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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오늘 하루 감사 일기 - 충돌

by Jay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꾹 참는다. 나 한 사람만 침묵하면 모두에게 득이 되니까. 그러면서도 속은 썩어 문드러져 결국엔 상처가 남는다. 겉으론 인류애적 사랑을 실천하는 박애주의자지만 실상은 이기적인 사람이다.


불필요한 충돌을 피한다는 명목 하에 속으로 삭히고, 이를 통해 모든 상황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해도 된다는 권리를 얻는다. 그것이 실제로 누군가를 미워해도 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 통로로 여기며 살아왔다.


나는 충돌이 싫다. 이는 이기적인 존재인 내가 나의 욕망을 실현해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누군가와의 갈등 가운데 나를 겨냥해 쏘아대는 타인의 말과 시선이 싫기에 침묵을 선호한다. 항상 좋은 사람, 반듯한 청년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렇게, 나는 내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는 일에 익숙해졌고, 덕분에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사람으로 잘 포장돼왔다.


하지만 점차 한계를 느낀다. 나는 절대로 내 감정에 상관없이 모든 일에 이타적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 나에게도 취향이 있고, 좋고 싫음이 있고, 나의 뜻대로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긴 시간 외면하며 살아온 턱에 이 사실이 낯설긴 하지만, 나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진실되지 못한 겉치레로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결국엔 그 끝에서 수많은 관계의 틀어짐과 마주해왔다. 처음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내 감정을 숨기고, 내 욕구를 참아가며 타인에게 맞춰주려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이 모든 일의 책임이 타인에게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충돌했으면 좀 더 쉽게 풀어갔을 수 있던 문제들을 나의 솔직하지 못한 위선 때문에 망쳐버린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이타적이고 싶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탓하고, 스스로는 고상한 척만 하고 있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은 내가 아니라 너에게 있어!'라고 책임전가 해버리기 일쑤였다. 왜냐면 난 이미 충분히 그들에게 져주고 맞춰주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실상은 상대방의 감정에 조금도 발 걸치고 싶지 않아 모든 선택을 타인에게 미뤄버리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재밌는 사실은, 이런 이중적 자아에 의해 가장 상처 받고 힘들어하던 사람이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의 강박적 충돌 회피 성향의 근간을 파헤쳐보면 그곳엔 '낮은 자존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니 모든 상황과 감정에서의 희생양을 나로 삼은 것이다.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서, 정작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껴줘야 하는 내 내면의 자아에게는 수시로 상처 입혔다. 나는 그게 싫은데... 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이런 내 솔직한 생각과 감정은 항상 타인의 시선, 평가와 감정 앞에서 뒷전이 됐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내 내면의 울림보다 앞서 있었으니, 이 얼마나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미련한 짓이었는가.


요새 나는 내 기분과 감정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필요성을 점점 더 느끼고 있다. 이해, 배려, 그리고 솔직한 감정과 이기심, 그 중간 어딘가의 미묘한 텐션에 삶의 행복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많이 서툴다. 날 선 감정으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때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한마디 말에 흔들려 솔직해지길 포기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파르르 떨리는 중량 저울의 바늘이 그 진폭을 줄여가며 결국엔 한 지점을 지시해가는 과정으로 여기고 싶다. 결국엔 내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내가 그 삶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는 존재인지, 아니면 내 삶에 불필요한 쭉정이들을 한 움큼씩 덜어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충돌은 바늘의 떨림을 만들어 내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좋고 싫음의 차이를 부인하고 충돌을 피하는 삶은 정답이 아니다. 부딪히고, 때론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하고, 그렇게 불필요한 관계들이 정리돼간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고 발견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초등학교 바른생활 책에 나오는 '배려하고 양보하는 삶'에 대해 이제는 재해석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더 이상 내가 나 자신이길 포기하며 다른 사람의 기분과 감정에 내 삶의 온도를 맞추려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꼭 그럴 것이고, 그러기 위해 때론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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