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손녀에게 보내는 인류학자 할아버지의 편지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런던 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였고, 현재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인류학, 문화인류학교수로 있는 앨런 맥팔레인이 손녀인 릴리에게 보낸 편지 형식을 띤 책이다. '나에 대하여', '관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라는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고, 전체 스물 여덟 통의 편지로 되어 있다. '나는 누구일까?'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부터 시작하여, 행복하게 사는 방법, 사랑과 결혼, 가족, 우정, 신, 돈과 시간 및 언어, 교육, 불평등, 전쟁, 노동 등의 사회적인 내용을 담은 편지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앨런 맥팔레인의 생각을 적은 편지까지 손녀딸 릴리에게 더 늦기 전에 자신이 꼭 이야기하고 싶은 말을 남기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담아 적어내려간, 애정이 가득한 책이다.
이 책은 수많은 질문을 독자 스스로 하게 하는 책이다. 대부분의 편지에 있어서 앨런 맥팔레인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글을 마친다. 어떤 편지는 질문과 정보만 모아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기도 한다. 이는 손녀 릴리가 나이 들수록 의문을 품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는 어른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할아버지의 배려로 인함이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물으며 해답을 찾아가는 살아가는 삶을 위한 것이다. 그의 편지들은 나에게도 많은 질문을 남겼다. 때로는 완전히 잊고 지냈던 영역에 대한 생각까지 고르게 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 대해서 아쉬운 면이 참 많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시원하지 않은 답(그건 아마 그도 자신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결혼에 대해서 해도 되고 안해도 된다고 선택권을 주며 쿨하고 미지근하게 결론을 내리지만, 가족은 꼭 필요하다고 다른 편지에서 쓰는 아이러니, (아마 자신이 재혼을 해서 만나게 된 손녀이기에 이혼에 대해서 열린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혼을 안하면 가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가족은 일반적인 공동체와는 다르다.) 동성애에 대한 분명하지 않은 태도, 절대적인 가치기준 없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이고 문화상대주의에 물들여진 생각들, 동물학대에 대해서 반대하는 이유가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기대고 있다는 점 등에 대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에필로그에 밝혔듯이 그는 세상에 대단한 수준의 질서가 존재한다고 인정은 하지만, 하나님과 같은 존재는 없고 우연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자신에게 묻는다면', 지구라는 조그만 행성을 함께 나눠쓰고 있는 다른 인간과 생물들에게 최소한의 피해를 주면서 살아가는 것을 바래야 한다고 편지에 적고 있다.(이는 삶과 인류에 대한 매우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라고 느껴진다.) 이러한 그의 생각들은 그의 책 전반에 걸쳐 드러나고 있고, 나에게는 그의 세계관의 한계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통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며, 더 넓은 시각과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책으로서 유익하다. 이 책은 <작가 공지영이 딸에게 추천한 바로 그 책!>이라고 표지에 쓰인 책이지만, 나는 이 책을 딸들에게 조심스럽게 건네게 될 것 같다.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이 형성된 후에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할 수는 있겠으나, 아직 가치관이 미처 정립되지 않은 10대와 20대 초기에는 추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조언들은 보편적일지는 모르지만, 그의 생각들이 모든 가정의 자녀들에게 맞춤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책의 프롤로그의 마지막 부분에 써 놓은 글은 모든 자녀와 손자, 손녀들을 향한 부모와 조부모의 마음일거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게 해주고 싶은 마음, 혹 실수하고 잘못해도 괜찮다고 등을 토닥여줄 수 있는 영원한 지지자로서의 마음... 그런 내 마음도 담아 그의 글을 빌려 이곳에 남겨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릴리야, 사랑한다.
나는 네가 어떤 인생을 살든
너를 응원할 것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네 날개를 마음껏 펼치렴.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뿐이란다.
The Well-beloved
엄마가 내게 주셨던 많은 편지들의 꾸러미를
문득 다시 들춰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