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감사 일기 - 별
하늘을 올려다본다. 까맣다. 저 멀리 달 하나가 영롱하게 빛을 뿜지만 그다지 눈이 부시진 않다. 광활한 하늘에 홀로 찍힌 점 하나라 오히려 외로워 보인다. 우주엔 분명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서울의 밤하늘은 적막하다. 고요하다. 무(無)다. 하늘에 있어야 할 별빛들이 땅으로 쏟아져 내려온 탓일까.
서울에서 별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밤이 너무 밝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려한 네온사인부터 쓸쓸한 가로등 불까지. 하늘에 맺혀 있어야 할 불빛들이 땅 위에 즐비하다. 덕분에 화려해야 할 밤하늘은 오히려 외롭다. 우주를 떠도는 신비로운 빛들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인공적인 빛들에 의해 그 존재가 흐릿해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주관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자기에게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자극으로 그렇지 않은 것들을 지워버리고 만다. 마치, 자신에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일상적이고 꾸준하지만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소홀히 여겨 버리듯이. 당장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작은 무언가 때문에 한결같이 내 편이 되어주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듯이. 말없이 등 뒤를 지켜주고 힘이 되어주던 존재를 쉬이 잊어버리고 내 힘으로만 해낸 것처럼 자만하듯이.
화려한 불빛들로 가득 찬 서울의 밤에도 별빛은 내린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할 뿐. 어쩌면, 삶이 더 화려하고 멋질수록, 흔히 쓰는 표현으로 '잘 나갈수록', 은은하고 한결같은 별빛의 아름다움은 멀어진다. 인생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험을 살면서 너무 많이 해왔다. 삶이 조급해질 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극에 달할 때,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될 때, 희미하게라도 아른거리던 별빛은 내 삶에서 자취를 감춘다. 아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인지되지 못한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어둠과 다시 마주하게 되기 전까지 그 빛은 기억 저 편으로 잊혀진다.
변함없이 찬란하고 바쁘게 돌아갈 것만 같던 네온사인도 언젠가는 그 빛을 잃는다. 우리의 삶에서도, 혼을 쏙 빼놓을 만큼 번쩍번쩍하던 빛이 꼭 영원한 것은 아니다. 결국엔 그 빛이 꺼질 때가 오고, 어둠은 찾아온다. 어둠은 사람을 작아지게 만든다. 어둠은 무릎을 꿇게 만들고 시선을 땅으로 떨구게 한다. 어둠은 두려움을 유발하며, 공교롭게도 필연적이다.
감사한 것은, 삶이 어두운 시절을 지날 때에도 항상 그래 왔듯 별빛은 내린다는 사실이다. 별빛은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덮인 서울의 밤에도, 강원도 산골짜기 첩첩산중의 고요한 밤에도 동일하게 내리니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별빛. 그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실제로 삶을 환하게 밝혀줄 만큼의 충분한 밝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물의 형상을 얼핏이라도 분간하게 해주는 별빛의 광도는 어둠을 마주한 사람에게 희망이다.
별빛은 든든하다. 땅으로 처박은 시선을 하늘로 들어 올리게 만든다. 별빛은 꿈이다. 별빛은 태양만큼 어둠을 근본적으로 물리쳐주진 못하지만 새롭게 등불을 지필 여지를 준다. 별빛은 한결같다. 꾸준하고 은은하다. 심지어 그 존재를 잊고 살아가는 순간에도. 힘들고 초라한 순간에서야 진짜 그 가치를 드러내는 별빛은 진정으로 마음이 넓고 이타적이다.
부모님의 한결같은 사랑,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연인,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오랜 친구들, 그 외에도 말없이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던 내 주변 수많은 별빛들. 그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유독 생각나는 밤이다. 바쁘고 치열하게 사느라 잊고 살아온 별빛의 온도가 다시금 그리워지는 걸 보니 어쩌면 내 삶에 다시 한번 어둠이 찾아오고 있는 것일 수 있겠다. 솔직히 말해서 답답하고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해 한결같이 은은하게 내리고 있던 별빛 같은 존재들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으니 감사하려 한다.
피할 수 없는 어둠에도 감사의 이유가 존재한다는 그 사실 자체에도 감사하다. 나에게 찾아오는 어둠이 왠지 깊은 슬럼프가 되진 않을 거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져보며 오늘의 감사 일기를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