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말 아이들> 1,2
김중미 저
창비
가난한 사랑 노래
(부제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는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는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나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라는 시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속으로 조용히 울다가 온몸이 흔들리도록 울고 있는 걸 알게 된 갈대가,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되는 <갈대>라는 시를 쓴 시인이 10년간 절필 후 다시 쓴 시가 <가난한 사랑 노래>라 했다. 어찌할 수 없이, 선택할 수도 없이 태어난 환경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다가, 결국 소리쳐 부르짖는 시가 이 <가난한 사랑 노래>라고 했다. 정재찬 교수님의 글을 읽고 나서는 이 시가 처절한 부르짖음으로 들렸다. 눈물 가득한 슬픈 눈을 가진 가난한 젊은이가 목대 핏대를 세워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 소리으로 읽혔다. 차라리 선택된 가난이라면, 견딜만하고 할 말도 있었으리라. 이 시는 내게 모든 분주했던 일을 내려놓고 멍하게 하얘진 머리로 그저 그 울분을 듣게 했다.
나에게도 가난의 기억이 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대부분에게는 가난의 기억이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의 격변 속에서 살아남아 이를 악물고 경제성장을 위해 달린 우리 조부모와 부모 세대는 더 말할 나위도 없고, 그런 부모님의 희망으로 자랐던 우리들에게도 어릴 적 가난의 경험들이 있다. 세월은 흐르고 시대는 변하고 모든 것이 전보다 윤택해졌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는 모두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고, 나는 그것을 우리가 누리는 부유함이라고 부르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이 연탄을 피우는 집에서 살던 시대는 지났고, 더우면 선풍기가 아니라 에어컨을 켜는 집이 많아졌으며, 대중교통보다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일이 많아진 풍요의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많은 이들이 누리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라 불린다. 대중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먼 길 걷는 것도 서슴지 않고, 선풍기도 없이 부채로 바람을 불러오고, 연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 모두가 함께 어려우면 견딜만하다. 대다수가 그렇게 산다면 불편할 뿐 자존심이 상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여전히 이전의 생활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외로워졌다. 다들 떠나고 싶어 하는 어떤 곳이 나의 동네가 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울컥한 일이다. 과거의 힘들었던 시기에 멈추어버린 마을, '괭이부리말'은 그런 동네였다.
집 나간 엄마, 늘 술에 취해있는 아빠, 어두운 방에서 본드 냄새를 맡는 동수, 어린 나이에 집안일을 다 감당해야 하는 숙자, 아버지의 폭행으로 피투성이가 된 명환이, 동준이와 숙희까지 절망의 그늘이 드리워진 괭이부리말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영호 아저씨와 김명희 선생님은 소망의 빛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가난으로부터 빠져가는 길을 비춰주는 빛이라기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삶은 살만한 것임을 알려주는 온기의 빛.
이쯤에서 나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속의 주인공들이 부러워졌다. 돈이면 많은 것들이 해결되는 편리해진 세상 속에서 내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을 보았다. 그들에겐 내게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들이 충만했다. 그들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남의 일처럼 외면하지 않았으며, 남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것을 기뻐했고, 진심으로 서로 잘 되기를 바라며 소망의 빛을 나누었다. 그들은 한 배를 타고 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었고, 서로를 웃게 하려 했다. 물질이 결코 줄 수 없는 것들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것은 너무 따뜻하고 심지어 뜨거워서 가까이 가면 내가 가진 차가운 것들이 녹을 것 같은 두려움까지 불러일으켰다.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차가움을 유지해야 했다. 그런 습관화되어버린 차가움이 녹으면 나를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그들에게 있는 그 뜨거운 마음이 분명 내 마음에도 있었다. 따뜻했던 내 마음을 기억한다. 그 온기가 빠져 이제 냉기가 느껴지는 내 마음인 것 같아 엎드려 울고 싶어졌다.
가난에 대해서 말하는 건 조심스럽다. 게다가 물질적 가난뿐만이 아니라, 심리적 가난과 영적 가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다. 다만 바라기는 물질적 가난이 마음의 가난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좋겠다. 또 물질적 풍요로움이 마음의 온도를 식히지 않기를 바란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동수에게 찾아온 봄날의 온기가, 지금 이 시간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들에게 늦지 않게 찾아오기를, 간. 절. 히.
동수는 잠시 그 햇살 아래 서 있기로 했다. 그동안 동수의 몸과 마음을 채우고 있던 어둠들을 말간 햇살로 다 씻어내고 싶었다... 동수는 걸레를 들고 기계를 닦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