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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27. 2020

타인의 시기를 시기하지 말자

시기의 차이는 시간이 해결해준다. 

지금의 나를 격정적으로 만드는 감정에 달관해버린 누군가와 마주칠 때가 있다. 내가 겪고 있는 이 불안한 시기를 먼저 경험한 누군가. 그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마치 세상 물정 모른 채 빨빨거리는 치기 어린 꼬맹이가 된 것처럼.




나보다 앞선 시기에 있어서 가질 수 있는 경험과 연륜. 그것은 내가 아무리 간절하게 노력한다 해서 지금 당장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때문에 그저 바라보며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지금의 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그 앞선 시기를 소유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여유를 보며 시기하게 되는 나.


'나는 지금 이 감정이 너무 버거운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담담할 수 있지?' 


열등감은 상대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스스로를 예민해지게 만든다. 악의적 의도가 전혀 없던 그들의 여유에 나는 '꼰대'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자기방어해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전혀 없다. 그럴수록 나만 더 구질구질 해질 뿐,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시기적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다.




중고등학생에겐 대학생 언니 오빠가. 미필에겐 군필이. 취준생에겐 신입사원이. 사회 초년생에겐 지옥 같은 직장 생활을 꾸역꾸역 버텨가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직장 선배가. 나보다 조금씩 앞선 시기에 있는 누군가의 등 뒤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분명 그 시기에 가면 또 다른 문제와 어려움들이 있을 것이다. 산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고난의 반복을 전제하며,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에 대한 한 편의 드라마가 곧 인생이니까. 하지만, 당장 나에게 주어진 이 시기를 잘 넘기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너무 커 보인다.  


그렇게, 타인의 시기를 시기하고 만다.




최근 한 모임에서 이직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도전적인 일과 안정적인 일.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일과 완전히 새로운 분야로 뛰어들어야 하는 일. 무엇이 나를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이러한 내 고민을 듣고 한 사람이 조언을 해주었다.


"저는 지금까지 업종을 바꿔가며 다섯 번 이직을 했어요! 돌아보니 그 시기마다 저도 많이 불안했던 거 같아요. 많이 힘드시겠어요. 하지만 저는 이제 삶의 안정감을 찾았어요. 너무 행복하고요.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에요!'


경험에서 우러나온 현답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크게 와닿진 않았다. 이 시기를 지나간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었고, 가질 수 있는 여유라고 생각했다.


그분의 태도가 거만했던 것도, 표현이 거칠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그분이 시기적으로 나보다 앞서 있었고, 나의 시기를 관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을 뿐이다. 스스로의 지나온 시기를 훑어보며 '당신이 이러한 감정일 거 같다'라고 진정성 있게 얘기해 준 것 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세심한 위로에 오히려 감사했지만, 한편으론 '나에겐 언제 저런 여유가 생길 수 있을까?'라는 한탄과 함께 알 수 없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분의 시기는 나의 시기에서 너무도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내 딴에는 깊이 고민하고 생각해서 의견을 개진했지만 대차게 까이던 상황.


"2년 정도의 업력으로 판단할 때 그렇게 결론지을 수 있어요. 그 시기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워요. 하지만, 이번 안건에 대해서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는 게 맞는 거 같네요. 이 부분에 있어서 좀 더 경험을 쌓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연차가 충분히 쌓이지 못하면 업력과 전문성에서도 격차가 생긴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경험이 부족해서 모르는 게 많으니까. 전후 맥락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니까. 판단의 기준이 될만한 케이스가 부족하니까.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하려고 진짜 절박하게 노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좁혀지지 않는 연륜의 차이는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업무상의 작은 문제들에도 쉽게 동요하는 나는 같은 문제에 냉정하고 객관적일 수 있는 10년 경력의 팀장님과 절대로 같을 수 없다. 손에 익지 않은 일이 너무 많고, 조금이라도 실수할까 전전긍긍하며 자유로울 수 없는 내 모습. 언젠간 나도 지금의 팀장님 위치에 갈 것이고, 경력이 뒷받침되는 근거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겠지만, 그게 당장은 아니라는 사실에서 오는 조급함이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서 최근에 마음속 깊이 되뇌게 된 문장이 하나 있다. 


타인의 시기를 시기하지 말자. 


나의 시기를 타인의 시기와 비교하는 것이 절대로 스스로를 더 사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가항력적인 일에 기분과 감정을 소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으니까.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우울감과 실패감의 굴레에 빠트리는 일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현재의 시기를 객관화하여 바라보려는 노력, 그리고 시기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배워가려는 자세다.


아직도 나는 나보다 앞선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상대적 안정감이 부럽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경험의 총량이 내 것보다 훨씬 방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나는 그저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인과 나의 시기적 차이를 비교하지 않으면 된다.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시기의 차이는 시간이 해결해준다. 그 시간을 얼마나 잘 인내하고 견디는지가 중요할 뿐이지, 지금의 내 시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사실, 나보다 앞선 시기에 있는 그들의 삶에 여유가 있을 수 있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시기의 고민들과 불안한 감정들을 건강하게 잘 풀어나간 경험들이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했던 고민들에 더 귀를 열고 내 삶에 의미 있는 적용점을 발견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기하지 말고 그들의 경험을 포용해야 한다. 지금 내 시기를 진작에 지나쳐간 그들의 삶을 보며 '아! 언젠간 나도 이 시기를 잘 넘기고 저런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때가 오겠구나'라는 소망의 씨앗으로 삼는 것. 그러한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더더욱 생각과 마음을 유연하게 하여 앞선 시기를 살아가는 선배들의 말과 행동을 시기하지 말고 긍정해야겠다. 그리고, 지금 나의 시기에 마주하게 된 문제들이 결국엔 지나갈 것들이라는 사실을 믿어야겠다. 그렇게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내 삶을 정의해 가는 것이 아닌, 내가 겪고 있는 이 시기 자체를 사랑하고 건강하게 이겨나가는 것. 그를 통해 매일을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삶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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