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에 대한 단순명료한 틀을 잡다
본격적인 역사책 읽기의 워밍업으로, 마중물 같은 책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에서는 복잡한 것은 최대한 절제하고 아주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될 뼈대가 되는 역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쉽게도 이 책은 2000년간의 유럽의 역사에 대해 이해하기 쉽도록 돕는 아주 최소한의 지식 정도만 담고 있다. '세계사'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세계사에 대해 다룬 책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유럽사>>라고 지어야 맞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최소한의 지식 정도만 담았기에 읽기에 부담 없을 정도의 책 두께일 수 있는 것이고, 가볍게 읽다보면 다른 역사책을 읽고 싶어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나라 이름이나 주요 인물의 이름조차 정확하게 쓰지 않고 그런 나라와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로 설명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이것이 독자에겐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어쩌면 그것이 책 읽는 독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아이러니한 친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적 스토리를 미리 알고 있다가 이후에 그 정확한 사건을 알게 되면 '아~ 그 얘기가 이 얘기였구나! 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었구나!'하고
무릎을 탁! 치며 더 잘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시작하자마자 얼마 안 있어 결말을 알려준다. 유럽 문명의 특징에 대해 처음 두 개의 chapter에서 아주 명료하게 설명하고, 그다음 장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존 허스트의 이러한 책 구성은 나에게 아주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뼈대를 세우고, 주요 근육을 붙이고, 혈관에 피가 흐르게 하는 순차적인 밑 작업을 해주는 것이 이 책이 하는 일이다. 구체적인 다른 장기들과 잔근육들과 그것을 세련되고 유연하게 덮는 피부의 역할은 다른 책들이 할 일이다.
유럽 문명을 형성한 세 요소는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 기독교, 그리고 게르만 전사이다. 게르만 전사들이 로마 기독교 교회를 지원하고, 로마 기독교 교회는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을 보존함으로 이 세 가지 요소는 불안정하게 혼합되고 서로 얽히고 엮이고 뗄 수 없는 요소가 되어버린다. 15C 르네상스, 16C 종교개혁, 17C 과학혁명, 18C 계몽주의, 18-19C 낭만주의를 이 세 요소와 연결해서 설명해주고, 세 요소가 서로를 어떻게 이용하고 지탱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순화된 figure들은 매우 유익했다. 이어, 게르만족, 무슬림, 바이킹(노르만족)의 침입이 유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지도를 이용하여 설명했는데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고대-중세-근대로 가면서 군사조직이 어떻게 변하고, 정치적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연결하여 설명한 것도 역사 지식이 깊지 않은 나에게 흥미롭게 느껴졌다.
가볍게 읽기 좋은 책, 역사에 대해 한동안 관심 없이 일상에 묻혀 지내다가 문득 역사가 궁금해졌을 때 스타트할 도서로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아마 다음 책은 또 역사 책일지 모른다. 내가 지금 <<국기에 그려진 세계사>>를 소파 옆에 두고 또 다른 역사 책을 검색하는 것처럼.
The Well-beloved
역사는 평생 공부다.
p.s. 이 책을 읽고 이어서 읽고 싶은 책들이 몇 권 떠올랐다.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국기에 그려진 세계사>>
<<로마인 이야기>>
<<라틴어 수업>>
<<세 종교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