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반 사무직 직원의 월급은 동결되는데, 개발자 연봉만 치솟을까요?
18세기부터 진행된 산업혁명의 결과로 제조 역량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덕분에 싸고 좋은 제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대개는 기업들이 그 과정을 주도했죠.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제품들이 소비되는 과정에서 사회 시스템도 병렬적으로 함께 발전했습니다. 기업의 활동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제조 역량의 발전은 제조 중심의 사회 시스템 형성을 촉진했고, 우리는 그렇게 다져진 사회 기반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산업화의 과정을 거친 모든 나라에서 유사하게 나타난 현상입니다.
2000년대 초반의 미국 시총 순위 상위권 기업 대부분은 제조ׄׄׄ업 기반의 기업이었습니다. 해당 기업들은 앞 다투어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제품을 판매하며 경제 발전을 선도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더 많은 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미국 사회가 움직이는 데 강력한 동인이 되었습니다. 제조 산업과 핏이 잘 맞는 인력을 길러내거나, 최적의 생산을 위해 노동법을 제정하거나, 또는 더 많은 소비를 독려하기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죠.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에서 더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1970년대 이후 진행된 정부 주도의 계획 경제 발전 정책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빠른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위해 제조 경쟁력이 있는 특정 기업들을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편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특정 제조 회사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강대국들이 그러했듯, 해당 기업들의 대량 생산과 판매를 돕는 방향으로 사회가 움직였습니다. 교육, 법, 행정, 노동, 주거단지의 조성, 교통 인프라의 구축 등. 많은 부분에서 더 잘 제조하고 유통하기 위한 방향성을 가지고 사회 시스템이 다져졌습니다. 이러한 경제성장 방식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글의 논지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차치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제조업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형성에 근간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배경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대변환의 시대를 좀 더 잘 이해하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근 300여 년 동안 지속되어온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에 균열(Crack)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의 발달이 그 원인입니다. 제조ᐧ생산ᐧ유통 등, 이 사회의 근간이었던 산업 대부분이 기술 기반의 서비스로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미국 시총 순위에서는 과거의 제조 강세 기업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자리를 페이스북(메타), 구글(알파벳),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넷플릭스 등 기술 기반으로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차지하게 되었죠. 우리나라도 카카오, 네이버를 필두로 한 IT 기업들의 성장세가 눈에 띕니다. 쿠팡이 물류를, 토스는 금융업을, 배달의민족은 요식업을 혁신하며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비즈니스들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혁신은 이미 경향성이 되었습니다. 분명, 머지않은 시기에 더 많은 산업 영역이 기술 중심으로 체질 전환을 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새로운 산업 편재에 걸맞은 시스템으로의 혁신을 더 강력하게 요구받게 되겠죠.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의 의장으로 있었던 클라우드 슈밥은 이와 같은 새로운 국면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했습니다. 300년 전 산업혁명과 같이, 이 시대가 직면한 변화의 양상도 그만큼 급진적임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한동안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더니, 요새는 또 잘 들어보기 힘든 단어가 되었지요. 이는 4차 산업혁명이 허상이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혁명의 한가운데로 더 깊숙이 파고들어서입니다. 이제는 웬만큼 충격적인 기술 혁신이 있지 않는 한 사람들은 쉽게 놀라지 않습니다. 기술 혁신이 그만큼 익숙해지고, 친근해진 것이죠. 처음 4차 산업혁명이 주창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듯이, 4차 산업혁명도 분명 인류를 한층 더 윤택하게 해 줄 것입니다. 이는 분명 좋은 것이죠. 하지만, 어떠한 변화든 간에 과도기는 혼란을 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딱 그 과도기에 해당합니다. 제조업 시대에서 기술 중심의 IT/SW 시대로 변화하는 과도기. 그래서인지, 급격한 변화로 인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속도입니다. 새로운 산업혁명의 물결이 밀려오는 속도는 너무나도 빠른데, 변화의 토대가 되어주어야 하는 사회는 그러한 변화의 흐름에 따라와 주지 않는 것입니다.
앞에서 산업혁명을 통한 제조업 성장은 사회의 발전과 병렬로 이루어졌다고 언급했죠. 기업이 제조를 더 잘 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가 움직여줬다고요.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가 그 정도의 탄탄한 토대를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의 속도를 사회 혁신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과 산업의 발전은 더 속도를 내고 있지만, 사회의 변화는 더디기만 합니다.
그 간극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법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거나, 노동의 형태가 기술 혁신의 방향성과 맞지 않다거나, 산업에 바로 투입 가능한 인력의 양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더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죠. 요지는, 산업 혁신과 사회 변화의 불일치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들이 종합되어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 바로 개발자 열풍입니다. 개발자 열풍 이면에는 계속 발전하는 산업계의 필요에 따르지 못하는 뒤쳐진 사회 시스템이 문제 상황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개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 부재하고, 그로 인해 변화하는 산업계가 요구하는 수준의 노동 수요가 충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으니, 자연히 적합한 인재에 대한 몸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겠죠. 거기에다가, 개발자로서 더 잘 성장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이나 문화가 형성되지 않는 기업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개발자 구인이 어렵습니다. 조직을 관리하는 방식이 제조업 방식의 관리 시스템에 머물러 있어서, 기술 기반 인력들의 필요에 맞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결국, 그나마 있는 양질의 개발자 공급이 선진화된 개발 문화와 높은 급여 수준, 좋은 복지까지 모든 것을 갖춘 소수의 기업들에 몰리게 됩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노동 시장의 불균형이 극에 달해 가는 중입니다.
조금 두서없이 쓴 글이 돼버린 거 같네요.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개발자 열풍은 산업 발전과 사회 혁신 속도의 간극에서 발생한 노동시장의 왜곡 현상입니다. 이런 왜곡이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IT 산업 전반의 침체, 중소기업의 성장 기회 쇠퇴, 노동자 간 급여 차이로 인한 빈부 격차, SW 기술 습득을 위한 고액의 사교육 성행, 그로 인한 교육 기회 불평등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루빨리 고도화되는 산업에 걸맞게 사회 시스템이 형성되어 보다 안정적이고, 평등하고, 풍요로운 사회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