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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꽃을 피운다

각자의 삶에는 각자의 때가 있다.

by Jay

한 톨의 씨앗이 꽃을 피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좋은 토양, 햇빛, 물, 적당한 온도,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몇 달씩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선인장처럼, 열악한 상황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특별한 생명체들을 왕왕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좋은 환경은 좋은 열매를 예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하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만일 그것이 절대적인 요소라고 한다면 '온실 속 화초'라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식물을 키우는데 최고의 환경인 '온실'에서 자란 화초는 오히려 면역력이 약하여 병충해의 공격에 취약하다. 좋은 환경이 언제나 예쁜 꽃, 좋은 열매를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톨의 씨앗이 꽃을 피우게 되기까지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 가지 요소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일까? 시간이다. 씨앗이 땅에 심겨 뿌리를 내리고, 땅을 비집고 올라오고, 줄기가 하늘을 향해 뻗어가며 잎을 내고, 비로소 꽃망울을 터트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빠르고 느림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모두가 차별 없이, 각자의 때와 마주할 때까지 흐르는 시간에 부딪혀야 한다. 그때를 위해 참고, 인내하고, 견디고, 스멀스멀 아래로 더 깊게 뿌리를 뻗어가야 한다. 활짝 핀 꽃들에게 딸린 그림자에는 반드시 길고 지루한 인고의 시간이 묻어있기 마련이다.




학창 시절 한 반에서 교학상장하던 친구들 사이에선 큰 격차가 느껴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성적으로 줄 세우기 하며 우열을 가리던 정도. 한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던 그들과 나는 서로 친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우리들 사이의 격차는 점점 눈에 띄게 벌어지고 말았다.


SKY 대학에 입학해서 대기업까지 쭉쭉 올라가는 놈. 공무원 시험에 다이렉트로 합격하여 인생 전반부부터 평생의 밥벌이를 보장받는 놈. 든든한 가정 배경을 바탕으로 어학연수에 해외 유학까지 줄줄이 다니며 다양한 커리어를 쌓아가는 놈. 그리고 그렇게 잘 나가는 놈들의 그늘에 가려져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대다수의 놈들.


그렇게, 누군가는 먼저 꽃을 피우고 다른 누군가는 그 꽃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태생적인 환경의 차이, 투자한 땀과 노력의 차이, 혹은 운의 차이로 그 시간의 간격은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기의 차이가 때때로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비교의식, 상대적 박탈감, 우울증 등 비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각자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때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때와 자신의 때를 비교하며 시기한다. '시간이 지나면 너도 꽃을 피울 수 있을 거야'라는 말에 쉽사리 위로를 얻기 어려운 이유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은 화려한 꽃을 피웠는데 나의 때는 언제인지 예측조차 하기 어려워서가 아닐까.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때를 담담히 기다리려 하기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루라도 빨리 꽃을 피우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된다. '행복'이 아닌, '성공'을 위한 레이스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이다.


일찍부터 뭔가를 이뤄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20대가 다 가도록 방황만 하는 사람도 있다. 대중적인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존재가 되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사랑하는 가족들의 영웅으로만 남기를 소원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피워내는 꽃들은 때도 다르고 종류도 다르다. 때문에 산다는 것은 비교와 경쟁이 아닌, 자신만의 삶의 결을 따라 각자의 때를 찾아가는 것이다.


6월에 꽃을 피우는 장미에게 '넌 왜 그렇게 꽃을 늦게 피워? 너도 개나리처럼 3월에 꽃을 피워야지!'라고 타박한다면, 장미는 어떻게 될까? 실상 그때에 꽃을 피울 수 없기 때문에 별다른 결실 없이 스트레스만 무진장 받을 것이다. 무리하게 꽃을 피우려 하다 금세 시들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개나리에게는 개나리의 때가 있고, 장미에겐 장미의 때가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꽃들이 자신의 때에 맞춰 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봄에도, 여름에도 아름다운 꽃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2019년 새해가 되고 2주의 시간이 흘렀다. 달라질 것 하나 없는 나의 상황에 지겹게 반복해야만 하는 일상의 노력들이 올해도 꽃을 피울 시기는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게 한다. 아직은 뿌리를 뻗을 때라고. 잎을 더 내야 할 때라고. 오므라든 꽃망울을 피우기 위해선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문득 SNS에 올라온 친구 놈의 해외여행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저 놈은 무슨 돈이 있어서 꼬박꼬박 해외를 나가는 거지?' 나도 모르게 이번 달 생활비가 빠듯한 나의 상황과 해외 여행을 나간 친구의 상황을 비교해버리고 말았다.


우울해하지 말자. 각자의 삶에는 각자의 때가 있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그 때를 빚어가는 시간모여 시나브로 내 인생을 꽃피워 갈 것이다. 빠르고 느림은 정답이 아니기에, 오늘의 내 모습을 비관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때와 비교하지도 말자. 나의 템포로, 나의 삶의 결에 맞게 적당한 속도로 일상을 음미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때를 기다는 삶에 만족하자. 그것이 '성공'이 아닌 '행복'의 레이스로 발을 들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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