기 때문에 크게 부담스럽거나 비싸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처럼 오랫동안 거주한 분들에게 최근 갑자기 높아진 사교육비가 피부로 직접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고 이곳 물가에 비해 턱없이 높은 가격을 보고 있자면 입이 떡 하니 벌어진다. 무조건 현금 이어야 하고 베트남 당국에서는 전혀 알리도 없다.
가끔 인터넷 상에 호치민 방 렌트비가 300불에서 400불 사이라는 글을 보고는 놀라곤 한다. 그런 방이 있기는 하지만 경비와 보안이 허술하고 말 그대로 원룸 보다도 작은 사이즈에 시설이 낙후되어 대부분 500불에서 700불 사이 집으로 옮겨 간다. 그러니 과외 가격이 더 올라갈 수밖에 없고 공부 방을 운영하고자 하는 친구들의 경우는 최소 방 2개짜리 집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에 렌트비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또 집 방문 과외 선생님의 경우 호치민의 대중교통이 Grab 오토바이 혹은 택시라서 교통비 역시 과외 수업 가격을 올리는데 한몫한다.
사교육이 번창하고 모든 아이들이 공부의 경쟁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정말 그 선생님 말대로 '난 지금 너무 늦은 것일까?' 최근에 찾은 수학 선생님의 가격도 그룹 과외인데 한 번에 45불 정도의 가격이다. 순간 차라리 한국에 계신 시어른들께 용돈을 더 보내 드리는 게 낮겠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나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난 하기 싫은 공부를 꽤 오래 한 편이다. 적성에 맞지도 않는 영어를 참 오랫동안 공부했다. 나이 마흔이 넘은 중년이 되어서 이제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가끔은 왜 진작에 '인문학'을 좀 더 공부하지 못했을까 하는 쓸데없는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젊은 시절, 사실 나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바빴고 시간에 항상 쫓겼다. 그래서인지 아이에게 크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예체능은 많이 시키는 편이다. 아이는 의외로 나와 달리 공부(지식)에 대한 욕심이 있다. 욕심만 있고 또 노력은 하지 않는다.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그래서 아직 난 함께 동거 중인 그 작은 아이를 잘 모른다.)
지식 위주 공부 보단 인성과 마음을 중시했고, 비록 어린 나이라도 '주어진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원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발아하기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아이보다 앞서 나가 아이 삶의 주인 자리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 나 또한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해 하루를 허우적거리며 시작할 때가 많기 때문에 감히 아이의 삶을 휘젓고 싶지 않았다. 타고난 온전함을 믿으려 했다. 나의 욕심과 아집 때문에 아이를 자주 괴롭혔지만, 곧 돌아서서 반성을 하고, 서툴지만 나의 삶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와 나의 삶을 분리시키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그 젊은 수학 선생님과 상담 후, '조금 남들보다 느리게' 가고 싶고, '그래도 괜찮다'는 기존 나의 가치관이 지나치게 '시대에 뒤떨어졌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믿고 있던 신념이 흔들릴 뻔도 했다. 또 지나치게 나만의 생각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곧 잘, 난 나의 생각에 파 묻히고 갇히는 편이라 가끔은 생각을 멈추어야 할 때도 많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싶어 노트에 메모되어 있는 구절을 옮겨 적어 보았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마치 농부가 씨앗 한 톨을 땅에 심고 키우는 것과 같다. 씨앗을 어떤 땅에 심어 어떻게 거름을 주느냐에 따라 다 자란 나무의 모양새가 달라진다. 바꿔 말하면 돌보는 이의 손길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판가름 나는 어린 묘목인 시기가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엄마의 손길에 따라 성장 후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는 말랑말랑한 시기가 있으니 아마도 태어난 후부터 열 살 전후까지가 아닐까 싶다.'
"동의보감은 오히려 골격이 튼튼하면서 배움이 느린 아이가 롱런할 수 있다고 했다. 요즘의 조기 교육은 어찌 보면 돈 들이고 시간 들이고 노력 들여서 ‘알고 깨닫는 것이 빠르고 민첩하여 요절하는 아이’로 만드는 교육이 아닌지 모르겠다. "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 중에서-
난 나의 삶을 오늘도 살아간다.
나의 삶에 충실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