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없는 것들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by DEARLUCY

어떤 사람이 좋냐고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의 대답은 “착한 사람”.

‘착한 사람’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또한 조금씩 바뀌는 나만의 정의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예의’는 꼭 포함되어 있다.


유난히 예의와 인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빠는 그러하기 때문에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게 불만이 많다. 아빠의 기준이 워낙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했고, 직접 말씀하시지 않는 아빠는 사람들과의 거리가 좁혀지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직접 말해봤자 싸움이 될 것이 뻔하긴 하지만.

이사를 간 이웃집 어르신은 우리를 보자마자 화를 내고, 반말을 하며 마주쳐도 인사를 하지 않았지만, 아빠의 꾸준한 인사에 그는 결국 마음을 열었고, 우리가 다시 이사 갈 때쯤엔 좋은 이웃이 떠난다며 가장 아쉬워하셨다.

예의를 중시하는 아빠는-

어른을 공경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마주치는 사람에게 인사를 꼬박꼬박 하시고 나름의 아빠의 기준대로 살아오셨고, 지금도 그러하시다.

살아보니 아빠와 같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는 조금 외로워 보인다. 아빠의 시선에서는 가족들 또한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해 마음에 들지 않고 아쉬운 부분들이 있겠지만, 말해봐야.

아빠의 기대와 다르게 나는 타인을 대할 때 항상 예의 바르게 하는 게 참 힘들다. 다른 사람의 무례함 앞에서 아빠처럼 웃으며 인사할 수 없고, 나이 좀 먹었다고 반말을 하거나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사람을 공경하고 배려할 수 없다.



화장실에서 물이 샌다며 아랫집에서 올라왔다. 처음 겪는 일이라 연신 죄송하다고 하며, 집주인과 연락하여 빠른 조치를 부탁드리고 업체 분들과 조심스레 그 집에도 가 보았다. 우리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우리보다 더 불편할 것을 알기에 평소 쓰지 않는 작은 화장실을 쓰며, 3일 간 공사가 지속되는 동안 미안하다며 커피를 가져다 드리기도 했다.

같이 살지는 않지만 한 건물을 공유하고 있는 아파트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함께 살기 위해 조금 불편하고, 아쉬운 점이 있어도 서로 이야기하고 웃으며 인사하는 게 난 당연하다 생각했다.

내가 어릴 적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말도 툭툭 내뱉는 아래층 아주머니에게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해 예의 바르게 행동했고, 말도 참 조심스럽게 했다.

공사가 진행되던 날, 봄이는 할머니 집에 맡기고 남편은 없는 저녁 10시경, 작은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는데, 벨이 울렸다. 문을 여니 다짜고짜 나에게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화를 내는데,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작은 화장실에서 물이 쏟아지는데, 전화는 받지 않고, 본인의 집은 물난리가 났다, 지금 당신이 전화를 받지 않아 본인 집에서는 부부싸움이 났다는 내용이었다.

작은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공사 중인 거실 화장실을 피해 그곳을 이용한 것뿐인데, 난데없는 다른 집 부부싸움 이야기까지 듣게 되니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상황 설명을 하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때문에 우리가 얼굴을 붉히며 싸울 일은 아니지 않냐, 불편하신 것 알겠지만 우리도 최대한 조심하고 있다, 그렇지만 부부싸움까지 나에게 와서 이야기할 건 아니지 않냐. 조곤조곤 말을 한다고 했지만 나 또한 그 상황에서 흥분까지 가라앉힐 수는 없어 불편하게 자리가 끝났다. 알고 보니 공사 업체에서 무언가 실수를 한 것이 작은 방 화장실까지 문제가 생긴 거였다.


그리고 일 년 후,

저녁 10시. 잠들기 힘들어하는 봄이가 겨우 잠들 무렵, 또 한차례 조심성 없는 벨이 울렸다. 하필 남편이 또 없던 저녁. 현관 수화기를 들어보니 아래층 아주머니였다. 문을 열자,

“물이 또 새는데.”

늦은 시간에 미안한데, 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적어도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고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도 급할 거 없지 않나.

일 년 전처럼 친절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과 다르다며 난 고상하게 화가 난다고 화를 모두 표현하지 않는다고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도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고 나도 성질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나도 인사를 건너뛰고 짧은 대답으로 대처하고 인사 없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며 칠이 지나고 한동안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는데,

난 조금 후회가 되는 것 같다.

그 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할걸, 보다는 같은 사람이 되지 말걸-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태도에 따라 내 태도가 달라진다면 그건 진짜 내가 아니란 걸 안다.

아빠가 그러한 것처럼, 아무리 상대의 행동이 언짢아도 내 태도를 지키면, 세상이 언젠가 알아줄 거라 믿었는데,

순간순간 훅 들어오는 예기치 않은 무례함에 나는 어느샌가 나와 상관없는 그 사람이 되고야 만다.


아빠가 외로워 보였던 어렸을 적의 나는 아빠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 누가 나를 무시하면 나도 무시하고, 누가 인사를 하지 않으면 나도 안 하면 되지. 그게 더 마음이 편할 거라고.

그런데 지금의 나는, 기준을 잡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자신의 기준대로 사람을 대하고 살아가는 아빠를 좀 많이,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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