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라틴어 수업_한동일

라틴어로 만나는 인생수업

by Jianna Kwon
<라틴어 수업>_한동일 저/흐름출판



창가로 햇살이 쏟아졌다.
아직은 차가운 공기지만 그 공기는 신선했고,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시간에 나는 서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첫 수업에 들어가던 날의 설렘을 기억한다.
그리고 내 인생에 펼쳐질 수많은 일들에 대해 두려움보다는 기대에 부풀었고
막연하지만 눈부신 꿈을 꾸었던 그때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사랑하게 될지,
어떤 인연들과 내 인생을 함께 만들어갈지,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
그때는 모든 것이 궁금하기도 했고

시행착오까지도 넉넉히 품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도 있었다.
누군가는 젊음 자체로 참 예쁘다고 했었고,
누군가는 그 열정이 부럽다고 했었다.
그 시절이 어느새 지금까지의 내 생애의 딱 절반이 되는 시절이었다.

거대한 강의실로 밀려들어가서
딱딱한 갈색 책걸상 하나를 잠시 내 소유로 삼고 거하면
하나둘씩 다른 학생들도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
얼마 후에 나이 지긋한 교수님이 들어오셨고
그 교양과목 수업을 들으며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었다.

20년 전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끝나버린 한동일 변호사님의 서강대 '라틴어 수업'을 하는 강의실로
나는 상상 속에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이 책이 라틴어에 대한 묵직하고 학습적인 내용을 가진 책은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한 번쯤은 라틴어에 대한 로망을 가져봤을 사람들이
이 수업을 통해 어떤 다른 깨달음들을 얻은 기록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막연히 했을 뿐이었다.
이 책을 사게 된 동기는 서가에서 이 책을 봤던 순간이 아닌
세계사 관련 도서를 읽으며 라틴어에 대해 궁금해졌고
그때 바로 이 책의 제목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청춘들에게 삶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도록 해주는 글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지쳐있고 낙심해있는 젊은 영혼들을 살리려는
한 사람의 뜨거운 마음이 느껴지는 글들이 가슴으로 그 온기까지 전달될 정도였다.
밑줄 치고 싶은 라틴어 문장들이 많았던 것은
그 언어가 라틴어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문장의 의미가 깊었기 때문이다.


S.V.B.E.E.V.



며칠간 내 카톡 프로필에 올려두었던 글이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이 문장의 각 단어 앞 글자를 딴 약어이다.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네가 좋다면... 나도 좋아.
네가 괜찮다면... 나도 괜찮아.
네가 행복하다니... 나도 참 행복해.
네가 웃으니... 나도 웃게 돼.
뭐, 이런 말인 것 같다.
너와 내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너 하나, 나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결국은 하나가 되고
모두 어떤 인연으로 만나고
함께 영향을 주고받을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산다는 것.
그 의미가 좋아서 이 문장을 수없이 읽고 외우기까지 되었다.
너의 안녕이, 나의 안녕이 되기를.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이 네 삶을 풍요롭게 하고
그런 너의 풍요로움이 나의 기쁨이 되기를!

그 외에 따로 노트에 적어둔 많은 글들은
삶에 대한 철학적인 문장들이었다.

Nolte timere!

두려워 말라


hic et nunc

여기, 그리고 지금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을 너에게


Si vis victam, para mortem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을 최소한만 믿고


Tempus fugit, amor manet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


Dilige et fac quod vis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Letum non omnia finit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


Dum vita est, spes est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Verumtamen oportet me hodie et cras et sequenti die ambulare

사실은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사람은 커다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리운 선생님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우리 어머니의 일터까지 찾아가셔서 나에게 주고 싶어 사셨다며
책 한 권을 건네고 가신 담임선생님의 그 발걸음과 마음이
지금의 나에게 아직도 큰 울림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이를 위하고 사랑하고 세우는 모든 선생님은 위대하다.
나는 이 책의 저자의 학생이 된 것처럼
그분의 사랑받는 제자가 된 것처럼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 책을 덮으며 행복해졌다.
김난도 교수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을 때처럼
청춘이라 불리는 그 나이로 돌아간 것처럼 내 마음이 설레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참 좋을 때다. 요즘은.
지금은 새해의 문이 열린지 얼마 안 된 시간이고
모든 책들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를 지지해주는 것 같고
무엇보다 마음에 작은 촛불이 조금씩 더 큰불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인용되었던
이문재님의 시, <지금 여기가 맨 앞>을 이곳에 남기고 싶다.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중에서



The Well-beloved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맨 앞이고 정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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