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숨결이 바람 될 때_폴 칼라티니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by Jianna Kwon
<숨결이 바람 될 때>_폴 칼라니티 지음/이종인 역/흐름출판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독자여!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놓으라.

-브루크 풀크 그레빌 남작,
<카엘리카 소네트 83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체할 수 없이 뜨거운 눈물이 쏟아질 때
나는 죽음 앞에서 그가 홀로 흘렸을 그 눈물을 경험했다.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1977년 뉴욕 출생
스탠퍼드 대학 영문학과 생물학 공부, 영문학 석사학위,
케임브리지 대학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이수
예일 의과대학원
스탠퍼드 대학병원 신경외과 레지던트

폐암 진단
2015년 3월 사망

아내 루시와
딸 엘리자베스 아카디아는 세상에 남다.








성취보다는 어떤 것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편이었던 폴 칼라니티는
한마디로 잘 나가는 최고의 스펙을 가진 남자였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가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인간의 뇌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고 의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그는 실력 있는 신경외과 의사가 되었다.
이것은 환자들의 수많은 삶과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던 그가
자신의 죽음 앞에서 진정한 용기로 끝까지 살아낸 기록이다.
힘이 닿는 순간까지 써 내려간 자신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언제일지 알지 못한다.
그런 불확실성은 우리가 죽음에 대해 망각하도록 만든다.
죽지 않을 사람처럼 살도록 만든다.
죽음에 대해 안심하게 만든다.
죽음이 가까웠다는 예고를 받게 된 사람만이 극심한 불안을 매일 경험하게 된다.
사실 죽음 없는 삶이란 없는데 말이다.




레지던트로서 내가 꿈꾸었던 가장 높은 이상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누구나 결국에는 죽는다),
환자나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죽음 앞에 선 사람에게 진정한 위로자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그 죽음이 얼마나 큰일인지를 공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가볍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 못지않게
그 사람이 그 죽음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도록 돕는 일이
곁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 앞에 선 사람에게 우리는 모두 최선의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그의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그를 사랑해야 한다.
그의 책에 쓰여있듯이,
늘 승리하는 건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죽음을 유예할 수는 있어도 완벽히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산행, 캠핑, 달리기를 좋아하고,
양팔을 쫙 벌려 꼭 껴안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던,
그리고 키득거리는 조카를 번쩍 들어주던 남자,
나는 더는 그 남자가 될 수 없었다.
기껏해야 그런 남자를 목표로 삼는 것이 최선이었다.




육신의 고통 가운데에,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는 사람에게는
이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것이

최선이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하루가,
지금 이 순간이
내 마지막 때의 나의 소원이고 목표가 된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답은 명확하다.
지금 이 순간, 내 모습 이대로에 대한 감사가 충만해졌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그 무엇을 이루지 못해도
내가 지금 존재하는 이 모습 이대로,
아주 작은 몸짓과 말까지도

내 마지막 순간에는 다시 누리고 싶은 바로 그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아기를 갖기로 한 결정을 양가에 알리고
가족의 축복을 받았다.
우리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우리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나는 죽어가고 있는가,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하고 있는가?
사그라들어 죽음과 가까워지는 나 자신으로 움츠리고 있는가,
아님 죽음이 눈앞에 온 그 순간까지 살아갈 것인가.

죽음이 앞에 있는 상태에서 아기를 갖기로 한 그의 결정에 대해서
누군가는 남겨지는 아기와 아내를 생각하며 그가 이기적이라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의 그러한 결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나는 그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폴과 루시의 결정이었고
그들의 인생에 그것은 최선이었다.
끝까지 그 삶을 '살아내기' 위한 아름다운 몸부림이었다.




폴은 이 책을 완성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글 마지막 페이지에 그의 딸 케이디에게 남긴 글을 보며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아버지가 생각났고,
그의 그 글이 나를 향한 내 아버지의 마음처럼, 내 아버지의 편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내 아버지는
11년 전 내가 두 쌍둥이 딸을 임신한지 7주 되던 어느 날 돌아가셨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고통을 겪었던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2007년 나는 두 생명을 내 안에 받았고,
한 생명을 하늘로 보냈다.
문득문득 보고 싶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리운 그 아버지의 편지 같은
폴의 마지막 글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어디 있든
나는 적어도 두 사람에게는 충만한 기쁨을 준 한 사람이었다는 것.
한 남자와 한 여자에게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갈 충분한 이유가 되는 사람이었다는 것.
내가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난 순간
내 미소에 눈물을 흘리고,
나의 작은 몸짓에 모든 시름을 내려놓았던 두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게 존재 자체로 의미 있고
존재 자체로 사랑받았다는 증거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다.


폴의 글이 끝나고 이어지는 아내 루시의 글,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세 사람의 사진에
잠시 멈추었던 눈물이 또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떠나려는 사람은
남겨질 사람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남은 생을 헌신하고,
남겨질 사람은
떠나려는 사람의 현재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사랑은,
그런 것이다.
떠나가는 사람에게 현재를 살아가게 해주고 싶은 것,
남겨질 사람에게 살아갈 수 있도록 미래를 준비해주고 싶은 것.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겠다는 폴의 결단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증명할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 자체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폴은 평생 죽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죽음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결국 그는 그 일을 해냈다.

나는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

-아내 루시의 글 중에서-




내 마지막 순간에 내 죽음의 목격자가 되어줄 사랑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죽음 앞에 선 자의 두려움보다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한 사람의 평안함을 남겨주고 싶다.




The Well-beloved
루시와 케이디의 삶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뉴욕타임스> 2014년 1월,
특집 칼럼에 에세이를 발표한 폴 칼라니티
"내가 살아갈 날은 얼마나 남았는가?
(How long have I got 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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