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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지루하며 고통스럽지만 반복해야 하는 이유

2018년을 되돌아보며, 2019년을 꿈꾸며

by Jay

2018년 1월, 내 삶의 목표는 '토익 탈출'이었다. 하루에 기출문제를 두 세트씩 꼬박꼬박 풀고 정리했다. 내 안에는 어서 빨리 이 지겨운 루틴이 끝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두 달을 공들인 끝에 겨우 목표한 점수를 만들 수 있었다.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짜릿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쾌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에겐 스스로를 간절해지게 만드는 다음 목표가 필요했다.


다음 목표를 '한국사 고급'으로 잡았다. 3주간 한국사 인강 80개를 들었다. 시작은 열정적이었지만 금세 시들해졌다. 시험공부에 투자한 시간에 비례하여 인강의 배속도 높아졌다. 50분짜리 강의를 2배속으로 25분에 들으면서, 이 지겨운 강의를 몇 개나 더 들어야 하는지 매 번 확인했다. 지겨운 일상의 반복이었다. 결과는 감사하게도 한 번에 합격. 또 하나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에 기뻤다. 하지만 이 또한 잠시뿐. 나에겐 또다시 다음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 필요했다.

꿈을 꾼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 멋진 일은 반드시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루틴(꿈으로 향하는 과정 중 목표를 찾고, 노력하고, 달성하고, 또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뎌낸 사람에게만 현실이 된다.




졸업을 앞두고 두 달 여의 시간 동안 3일에 하나 꼴로 자소서를 썼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통해 나라는 사람이 회사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했다. 매일같이 나의 인생을 되돌아봤고, 스스로가 사회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고찰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 자기비판적 질문과 마주하게 됐다. '난 도대체 뭐 하면서 산 거지?'


자소서의 문항들을 채우기엔 내가 해온 경험들이 턱없이 초라했다. 나름 인생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공부도 열심히 했고, 삶의 매 순간에 무엇인가를 목표했고, 그걸 이루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노력했는데... 그렇게 열심과 노력으로 삶을 채워왔기 때문에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거라며 스스로를 위안했었다. 하지만, 정작 나의 꿈을 본격적으로 펼치기도 전에 사회라는 큰 존재는 내 앞을 가로막았다. 온실 속에서 안전하게만 자라오던 나에게 세상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열심히만 해선 안돼! 잘해야 돼!'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꿈을 이루려면 잘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잘. 꿈을 이루기 위해선 탁월한 사람이 돼야 한다. 그런데 그 탁월함을 갖추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다. 그렇기에 세상은 잔인하고 인생은 드라마틱한 것이다.




슬슬 취준이 지겨워지던 즈음에 하늘에서 동아줄이 하나 내려왔다. 운 좋게 굴러 들어온 계약직 일자리 하나. 교통비, 전화요금, 점심 밥값을 빼고 나면 남는 것도 별로 없는,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는 열정 페이 월급이었지만 나는 그 동아줄을 붙잡았다. 아득하긴 했지만, 바보같이 성실하게 일하다 보면 결국엔 뭐라도 돼있지 않을까? 라며 다시 한번 다음 목표를 설정했다.


정규직 전환. 아마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또한 안정된 삶을 꿈꿨고, 보다 좋은 조건을 원했다. 하지만 열정이 지나치게 앞섰기에 다시 한번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열심히만 해선 안돼! 잘해야 돼!'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부족한 점들은 매일같이 드러났다.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 속에서 나는 아직도 한참 멀은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걸. 그리고 탁월한 역량을 갖춘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선 길고 지루한 시간의 반복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서게 됐을 뿐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내가 마주해야 하는 길고 지루한 시간의 반복은 숙명이다. 성공의 열매는 언제나 달콤하지만, 그 열매를 얻기 위한 과정이 낭만적이기만 하진 않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자신의 현 수준과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갖춰야 하는 역량 사이의 간격을 매우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도 죽을힘을 다하는 노력으로 가득 채운 시간들. 너무나도 지겹고 고통스러워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솓아오르길 몇 번씩 반복해야지만 그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그 시간을 단축시키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 뿐이다. 목표를 낮추거나, 노력을 늘리거나. 목표를 낮춘다면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요구되는 탁월함을 갖추는 시간이 단축될 것이다. 하지만 가슴 한켠엔 '못 다 이룬 꿈'이라는 미련을 평생 묻어둔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노력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노력을 늘리려고 하는 만큼 내가 원하는 다른 무엇인가를 포기해야만 한다. 선택은 100% 개인의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수반되는 삶의 방식을 책임져야 하는 주체도 100% 자기 자신이다.


2018년 연말, 나는 두 가지 삶의 방식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꿈을 가슴 한켠에 묻어둔 채 평범함을 목표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탁월한 사람이 되기를 목표로 하여 지금보다 조금 더 치열하게 살아볼 것인가? 전자의 인생을 사는 것 또한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며,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후자를 택하고 싶다. 더 치열하게 꿈꾸고 목표를 세우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반복하고 싶다.


2019년 한 해는 지겨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꿈을 꾸기로 작정했으니, 그에 요구되는 노력의 리스트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꿈을 낮추지 않는 것. 지겹고 고통스럽지만 매일같이 반복해야 하는 노력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 이것이 새해의 가장 큰 목표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순간순간 작은 감사의 제목들을 찾아가기. 2019년 연말에 내가 엄청난 사람이 돼있진 않더라도, 1년의 시간을 후회 없이 노력하며 살았다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돼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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