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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지구에서 살아간다

나이가 먹어도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by Jay

어떤 이에게는 가뿐히 웃어넘길만한 작은 사건에도 누군가는 등이 굽는다. 사람마다 삶에 가해지는 중력의 크기가 서로 다르기에 느껴지는 무게 또한 상이한 것이다. '그건 별로 큰 문제 아닌 거 같은데? 왜 그렇게 걱정해? 이렇게 해봐 그럼 쉽게 문제가 해결될걸?' 이런 위로들(물론 진정한 의미에서의 위로는 아니지만)을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내 삶에 가해지는 중력장은 너와 달리 특별하게 예민하고 강력해서 그 무게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단다 둔팅아!' 물론, 속으로만 외친다. 구구절절 설명하려 하면 할수록 스스로가 나약한 사람이라고 증명하는 꼴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지구에서 살아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가 마주한 시간과 공간의 차원 속에서 이 세상을 소화하고 반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와 100% 같은 규칙과 질서를 갖는 누군가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그건 이렇게 하면 돼!'라는 영양가 없는 한 마디가 누군가의 지구를 뒤흔드는 불편한 외계의 침공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발 알아주길 바란다.


나조차도 그런 실수를 할 때가 많다. 대입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는 친구에게 '성공적인 재수생활을 위한 7가지 생활지침'을 일장연설 늘어놓는다. 정작 내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키지 못할 규칙들이기에 사실은 허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간 과거에 내가 직접 부딪히고 실패하며 겪은 경험을 미화하고 자랑한다. 이제 막 그 길에 들어서 두려워 떨고 있을 그 친구에게 나는 지겹게 정답만 말하는 꼰대다.


군입대를 앞둔 후배에게도 마찬가지다. 먼저는 '요즘 군대 많이 편해졌어'라는 의미 없는 위로를 던진다. 그러고는 잔뜩 겁먹어있을 그 친구의 지구 위로 내 군생활 무용담을 거침없이 쏟아놓는다. 마지막으로 '다 사람 사는 곳이니 많이 배우고 와'라는 한 마디로 화룡점정 마무리. 그렇게 나는 한 사람의 지구에 무자비한 폭격을 가해버린 꼰대 아저씨가 돼버린다.


취업준비로 힘들어하던 올해 초, 내 지구를 침범하여 감 놔라 배 놔라 하던 수많은 외계인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취업에 성공한 지 두 달이 된 지금, 나는 취준을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그들의 미래를 위해 적극적으로 팔 걷고 나서서 도와주라 하면 귀찮아할 거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어떤 성과를 만들어냈는지는 말해주고 싶다. 그들을 위한 가슴 따뜻한 한 마디를 해주고 싶은 게 아니라 내 생각과 경험이 인정받고 존경 어린 시선을 보내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지구에서 살아간다. 삶을 지탱하는 공간도, 시간도, 상황과 감정도 다르다. 그렇기에 함부로 말하면 안 되고 판단하기를 지양해야 한다. 나한텐 너무 가벼워 보이는 문제도 다른 누군가에겐 무릎을 꿇게 만드는 무게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들어주는 것이다. 그들의 진심 어린 감정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 삶의 무게를 함께 들어주는 것일 수 있음을 기억하자. 입을 닫고 귀를 열자. 거기에 지갑도 같이 연다면 금상첨화. 다른 사람의 고민일수록 쉽게 생각하지 말고 가볍게 말하지 말자. 그것이 나이가 먹어도 꼰대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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