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시간>
마스다 미리 글. 그림
이봄
몸도 마음도 무겁거나 좀 지치는 날에 가볍게 읽을 책을 찾을 때면 '마스다 미리'가 고개를 내민다. 정말 책장에서 고개를 쏙 내민 것처럼 눈에 콕 들어온다. '마음이 말랑말랑 티타임'이라니! 책띠에 적힌 글도 얼마나 마음을 몰랑몰랑하게 하는지. 쉽게 읽혔고, 마음에 햇살 한 줌 흩뿌리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굿초이스.
<도라에몽의 주머니> 중에서
"도라에몽 도구로 갖고 싶은 것 있으세요?"
"멀리 보이는 것을 그 크기 그대로 손에 넣는 거요.
밤하늘 별을 집어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싶어요."
아, 로맨틱해~ 갖고 싶은 도구가 '밤하늘 별을 집어서 손바닥에 올려놓게 해주는 도구'라니 생각만 해도 손바닥 위에서 반짝반짝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음... 누가 묻지 않아도 나 스스로 대답해보는 좋은 습관으로 나도 살짝 고민을 해봤다. 어떤 도구를 소유하면 좋을는지를.
저는 저의 행복했던 순간들의
제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주는 도구요.
언제라도 마음에 떠올리기만 하면
행복했던 그 순간의 나를 볼 수 있게요.
나는 나의 행복했던 순간의 내 표정이 정말 궁금하다. 그 순간의 타인의 표정은 어렴풋하게라도 기억하게 되지만, 내 표정은 거울을 보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고 짐작만 할 뿐이니까. 사진을 남긴다고 해도 부족하게 느낀다. 생생하게 그 순간을 느끼려면 동영상이면 좋겠다. 누가 찍어주지 않아도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그 행복을 남겨주는 동영상이라면 정말 최고겠다. 짝사랑하던 사람을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을 때의 내 표정이 궁금하고, 주일학교에서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해서 엉겹결에 '모르드개'라는 답을 맞힌 걸로 상을 받았을 때의 내 모습도, 열심히 안무한 창작무용으로 친구들과 함께 호흡하며 시험을 치르고 나왔을 때의 내 얼굴도, 대학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전화기를 든 내 표정도 궁금하다. 삶의 중대한 순간들은 누군가가 영상으로 남겨줘서 감사하게도 볼 수 있지만, 소소한 행복들도 모두 내 모습을 통해 다시 느끼고 싶다. 가끔씩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 그 도구가 내 행복의 영상을 보여준다면 금세 마음이 환해질 것만 같다. 그러면 다시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내 모습이 영상으로 찍히겠지?
그 영상으로 보고 싶은 나의 티타임의 순간들이 있다. 차가 향긋해서도, 디저트가 달달해서도 아니고 함께 한 사람들의 웃음이 좋아서 기억되는 순간들.
'내 주위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에 가득했던 그 행복이 내 얼굴에도 가득했겠지? 하지만, 그런 도라에몽의 도구 없으면 어때, 분명 그때의 나의 행복한 모습은 내 주위를 둘러싼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데. 그거면 됐지 뭐. 그렇게 기억을 나누어 저장하는 것도 로맨틱하잖아?'
우리는 함께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그 순간의 내 마음과 네 표정을 기억하고,
너는 그 순간의 내 표정과 네 마음을 기억한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의 순간을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