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소환하다"_어릴 적 그 책

by Jianna Kwon


<어릴 적 그 책>
곽아람 저
앨리스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누런 책을 소유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곽아람 기자가 부러웠다. 내가 어릴 적 많은 책을 읽지도 못했고, 그나마 있었던 책들도 귀히 여기지 않아 쉽게 처분해버렸다는 것이 속쓰러게 아쉬웠다. 엄마가 책 읽어주는 일은 내 기억 속에 없을 뿐만 아니라, 그 흔한 동화책 전집도 우리 집엔 없었던 것 같다.(전집이 없었다기보다 읽은 기억이 없는 것이 맞겠다.) 이 책 속에 나오는 많은 책들을 나는 거의 읽어보지 못했고, 심지어 표지조차 낯설게 보였다. 같은 시대를 산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책들.


책에 대한 또렷한 기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날 예뻐 해주셨던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엄마를 통해 전해주셨던 책이다. '노마'라는 이름이 들어간 제목이었는데 확실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엔 <노마> 시리즈가 대유행이었다. 동네서점에서 <노마> 시리즈를 찾고 있는 내가 희미한 기억 속에 있다. 1학년이 읽기엔 제법 글밥이 많았고, 독서에 큰 흥미도 느끼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성의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한참 걸려 마침내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용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얼마 전, 아는 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했다.


"난 요즘 문학소녀가 된 것 같아요. 지식 책이나 종교 서적이 아니면 도통 흥미가 생기지 않았는데, 이제야 소설을 왜 읽는지 알 것 같아."


소설을 읽는 건 시간낭비처럼 느꼈던 나는 그 흔한 명랑만화에 빠져본 적도 없이 심심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픽션도 사랑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었다고 나이 들어서까지 책을 사랑하는 게 아니고, 어린 시절 책의 부재 속에 있었다고 하여도 어른이 되어 진짜 취미가 '독서'가 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이고, 책의 바다 안에서도 책의 바다로 풍덩 뛰어들고 싶을 만큼 책읽기와 책을 바라보는 일을 좋아한다.


어릴 때 읽었던 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일의 묘미는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어릴 때는 몰라서 지나쳤던 것들을 발견하고,
이야기의 한 장면으로 스쳐지나갔던 것들을 파헤쳐
'지식'으로 새로이 습득하는 즐거움은 정말 크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이 공부도 잘한다는 말엔 쉽게 동의하지 못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 아이에게 공부는 더 재미있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엔 강하게 긍정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짧은 한 문장을 읽어도 느끼고 생각하는 바의 범위가 달라진다. 누군가에겐 생경한 한 문장이, 책을 많이 읽고 배경지식이 많은 사람에겐 글쓴이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문장으로 남을 수 있다. 행간을 읽으려면 직감 외에도 그동안 켜켜이 쌓인 배경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니까.


책읽기를 즐겨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책여행 하듯 유년기를 보낸 저자가 쓴 아래의 글을 볼 때 가슴 속에서 뭔가 움트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간지러움.




"엄마, 요즘은 무슨 책 읽고 있어? 아버지는 뭐 읽으셔? 내가 보내준 책은 다 읽었어?"

서울에서, 천 리 길 진주에서, 우리는 같은 책을 읽고 있다.

우리 가족은 한솥밥을 먹는 '식구(食口)'라기보다는 같은 책을 읽는 '독안()'인 셈이다.



내 아이들이 다 자라서도 나의 안부를 물을 때, 요즘 읽는 책이 무엇이고 내 느낌과 생각이 무엇인지를 물어봐준다면 더 행복할 것 같다.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며 마음을 나누는 모녀사이로 지내고 싶다.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떠는 것만큼, 함께 도서관에 가서 좋은 책을 권하고 읽고 오는 걸 즐겨한다면 어떨까. 힘들 때 책으로 마음을 건넸던 엄마, 책 첫 장에 글로 편지를 남겨 전해주었던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책을 통한 추억의 공유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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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이의 방학소원>


오늘은 방학 첫날이니 방학계획을 한번 세워보고, 지켜 나가보자고 제안을 했다. 얼마 후, 들고 온 종이 위에 쓰인 글자 '슬이의 방학소원'. 방학 계획을 세우랬더니, 방학 소원을 적어왔다. 방학소원이라니! 엄마 아빠에게 바라는 것들(수준도 딱 엄마 아빠가 해줄 수 있을 법한 것으로 신중하게 고른 흔적이 보였다.)을 줄줄이 10개나 써놓았다. 자신과 약속하고 지켜보라는 바람으로 쓰라고 했던 방학계획이, 엄마아빠에게 바라는 방학소원으로 탈바꿈한 한 장의 종이에 웃음이 빵 터졌다. 심지어 이 계획들은 반드시 지킬 거라 하니 최종책임자가 확실해 보이는 부모 입장에서는 겁부터 난다. 깜찍한 널 어쩌니~


살짝 엄마의 방학소원도 하나 넣어볼까? 함께 같은 책을 읽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어때, 이만하면 꽤 소박하고 아름다운 소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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