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곰돌이 푸 이야기 전집_알란 알렉산더 밀른

그리고, 영화 <굿바이 크리스토퍼 로빈>

by Jianna Kwon
<곰돌이 푸 이야기 전집>_알란 알렉산더 밀른 저/현대지성


디즈니의 유명한 캐릭터인 '곰돌이 푸'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곰돌이 푸가 나오는 영상을 잠시라도-스쳐 지나듯이라도- 본 적이 있을 것이며, 적어도 그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어떤 물건이나 이미지를 보았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주위에 곰처럼 생겼지만, 사랑스러운-혹은 귀여운- 캐릭터의 어떤 사람이 '푸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을 봤을 것이다. 그만큼 너무나 유명한 '곰돌이 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곰돌이 푸에 대해서 알고 있고 피글렛과 티거, 이요르 등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도 나는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영상이나 캐릭터 정도로 보면 그만이었던 '위니 더 푸'였다. 나는 사실 그 캐릭터를 특별히 너무나 아낀 적은 없었다. 그저 유명하고 귀여운 캐릭터였을 뿐.

하지만, 파리행 비행기 안에서 몇 주 전 영화 하나를 보고는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상이 아니라, 원작으로. 내가 이 책을 읽게 해준 영화는 바로 <굿바이 크리스토퍼 로빈>이다.



영화<굿바이 크리스토퍼 로빈> 포스터


나는 이 영화 제목을 보면서도 크리스토퍼 로빈이 누구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고, 이 포스터 속 저 곰돌이의 정체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영화를 플레이했었다. 영상이 아름다워 보여서였고, 뭔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뜻밖에 많은 의미를 남기고 'The end'를 보여주었다.

알란 알렉산더 밀른과 그 아내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전쟁터에서의 트라우마로 좀처럼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작가 알란 알렉산더 밀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해 복잡한 도심을 떠나 아내와 함께 시골로 이사를 온 그는 전보다 안정된 모습을 보이지만, 글을 쓰는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하거나, 전쟁에 대한 글을 쓰는 데에 집중하는 등 아내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결국 아내는 사교계로 다시 돌아가고, 남은 그는 아들 크리스토퍼 로빈과 단둘만의 시간을 보낸다.(원래 크리스토퍼 로빈에게는 너무나 친밀하고도 소중한 가정교사이자 보모가 있었지만, 당시엔 그녀도 사정으로 집을 비운 상태였다.)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시간을 거의 내지 못했던 그는 아들과의 시간을 통해 자연 안에서 소통하고 마음에 안정을 찾아간다. 크리스토퍼 로빈은 아버지의 전쟁의 아픈 상처들을 만져주는 위로자였다. 크리스토퍼의 어리고 순수한 마음과 삶은 알란 알렉산더 밀른의 창작욕구를 자극하게 되고, 크리스토퍼 로빈과 인형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위니 더 푸'를 써서 세상에 내놓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엄청난 인기를 얻은 작가가 되었으며, 크리스토퍼 로빈이 실존 인물임을 알게 된 독자들은 크리스토퍼라는 존재에 대해 열광했다. 이로 인해 크리스토퍼는 상실감을 느낀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삶이 공유되고, 자신의 인형과 같은 인형들이 복제되어 온 세상의 매장에서 모든 아이들이 구매할 수 있는 인형이 되어버린 현실을 슬퍼한다. 감당하기 벅찬 스케줄과 스포트라이트를 감당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크리스토퍼는 학교에 입학하지만,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를 왕따시켰고 괴롭혔다. 크리스토퍼가 선택하지 않은 삶 속에서 그는 괴로움 속에 자라났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크리스토퍼는 자신과 모든 상황적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해 자진하여 전쟁터로 나간다. 자신이 선택하여 살지 못했던 인생을 이제는 선택하며 살겠다는 의지를 죽음을 담보로 보여준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허심탄회하게 말한다. 그동안 꼬여버렸던 자신의 인생과 더 비틀어져버린 아버지와의 관계로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서. 아버지는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는 아들과의 추억을 담아 책을 썼지만, 그 명예와 인기에 취해 아들의 마음을 돌보지 못했던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이 영화는 오늘 리뷰를 남기는 <곰돌이 푸 이야기 전집>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여운을 남겼다. 부모가 선택해버린 강요된 인생을 사는 아이의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엄마의 입장으로 본다는 것은 마치 지난날을 오래된 필름 돌리듯 돌려보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어떤 부분에서는 아픈 일이었다. 어쩌면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자신의 기준으로 아이를 맞추어가며, 자신의 기준 충족도에 마음을 쓰느라 정작 자녀의 마음 상태를 살피는 데에서 때때로 아웃포커싱 되어버리는 상태를 아이들이 대학에 가기까지-더는 그 이후로도- 경험하는지도 모르겠다.(나도 그러지 않기를 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 자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서로의 행복한 경험은 그 자체로 남아야 하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포장되거나 갈취되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삶은 부모의 그 무엇을 위해서도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부모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도, 부모 자신이 인정을 받기 위해서도 안된다. 부모가 누리지 못한 것을 주고는 그것에 감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도 안되며, 부모가 이상적이라는 것을 주어놓고 만족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두 딸들이 자라가니 점점 더 나와 분리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내 손을 떠나는 느낌에서 오기도 하고, 내가 의지적으로 아이들에게 더 자유를 주기 위해-어떤 면에서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에게도 자유를 주기 위해- 어떤 결정을 할 때 오기도 한다.

영화 이야기는 이만하고, 책으로 돌아와서...
이 책 <곰돌이 푸 이야기 전집>은 알란 알렉산더 밀른이 쓴 두 권의 책 <위니 더 푸>와 <푸 코너에 있는 집>을 완역하여 합쳐놓은 책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너무도 유명한 곰돌이 푸, 피글렛, 이요르, 티거, 래빗, 아울, 캥거&루, 그리고 크리스토퍼 로빈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아들과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보며 아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행복한 시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맘때의 아이를 나도 키워보았기에, 그가 쓴 글들이 실제로 아이들이 하는 대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어의 의미를 엉뚱하게 유추하면서도 그것을 진지하게 믿고,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하여 대단한 일로 만들고, 타인의 생각에 대해 자신의 입장에서 단정해버리는 것도 딱 어린아이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이들의 순수함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대화를 읽어내려가며 나의 삶도 단순해지며 유쾌해지는 것 같았고,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는 순간도 많았으며,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우정을 잃지 않고 서로를 돕고 연합하는 모습은 어른인 나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였다.

이 책을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꽤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이 한 문단을 남기고 싶다. 나이를 먹으며 산다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 서두르지 않아도, 조바심내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어른다운 것이고, 어른스러운 것이라는 것. 느릿느릿 미끄러지듯 그렇게. 순수를 유지하되 아이처럼 재촉하지 않는 것.



시냇물은 숲의 가장자리에 이를 무렵에는 다 자라나서 거의 강이 되었는데, 이제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처럼 뛰어다니지도, 팔짝팔짝 뛰지도, 콸콸거리지도 않고 훨씬 느릿느릿 움직였단다. 이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거든. 시냇물은 "서두를 필요 없어. 언젠가는 그곳에 닿게 될 테니까"하고 중얼거렸지. 하지만 숲 높은 데에 있는 조그만 시내들은 늦기 전에 발견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잽싸게, 열심히 이쪽저쪽으로 흘러다녔어.
......
강물은 그곳에 닿겠다고 서두르지도 않고, 느릿느릿 미끄러져 갔지.





The Well-beloved

언제까지나 크리스토퍼 로빈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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