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기

조죠의 일기

by 조죠의 그림일기

지금 이렇게 자질구레한 글을 써서 올리고 있지만, 어릴 때는 일기 쓰는 것이 정말 싫었다. 몇몇 내 관심을 끄는 것을 제외한 모든 일에 대충대충 임하던 아무튼 굉장히 불성실한 학생이었는데, 어떻게 무사히 필수 교육과정을 마쳤는지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다. 숙제는 차라리 손바닥 몇 대 맞는 쪽을 택했고, 재미없는 수업 시간엔 자거나 만화책을 읽었다. 그나마 좋아하는 선생님의 수업 땐 초롱초롱 눈을 부릅뜨고 집중했지만,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선생님이 주인공인 팬픽을 친구들과 돌려썼다(고등학교 때 일이다. 그땐 이런 게 유행이었다고 변명해본다. 정말 부끄럽다). 그런 내게 매일 꼬박꼬박 써서 선생님께 제출하는 일기가 얼마나 끔찍했을까. 그나마 초등학교 시절에는 순진한 시골 아이였기 때문에 뭐라도 하는 척은 했던 것 같다. 방학 일기 같은 건 그야말로 개학 전 하루 이틀 밤을 꼬박 새워서 겨우 해갖고 갔는데, 그럴 때는 종이 한 장을 낙서 같은 걸로 채워버리거나 글자를 가로로 죽죽 늘여 쓰는 잔재주를 부렸다. 정말 심한 날에는 서너 자 만으로 한 줄을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단지 줄바꿈을 실컷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엉망진창의 시를 써놓고, 일기 쓰기가 얼마나 싫은지에 대해 종이 한 장을 꽉 채워 써가는 등, 정말이지 성의가 없었다. 그런 일기를 검사하고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줘야 했던 담임선생님은 기분이 어땠을까. 나를 가르쳤던 담임선생님들 모두 행복한 노후(..) 생활을 보내고 계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 나와 달리 평생 모범생에 글쓰기를 좋아했던 언니는 학교 숙제면 숙제, 일기면 일기, 모두 정말 열심히 해갔다. 심지어 아직도 그 일기장의 일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짐 정리를 하다가 몇 번 내게 읽어준 적이 있었는데 어린아이의 따분한 일상의 기록이 아닌 정말 생생하고 재미있는 일기였다. 또박또박한 글씨로 어찌나 재미있게 적어놓았는지 몇몇 부분은 (특히 동생 욕이 적혀있는 날이라던가) 정말 배꼽이 빠질 만큼 웃겼다. 하루 한 장의 페이지가 모자라서 다음 장까지 넘겨쓰는 날도 많았다. "종이가 모자라다니!!" 나로서는 도무지 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일기장 아래엔 빨간 볼펜으로 그날그날 언니의 담임선생님이 남긴 감상이 적혀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언니 일기의 열정적인 독자였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언니는 당연하게도 글을 아주 잘 쓰는 어른이 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다시 자발적으로 뭔가를 쓰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그래봤자 블로그나 싸이월드 같은 곳에 굉장히 부끄러워 절대 공개할 수 없는 글들을 이모티콘과 비속어를 잔뜩 넣어 써 놓은 것이라, 꽤 많은 양임에도 절대 그것을 일기로 인정할 수 없다.


예전 일기를 다시 읽는것은 상당히 괴롭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기억력 감퇴라는 조금 짠한 이유로 노트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중요한 일들을 대부분 수기 메모에 의지했고, 그 노트에 매일은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일기를 썼다. 내가 쓴 일기를 돌아보면 크게 세 가지 정도로 구분이 된다. 그날 있었던 일을 단순히 나열해 둔 기록지 같은 것, 부정적인 감정을 말 그대로 토해 놓은 것, 그리고 마음에 큰 울림이 있어 오래 남겨두기위해 적은 것. 이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타입의 일기는 따로 보관하고 있지 않다. 권수로 따지자면 책장 한 칸 정도는 채울 수 있겠지만 별로 다시 들여다볼 의미가 없어서 주기적으로 정리해서 찢어 버렸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땐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 그림일기를 썼다. '어쨌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까'하며 일기도 만화로(아주 짧은 형태)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주위에서 꽤 좋아해 줘서 처음엔 신나게 연재했지만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주위 시선을 의식하게 되니 일상을 필터링했다. 자극적인 이야기는 빼 버리고 그림에 힘을 줬다. 나를 위해 시작했던 일기는 순식간에 그 재미를 잃어 그만 100개의 그림일기로 끝나버렸다.


이제는 정말 순수하게 일기 쓰는 것을 즐긴다. 부정적인 생각은 벌겋게 꼬인 채로 종이에 흘려보내고, 좋은 것은 그 냄새까지 모조리 적어둔다. '그림은 내 것, 글은 언니 꺼'라는 묘한 생각에서도 조금 벗어났다. 어차피 일기는 내가 좋아서 쓰는 거니까. 조용한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더없이 즐겁다. 종이 일기장은 연필이 사각거리며 빠르게 줄어드는 모습이 좋고, 컴퓨터로 쓰는 일기는 아무리 많이 써도 손이 아프지 않아서 좋다. 자리차지도 하지 않는다.


본격적인 글쓰기 연습 겸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기를 써봐야지 하고 블로그와 브런치를 기웃거리던 참이었다. 사소한 계기로 온라인에 일상 에세이를 연재하기로 했다. 그 덕에 살짝 들뜬 마음으로 매일 밤 컴퓨터 앞에 앉는다. 쓰다 만 2021년 다이어리가 멀뚱히 책상에 놓여있지만, 도저히 온라인에 못 쓸 깊숙한 얘기들은 다시 저 노트에 쓰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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