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블룸(Penguin Bloom)>
캐머런 블룸,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저
북라이프
아이들과 함께 이태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빨간 신호에 걸려 정차해 있었다. 날은 덥고 눈은 부셨다. 햇빛을 피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인 건 새장 속의 새들과 낮은 철장 속의 개들이었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글이 보였다. "저기 봐~ 강아지들이랑 새들!"이라는 내 말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슬이는 그 강아지들은 유기견일 거라고 했다.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자동차 바퀴는 서서히 굴러가는데 뒷자리에서는 도무지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은 기운이 가득했다. 아마도 마음속으로 끙끙거리고 있었을거다. 저 중에 한 마리라도 우리 가족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집에는 개털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 나와 임이, 이렇게 둘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개를 키웠고 성인이 될 때까지도 키우던 개에게 정을 많이 주며 아껴주었는데, 결혼하고 그 개를 다른 집으로 보낸 후 몇 년 뒤에 다른 개를 안아보다가 개털에 알레르기가 있는 걸 알게 되었다. 동물병원에 가서 몇 분 후면 재채기가 나오기 시작하고 눈이 간질거렸다. 그러니 우리 집에서는 개를 키우는 일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집에 돌아오자 아이들은 낮잠을 잤다. 낮잠을 자기에 좋은 날이었다. 더위에 몸은 늘어지고, 외출했다가 돌아왔으니 피곤했을거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낮잠으로 보내긴 아쉬워, 집안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소파에 앉았다. '어떤 책을 읽을까?' 미리 사둔 책이 쌓여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제 배송된 '비밀책'(서점리스본에서 비밀책을 배송받기 시작했다.)을 읽어 볼까 생각하다가 그건 좀 아껴두고 싶어서 다른 책 쪽으로 스르륵 눈길을 돌렸다. 그러다 이 책과 눈이 마주쳤다. '아, 맞다. 곧 반납일이지!' 빌려온 책의 반납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기억나서 망설일 것도 없이 <펭귄 블룸>을 가지고 와서 읽었다. 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나의 북위시리스트에 있는 책이어서 언젠가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책이었다. 지난번에 도서관에 들렀을 때 문득 이 책이 생각나서 빌려뒀는데, 그 사이 여행도 다녀왔고, 다른 읽을 책들이 있어서 미처 펴보지도 않고 있었다.
프롤로그부터 울음이 터졌다. 이런 책도 있다. 울음을 쏟아내게 한 후에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책.
누구에게나 사랑은 찾아온다. 그중 어떤 사랑은 부부가 되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간다. 누구에게나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행복은 언제까지나 내 앞에 있을 것만 같고, 나는 언제나 행복에 겨운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샘에게도 그랬다. 그녀의 삶은 평범하고 아름다웠다. 삶의 흥분과 평온함이 그녀와 가족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그녀는 전과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난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게, 뇌는 모든 걸 알고 느끼고 생각하지만, 내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계속 살아가는 거야." 20대 초반부터 이런 얘기를 종종 하곤 했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런 상황만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장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종과 나비>를 읽으며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었던 이유도 누군가에게 언제든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샘에게 닥친 추락사고는 그녀의 모든 것을 앗아가버릴 수도 있는 가혹한 사건이었다. 프롤로그에서 남편 캐머런이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 쓴 부분을 읽으며, 나는 그 글을 쓰는 남편의 심정과, 그 글을 쓸 때 곁에 있었을 아내 샘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들에겐 현실이다. 이 모든 일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내게도 현실일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기분 좋아질 수 있는 가장 쉬운 최선의 방법은
타인이 기분 좋아지도록 돕는 것이란 걸 펭귄이 보여줬다.
20미터 높이에서 추락한 새끼 까치 '펭귄(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깃털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은 샘과 같은 일을 겪은 아기 새였다. 펭귄은 샘에게 거울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연약해질 대로 연약해진 그들은 서로에게 '위로'였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고 책임감을 일깨우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동기가 되어준다. 내가 지치고 힘들었던 순간에, 평소 신뢰하던 선배가 해주었던 말이 있었다. 나 자신으로 깊이 들어가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이라고. 그 말은 가슴에 오래 남아 지금도 내가 나 자신으로 파고들려는 순간에 내 고개를 들게 해준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을 통해서만 진짜 웃음을 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거울을 보며 웃는 나는 언제나 의식적이다. 나를 위해 씩 웃어볼 수는 있지만, 그건 정말 기뻐서 웃는 미소가 아니라 잠시 지어본 웃음일 때가 많다. 기쁨 가득한 미소를 타인에게서 찾아야 우리는 진짜 웃음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웃음을 보고 싶어 타인에게 행복을 주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른다. 윤지회 작가의 그림책 <방긋 아기씨>처럼, 미소는 반사판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를 향해 웃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내 안의 행복이 일깨워지는 건지도.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님의 글이 떠오른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을 때, 누군가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보낸 사랑이란 에너지가 상대방에게 흡수된 후
더 따뜻한 형태로 반사돼 돌아올 때
비로소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픔이나 고통보다 더 큰 문제는 외로움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인한 외로움이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일도 잘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더욱 중요한 일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한 사람이 되는 일이다. 샘이 작고 여린 아기 새인 '펭귄'에게 그랬고, 매주 보육원에 가서 6개월 된 아기를 돌보고 몸을 씻기는 아는 언니가 그렇고, 아직 무엇이든 엄마와 상의하고 싶어 하는 열한 살의 딸들에게 듣는 귀가 되어주는 내가 그렇듯이.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는 말이 있다. 남을 돕고 난 후에 느끼게 되는 최고의 기분을 일컫는 말이다. 대단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몸을 일으키는 일은 이윽고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 있는 우리의 마음을 일으켜줄 것이다.
p.s.
매일 어떤 책이든 한 권 이상 내 손에 들려있기에 그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오늘부터 가볍게 시작해보자고 생각하고 썼다. 책일기라고 해도 좋겠다. '책으로 만나'라는 카테고리로 연재를 시작한다. 시작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