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시집 한 권
오랜만에 시집을 샀다. 다른 책에 인용된 이 시집의 시 한 편을 보고는 마음 깊은 울림이 있어서 그 시인이 쓴 다른 시들도 만나고 싶어졌고 그리하여 내 곁에 온 시집이다. <지금 여기가 맨 앞>
다시 읽어도 마음이 무작정 쿵쾅거리고 거대한 바람맞으며 팔 벌리고 서 있는 맨 앞에 선 담대한 나를 만나게 해주는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시가 아니라도 이 시집에서 나는 수많은 깊은 시의 수심을 경험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관(世界觀)이 아니고 세계감(世界感)이다.
세계와 나를 온전하게 느끼는 감성의 회복이 긴급한 과제다.
우리는 하나의 관점이기 이전에
무수한 감점(感點)이다.
시집의 서두, 시인의 말 중에 나온 위의 글을 읽으며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세계감을 느끼게 해주고 나의 무수한 감점과 공명을 일으키며 만나준 그의 시가 고마웠다.
이문재 시인의 표현력, 상상력, 창의력이 폭발한 것처럼 느껴졌던 시는 <삼월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였다. (이 시는 꼭 전문을 읽어보시기를!) 봄눈을 바라보면서 썼을 이 시에서는 할 말이 많은 봄눈의 마음을 대변해서 표현해주었다. 사실은 빗방울이 되어 떨어질 줄 알았던 봄눈의 속상한 마음, 전속력으로 고개를 쳐든 꽃 봉우리들을 향해 내리 꽂히고 싶고 녹아지고 있는 땅을 흥건히 적시고 싶었던 소망... 우리 모두의 마음 아닐까. 이런 식으로 되고 싶지 않아, 하는 순간이 우리 모두에겐 있다. 내 생각과 다르게 상황이 꼬여갈 때, 아무도 내 마음 몰라주는 것 같고 지금 내 모습 이대로가 너무 아쉬울 때, 이 시는 다시 읽혀야 한다. 난데없이 피어난 눈꽃이 되어버린 봄눈을 빗방울의 꽃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빗방울의 꽃이라니.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이고 신선한 표현인지... 이래서 시가 좋다. 짧은 문장들은 내게 아주 긴 글보다 찬란한 감동을 주고 아쉬움을 남긴 마지막 연의 마지막 행의 마침표는 나를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다.
<정말 느린 느림>이라는 시 속의
나는, 나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라는 부분에서는 잠시 숨죽이게 되고 그러다가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고,
<산촌>이라는 시에서는,
나무는 온몸으로 흔들린다.
저렇게 흔들리면서도 넘어지지 않는다.
지상의 나무보다 더 크고 깊은
나무보다 더 높은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두 눈 뜨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중심을 다시 생각하고 균형에 대해 생각하고 내 삶의 뿌리, 더 높은 뿌리인 그분께 감사했다.
정말 이 리뷰에 적고 싶은 많고 많은 좋은 시들, 내 마음을 살짜기 흔들거나 먹먹하게, 혹은 햇살이 없어도 햇살을, 별빛이 없어도 별빛을 느끼게 만들어버린 많은 시들이 있지만 그 시들을 다 적어 남기자니 시집을 옮기는 것이 될까 싶다.
다른 날 다시 읽으면 또 다른 감동을 주는 시들을 이 책 속에서 만나게 되겠지만, 이번에 읽는 시 중에 별표를 쳐두고 싶은 시 두 편 중의 일부를 특별히 기억하고 싶어 남긴다.
촛불은
언제나 자기 생의 절정을
자기 생으로 녹여낸
눈물의 한가운데다.
.....
오로지
자기 몸에 뿌리내리는 꽃
그래서 촛불은 언제나 낮아진다.
언제나 낮아지면서도
언제나 자기 몸에서 가장 높은 곳
-<촛불> 중에서-
그리고, 또 하나는...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오래된 기도> 중에서 -
시가 고이고,
시가 익는 밤.
시가 읽히고
시가 나를 읽는 밤.
이 시집을 만난 건 행운이고 감사다.
The Well-beloved
이젠 엘리엇의 <<황무지>>를 만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