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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17. 2020

슬럼프에 대한 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시간

12월 중순까지 PM(Project Manager)으로 맡았던 프로젝트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다.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에 계속되는 줄야근. 덕분에 프로젝트는 잘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아주 소중한 걸 잃어버렸다. 몸이 상해버린 것이다.


작년 8월에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허리가 잦은 야근, 장시간 앉아있어야 하는 근무환경 때문에 고장이 났다. 부어 있던 디스크가 신경을 건드려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채 10분을 가만히 앉아있기 힘들었다. 평소에 감기 한 번 쉽게 걸리지 않아 병원하곤 담을 쌓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찾아온 허리 통증에 잠까지 다 설쳤다. 덕분에 회사 일은 물론이고, 규칙적으로 굴러가던 나의 일상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12월 연말에 회사 사무실 내부 공사를 이유로 공짜 연휴가 생겼다. 오랜만에 생긴 5일 정도의 여유. 평소 같으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러 다니고, 카페 가서 책도 읽고, 글도 썼을 것이다. 나를 위한 시간으로 빽빽하게 활용했을 꿀 같은 황금연휴.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송장처럼 침대에서만 흘려보낸 19년 연말 휴가. 가만히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자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생각해보니 쉬는 날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누워만 있던 게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항상 무엇인가 배우고, 공부하고, 누군가와 만나고, 하다못해 혼자 카페에 가서 책이라도 읽었다.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라 생각에 마음이 부단히도 쫓겨왔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몸이 아픈 탓에 집에서 가만히 누워만 있으려니 기분이 영 찜찜했다. 책이라도 몇 자 읽어보자는 생각에 책상 앞에 억지로 앉아봤지만 그럴수록 허리 통증이 더 심해졌다. 도저히 가만히 누워 있을 수 없어, 서서 거실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지만, 시큰하게 쑤셔오는 허리 통증은 기세를 더했다. 무엇인가 해보려고 할수록 몸도 마음도 더 다운되는 악순환의 굴레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 아등바등 몸부림쳐오길 몇 해다. 그리고, 그렇게 매사에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임했던 삶의 태도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나의 최고 강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찾아온 단기적 삶의 요동침은 그러한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과연 옳은 것인지 돌아보게 만들다.


무엇을 위해 이처럼 독을 품고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살고 있는가? 몸까지 상해가면서 일과 자기계발에 목 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노력들이 그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한 번 자리 잡은 부정적인 생각은 끊임없이 자가증식하며 만사의 의욕을 좀먹었다. 덕분에 굳은 결의와 열정으로 출발하려 했던 2020년 신년이 그렇게 우울할 수 없었다.




이러한 나의 상태에 계속해서 매몰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객관화하여 스스로를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실행을 해봤다.


'슬럼프'란 무엇인가?  내가 겪고 있는 지금의 상태와 감정의 실체는 무엇인가?


잠잠히 고민해 본 끝에, 위 질문들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1. 육체와 정신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몸이 상하면 마음도 함께 상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건강관리에 그토록 신경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꾸준히 하면 그 안에 건강한 정신이 담긴다. 바꿔 생각하면,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패턴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2. 감정은 지속성이 없다. 지나가는 바람이다.

그래서 감정에 기반을 둔 삶은 업다운이 심하다. 감정은 오늘 옳다고 생각해 선택했던 것을, 내일 잘못된 것이 라 후회하게 만든다. 그렇게 매번 기분 따라, 감정 따라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뒤흔들리다 보니 기복적인 일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삶의 기반은 기분이 아니라 지식과 경험,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 건강한 신념과 가치관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한결같음을 유지할 수 있다.


3. 슬럼프는 방향성 없이 살아가는 삶을 정지시켜주는 사인이다.

슬럼프는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이 아닌 잘못된 것을 좇고 있을 때 삶에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모든 사람은 각자 삶의 이유와 목적이 있으며, 이는 본연의 자기 모습을 잘 이해할 때 발현된다. '자기다움'을 완전히 실현할 때 일상은 풍성하고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다움'을 잃어버린 순간 삶은 키를 놓친 배처럼 폭풍 속을 표류하게 된다. 그렇게 어딘지 모르는 방향으로 떠돌아다니는 게 바로 슬럼프다. 그리고, 그러한 슬럼프는 내가 있는 곳의 위치가 어디이며,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다시금 점검하게 만든다. '나답게 행복하기 위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를 제외하면, 근 1년 만에 처음으로 병원에 갔다. 허리에 비싼 주사 몇 방 맞고 오니 이제 좀 살만해졌다. 아직도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가 지끈 하지만, 그래도 숨통이 좀 트이니 삶의 의욕이 돌아온다.


몰아치는 감정 위에서 위태로웠던 삶도 적당히 정돈돼가고 있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 앞에 자신 없어지고, 자꾸만 숨고 싶어졌던 것이 사실은 내 삶의 어떠한 부분도 무너뜨리지 못할 감정의 허상임이 드러났다.


인생은 그렇게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내 삶의 하늘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쥐구멍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존재를 자꾸만 작아지게 만드는 부정적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니 다시금 내 인생에 긍정하고 감사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슬럼프가 있기 때문에 한 번쯤 멈춰 서서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시간이었다.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잘 가고 있는 건지 점검해볼 수 있는 시간. 너무 급하게 달려가느라 놓치고 온 게 있지는 않나 뒤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그러한 혼란 끝에 이제는 다시 한 번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길 꿈꾸게 됐다. 참말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시간이 된 것에 감사하다. 지나고 나니 다 의미가 있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어쩌면 내 삶의 다음번 슬럼프는 조금 더 건강하고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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