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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Feb 13. 2020

열정이 무르익으면 균형이 된다

열정은 균형에 수렴한다. 균형은 절제에 기인한다.

개인심리학을 주창한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인생의 세 가지 과업으로 일과 직업, 사회적 관계, 그리고 사랑을 꼽았다.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직업을 갖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중에서도 특별한 누군가와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것. 그를 통해 스스로를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시켜 가는 것. 그것이 곧 삶에서 좇아야 하는 최고의 가치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과업들의 우선순위를 따지려는 것은 옳지 않다. 동등하게 33.33%의 중요도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인간의 욕망이란 게 다분히 한쪽으로 치우치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 성향에 따라 한, 두 가지 과업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살아가는 경우가 다반사인 걸 보면 알 수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일·사랑·관계 이 세 가지 각각에 몰입하는 과정이 완벽하게 등가교환의 원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셋 중 어느 한 곳에 좀 더 많은 시간과 감정을 쏟아내면 자연히 다른 곳에는 소원해지게 된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유한함이다. 일도 완벽하게 잘하면서 동시에 파트너를 100% 만족시키는 사랑을 하고, 또 그러면서 친구들과의 깊은 우정도 변함없이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내 주변의 경우만 보면 그렇다. 어느 한 가지 과업에 과몰입하면 반드시 다른 어딘가에는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다.




특히, 인생의 초반부에서는 특정한 과업에 매몰돼버리기가 더 쉽다. 불같은 사랑의 감정에 사로잡혀 가까운 관계들을 매몰차게 정리해버리는 사람. 업무적으로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 이성 보기를 돌같이 하는 사람. 우리 우정 무덤까지 가자고 외치는 친구 놈들 때문에 정작 자기 일에는 몰입하지 못하는 사람.


그들은 각자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인생의 과업에 자신의 열정을 투자한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공정하고 매정한 등가교환의 원칙에 따라 자연스레 삶의 다른 어떠한 부분에서 결핍이 생겨버린 것이다. 순리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할 수 있는지는 결국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가정이 파탄 날지언정 더 큰 부와 명예를 갈망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으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이 전부라고 얘기하는 낭만주의자들도 존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대개의 경우 몇 가지 과업에 편중된 태도는 곧 삶 전체의 붕괴를 야기한다. 분명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최선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더라도, 동등한 중요도를 갖는 다른 인생의 과업에 스스로가 소홀했다는 점을 깨닫는 순간 몰려오는 허무감 더 자주 부딪히게 될 뿐이다. 때문에 '열정'이 성숙하게 무르익을수록 귀결되는 종착지는 결국에 '균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악착같이 살 필요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면전에 대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한 번뿐인 인생 왜 그렇게 적당히만 살라고 하지? 특별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선 더 뜨겁게 불타올라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그런 무기력한 말들로 내 열정을 꺾으려고 하는 거야!'


하지만 돌아보니, 그들의 말도 일면 맞는 말이었다. 균형 없이, 그렇게 좁은 시야에 갇혀 악착같이 매몰되는 건 잘못된 열정이었다. 일에 몰입할 땐 사랑하는 가족들이 눈에 밟혔고, 연애를 할 땐 멀어져 가는 친구들이 그리웠고, 친구들과 함께 할 땐 미뤄두고 온 일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열정적으로 살아보겠다는 굳은 결심을 몇 번씩 하면서도 매 번 무너졌던 것이다. 열심히 하고자 할수록 오히려 결핍이 늘어나는 역설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열정은 원래 외로운 것이라 스스로를 설득하며 계속 채찍질해봤지만, 그럴수록 갈급함더 커져갔다. 나에게는 균형점을 향하기 위한 올바른 열정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노력을 덜 하고 적당히 타협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삶 전반의 용량(Capacity)은 지속적으로 키워가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보다는 '균형'의 방법론을 선택하는 것이 좀 더 안정적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절제의 미덕'이다.


내가 하는 업무에 100의 노력을 쏟아낼 수 있는 여력이 있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30 정도의 여유를 남겨놓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동등한 중요도를 갖는 삶의 가치들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욕심을 절제한 것일 뿐이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100의 감정을 쏟아붓고 싶더라도, 이를 절제하여 자신의 업무에 흐트러짐 없이 완결성을 보이는 것. 엄청난 절제의 덕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절제력이 곧 균형 있는 삶을 만들어낸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바람직하고 좋은 감정이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하나도 고려치 않고 사랑만 있으면 다 된다는 판타지 로맨스를 꿈꾸다 보면 오히려 진실된 사랑의 지속성이 떨어진다. 어떠한 대상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감정만큼이나 내가 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과의 건강한 관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내 마음이 건강해지고, 자존감도 높아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부담스럽게 하는 헛된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도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에 일상이 사로잡혀버리지 않게 통제해주는 '절제력'이다.




열정은 균형으로 수렴한다. 균형은 절제에 기인한다. 즉, 열정은 절제하는 삶을 통해 빛을 발한다.


보통 '열정'이라고 하면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시도하고, 바쁘게 움직이고, 실행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열정의 본질이 아니다. 지속성을 갖기 어렵고, 잦은 감정의 기복과 번-아웃(Burn-Out)의 위험에 노출시킬 뿐이다.


진짜 열정의 본질은 '균형감'이다. 균형과 안정감을 이루는 게 특정한 영역에서 높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행복감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보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를 꿈꾸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다. 이 사실들을 항상 기억하며, 지금 내가 삶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자주 돌아봐야겠다.




균형 있는 삶.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 바득바득 갈면서 반드시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 승리를 쟁취해야지만 만족하는 그런 삶 말고.


균형 있는 삶. 주변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갈구하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야만 한다는 잘못된 아집의 노예가 되는 그런  삶 말고.

 

균형 있는 삶. 사랑에 목매고 집착하다 결국에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그런 삶 말고.


균형 있는 삶. 삶의 중요한 과업들 하나하나의 의미를 돌아보고 그 가치들의 균형을 잘 지켜내는 삶. 그런 삶을 살아내고 싶다. 앞으로는 그런 삶을 살아내기 위해 좀 더 고민하고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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