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감사 일기 - 낯섦
여느 평범한 날과 다르지 않게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휴대폰 대리점에 볼 일이 있어 잠시 들렀다가 밖으로 나와서는 평소에 잘 다니지 않던 길을 선택해 집으로 향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그리고 그 선택 덕분에 평상시에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동네 골목 구석구석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풍경이 그려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처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을 때의 일이다. 학교만 끝나면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동네 골목 사이사이를 누볐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페달을 밟았다. "야! 이번엔 저 쪽으로 가보자!" 대장질 하던 한 놈의 진두지휘 아래 우리는 숨 가쁘게 동네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때는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기만 했다.
새로운 길을 탐험할 때마다 두근대던 심장. 그저 새로운 길에 발을 내딛는 것이 좋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에 설렜다. 그때의 기분과 감정이 어렴풋이 기억은 나지만 완전히 동일해질 수 없는 이유는,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잃을 것이 많아졌고 용기는 줄어들었기 때문 아닐까.
학창 시절을 지나 대학에 가니 삶의 반경이 넓어졌다. 군대를 가니 더 큰 세상이 눈 앞에 펼쳐졌고, 그렇게 점차 시야가 확장돼가고 있다. 직장에 와보니 또다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결혼, 육아, 인생의 중요한 시점을 거쳐갈 때마다 새로운 시야가 트이게 될 것이라는 게 경험적으로 점점 분명해진다.
15년 전의 나였다면 이러한 새로움들에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차 환호를 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러지 못하다. 새로운 무엇인가와 마주하는 게 두렵고, 때로는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 피로감에 모든 것이 귀찮다.
아직은 앞날이 창창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청춘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에 대한 염증은 벌써부터 내 삶 깊숙이에 자리 잡았다. 이것 또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겸허하게 받아들여 왔지만, 요즘 들어 문득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기존에 만나던 사람만 반복해서 만난다. 굳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나를 소개하고, 포장하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계산하고, 이런 류의 감정노동을 굳이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점점 인간관계는 좁아지고 있지만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새로운 식당에 도전하기보다는 맛과 서비스가 보장된 몇몇 식당에만 반복적으로 향한다. 심지어 그 식당에 가서 먹는 메뉴 또한 정해져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마주하게 되는 감정의 요동침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삶의 규칙이라 명명하며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늘 같은 교통수단, 같은 길을 반복한다. 지하철에서 타는 칸도 늘 일정하다. 매일을 같은 시간에 같은 열차의 같은 칸에 타고 같은 길로 같은 회사에 가다 보니 이제는 그 공간에 낯익은 얼굴을 가진 타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정도다. 왠지 그분들도 나를 인지하고 있는 것만 같아 눈이라도 마주치는 날엔 목례를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한다.
매일이 새로운 하루인데 전혀 새롭지 않은 일상적인 것들로만 24시간을 가득 채워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새삼스레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내 머리는 벌써 7년째 투블럭이다.(군대에 있던 기간은 제외하겠다.) 얼른 이 헤어스타일부터 바꿔버려야겠다 생각했지만 아직은 내 용기가 부족한 거 같다. 대신에, 나의 삶의 가장 작은 부분에서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아보았고, 그것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여느 휴일과 같이 오전에 헬스장에 찾아가 운동을 했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습관은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오른쪽으로 인도했지만 나는 의지적으로 새로움을 택했다. 초등학생인 내가 신나서 찾아다니던 미지의 골목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렇게, 10분이면 집에 도착했을 거리를 1시간이 넘게 헤매며 탐험을 감행했다.
매일을 익숙함의 편에 선 턱에 잊혀져갔던 골목 사이사이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있었다. 낡고 허름해 발길이 뜸해졌을 거라 생각했던 시장 골목은 아직도 활기가 넘쳤다. 설날에 받은 용돈으로 미니카를 샀던 '풍성 문구'는 자취를 감췄고, 피카츄 돈가스를 사 먹던 분식집도 사라졌다. 대신에, 그 자리에 낯설기만 한 신축 건물 몇 개가 위치하고 있었다. 과거의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며,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에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짐을 느꼈다.
시간은 절대 내 삶의 반경 안에서만 흘러가고 있지 않았다. 내가 잊고 살았던, 소홀히 여겼던 주변 모든 것이 막을 수 없는 시간의 물살에 휩쓸려 현재까지 함께 흘러왔다. 그걸 지금까지는 모르고 살아왔다. 아니, 외면하고 살아왔다 하는 것이 맞겠다. 당장 내 앞에 펼쳐진 삶의 문제들만을 바라보기에도 벅찼으니까.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주변의 것들에 눈을 돌리니 너무 새로웠고, 그리고 그 새로움이 쌓이면서 설렘이라는 감정이 증폭됐다. 삶에 새로운 활력을 더하는 촉매가 돼준 것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오른쪽 길을 택하든, 왼쪽 길을 택하든 그것은 나의 자유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결과에 있어서 책임 또한 나에게 있다. 자유와 그에 따르는 책임, 너무나도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삶의 알고리즘 아닌가.
그리고 나는 그 삶의 굴레 안에서 책임이 두려웠고, 자연스럽게 새로움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슴속 깊숙이 묻어두게 됐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수반하니까. 새로움이 가져올 리스크를 감당해야 할 미래의 나에게 미안해서. 지겨운 일상의 반복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용기가 줄고 겁이 늘어난 결과 설렘, 기대, 흥분, 감동 등과 같은 긍정적 감정이 소실됐다. 새로움이 선사하는 산뜻한 기분이 삶에 충전되지 못하게 됐다는 뜻이다. 나에겐 새로움으로의 혁명이 필요했고, 이는 나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요구될 것이라 생각한다.
내일은 출근하는 길을 바꿔볼 예정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도 있고, 좀 번거로울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뜻하지 않던 행운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된다. 그다음 날엔 늘 듣던 MP3 플레이 리스트를 바꿔볼 예정이다. 그다음 날엔 핸드폰 글씨체를 바꿔볼 거고, 그다음 날엔 연락이 끊긴 과거의 어떤 관계에게 카톡을 보내보려 한다.
삶에 새로운 것들을 지속적으로 환기해 갈 예정이다. 이러한 시도는 투블럭을 내려놓고 새롭게 아주 짧은 헤어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내 삶에 그런 용기가 피어오를 때까지 반복하려 한다. 오늘 하루가 이전엔 없던 새로운 하루임에 감사하고, 그에 걸맞은 새로운 것들이 나의 삶에 풍성하게 피어날 것임에 감사하다. 앞으로 평생을 새로운 하루, 새로운 일상에 감사하기를 다짐하며 오늘 하루 감사일기 여기서 마무리 지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